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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의 음악 Jun 28. 2020

단열의 중요성으로 말할 것 같으면1

(단열은 집에 대한 불만의 시작과 끝)

전원 생활자 예행연습으로 양평에서 전세살이를 시작했다. 남한 강변에 있던, 말 그대로 궁전 같은 신축 목조 주택이었다. 건축업자가 팔려고 지은 집이었다. 부동산에 내놨지만 팔리지 않자 우선 현금을 돌리기 위해 전세로 내놓은 집이었다. 대지 250평에 건평이 50평이나 되는 멋진 2층 집이었다.      


얼마나 멋있었는지, 현관에서 낯익은 여배우가 민소매 옷을 걸치고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그런 집이었다. 나와 아내는 집주인을 만나 계약하던 날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면서 ‘이렇게 좋은 집에 살게 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줄 돈 다 주고 들어가는 전세였지만 진심이었다. 그만큼 멋진 집이었다.   


이사도 기막히게 12월 26일 날 하는 바람에 연말과 새해를 그 멋진 전원주택에서 영화같이 보냈다. 이사하던 날, 이사를 도우러 왔던 집안 어른들도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전세지만) 이런 집에 다 살아 보다니 와!’      


그렇게 우리는 양평에서 전세지만 전원 살이를 영화처럼 시작했다. 그런데, 한순간에 우리를 영화배우로 만들어 주었던 그 멋진 전원주택과의 행복한 허니문은 채 보름이 가지 않았다. 유명 여배우가 민소매 차림으로 오갈 것 같았던 그 집은 추워도 너무 추웠다.      


처음 집을 보러 갔을 때 빈집이었는데도 무척 따뜻했다. 따뜻한 데다 나무 향이 은은한 것이 마치 숲 속에 들어서는 것 같았다. 집을 소개해 준 부동산 업자는 목조주택이 이런 것이 좋다며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빈집인데도 집 보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일정 온도 이상으로 보일러를 틀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 수준으로 난방을 하면 한 달에 기름 값이 60만 원쯤 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서울에도 집이 여러 채 있고, 양평에만 팔려고 내놓은 집과 짓고 있는 집까지 합쳐 손가락 10개가 모자라는 그 집주인 아저씨에게는 한 달 60만 원이 큰돈이 아닌 모양이었다. 우리는 처지가 그렇지 못했다. 보일러 가동을 최소한으로 했다. 당연히 집은 추웠다. 집 안에서 늘 오리털 파커를 입고 살아야 했다. 민소매 차림의 영화배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렇게 벌벌 떨면서 살아도 등유 한 드럼(200리터)을 넣으면 20일을 버티기 힘들었다(당시 등유 한 드럼에 24만 원쯤 했다). 손님이라도 와서 이 방 저 방 난방을 하면 기름이 한 뼘씩 사라졌다.     



우리는 뽁뽁이를 사서 온 창문에 다 붙였다. 멋진 전망을 자랑하던 거실 유리창에도 붙였다. 유리란 유리마다 죄다 뽁뽁이를 붙여 놓았으니 마당도 내다보이지 않는 것이 마치 비닐하우스에 사는 것 같았다. 문틈마다 다이소에서 파는 비닐 문풍지도 사서 붙였다. 그렇게 우리는 날마다 다양한 시공을 했다. 


그렇지만 집은 여전히 추웠고, 기름 값은 기름 값대로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남들은 깔고 잔다는 전기장판을 덮고 자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버텼다. 어느 날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아내가 비장한 얼굴을 하더니 난로를 놓자고 했다.      


“전셋집에다?”(그다음에 오간 아내와의 긴 이야기는 생략)     


며칠 뒤 주물 난로를 설치했다. 새것을 알아보니 너무 비싸 못 사고(4백만 원 이상 했다), 중고 주물 난로를 250만 원 주고 설치했다. 이사 갈 때 떼어가는 조건으로(우리는 과연 잘 떼어 갔을까?).     


난로를 피우니 따뜻하기는 했다. 문제는 난로가 있는 거실만 따뜻했다. 그것도 난로가 피어 있을 때만. 난로가 꺼지는 순간 집도 급속도로 냉각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난로를 24시간 땔 수도 없었다. 나무 값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참나무 장작의 경우, 당시 1톤에 17만 원 했다(2012년). 1톤 해 봤자 두 달 때기 힘들었다. 이래저래 기름은 기름대로 들고, 난로 값에 나무 값까지 돈이 더 들었다. 집은 여전히 추웠고. 아, 말하자니 입이 아프다. 물론 그때 생각을 하면 마음은 더 아프다.      


근본적으로 집의 단열에 문제가 있었으니 난방 방법을 바꾼다 한들 소용이 없었다. 거실 - 벽지 - 석고보드1 - 석고보드2 - 단열재(인슐레이션) - 합판 - 방수천 - 시멘트 사이딩 – 바깥.   

  

이것이 그 그림 같은 집의 벽체 구성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벽도 그런 데다가 단열에서 가장 중요한 창문은 21미리 2중 창이었다. 한마디로 가장 싸구려 창이었다. 창문에 손을 갖다 대면 냉기가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면 방 안 유리창 밑 부분에 하얗게 얼음이 얼어 있었다. 밤 사이 우리 입에서 나온 습기가 창에 달라붙어 결로를 만들었다가 새벽녘에 얼었던 것이다(믿거나 말거나).      


그런데도 사람들은 영화배우가 살 것 같은 그림 같은 외관에 반해 그런 집들을 팔고 샀다. 우리는 그 집에 1년 동안 살았고, 우리가 나온 뒤에 금방 팔렸다.      


그 집에 살 때, 옆집 아저씨와 친하게 지냈다. 그러다 보니 이사를 나오고서도 가끔 놀러 갔다(100미터쯤 떨어진 곳으로 이사 갔으므로). 갈 때마다 우리가 살았던 그 집은 공사 중이었다. 새집을 사서 온 마당에 무슨 공사를 할 게 있을까, 하겠지만 소문을 들어보니 5천만 원 이상 들어갔다고 했다.      


그 집은 그래도 별로 따뜻하지 않을 것이다. 그 집이 따뜻해지기 위해서는 창을 모조리 바꾸고, 외벽에 단열 시공을 다시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겨울을 따뜻하게 살기 원한다면 한 달에 기름 값을 100만 원 이상 들이면 된다.      


우리가 추위에 맞서 그렇게 난리 부루스를 칠 때, 옆집 아저씨는 좀 다른 각도에서 난리 부루스를 쳤다. 우리가 살던 집과 옆집은 같은 업자가 지은 집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전세살이를 했고, 옆집 아저씨는 집을 산 경우였다. 그 아저씨의 겨울나기도 우리 못지않게 애잔했다. 그 애잔한 이야기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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