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공주와 명품남
2층 데크 난간에 걸쳐지자 잘 보이지 않던 동네 집들이 훨씬 더 잘 보였다. 무엇보다 옆집 마당이 훤히 눈에 들어 왔다. 디카프리오는 혹시 그 집에 자신을 구해줄 초인이 살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그 집은 살펴보고 할 것도 없었다. 동네에 있는 다른 집들에 비해 확연하게 처지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집들은 척 보면 누구라도 ‘어머, 예쁘다’할 정도로 전형적인 전원주택이었지만, 그 집은 동네 유일의 단층집에다 마당에 잔디를 깔지 않은 유일한 집이기도 했다.
마당이 온통 밭이었으니 전원주택 분위기는 전혀 나지 않고 밭 한 가운데 있는 농가주택 같았다. 그런 집에 사는 사람이 명품의 세계를 알 리 없을 테니 디카프리오를 본들 안 본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은 뻔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다 달리 할 일도 없고 해서 디카프리오는 우두커니 옆집 마당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안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짙은 선글라스에 노랗고 파란 색이 7대 3으로 섞여 있는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챙 넓은 모자만 쓰면 곧바로 해변에 나 앉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옷차림이었다.
날씬한 몸매며 해 입은 옷 모양새만 보면 까진 20대였는데, 디카프리오는 여자가 적어도 환갑은 되었다는 사실을 순식간에 간파했다. 바바의 목에 감겨 숱한 여자들을 가까이서 살펴보는 동안 절로 생긴 안목 덕택이었다. 민소매 원피스 밖으로 드러난 팔뚝은 근육이 빠져 나가 힘없이 쳐져 있었고, 선글라스로 얼굴을 절반 이상 감추고 있어 노화 정도는 금방 파악할 수 없었지만 층층이 져 있는 목주름은 태국 치앙마이 카렌족이 목에 두른 링처럼 뚜렷했다.
옷을 갖춰 입은 정성으로 따진다면 외출 목적 이상의 공을 들인 것이 분명했지만 걸어 5분 거리에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이 엉덩이를 흔들며 나대는 해변이 있는 것이 아닌 이상 그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는 것은 지나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옷차림과 어울리지 않게 욕실에서나 신을 것 같은 구멍이 숭숭 뚫린 슬리퍼를 신고 나온 것으로 보아 외출이 목적인 것은 아닌 듯 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평소 그렇게 해 입고 다닌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여자가 얼마나 멋을 부리고 사는 사람인지 잘 설명해주었다.
한마디로 늙었지만 공주였던 셈이다. 하지만 멋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그저 요란하기만 할 뿐이었다. 굳이 멋을 찾아낸다면 뒷모습에서는 무한정 찾아 낼 수 있었다. 환갑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몸매가 날씬 했기 때문이다.
늙은 공주는 8월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현관 옆에 펼쳐 놓은 펩시 콜라 파라솔 밑에 앉았다. 파라솔 옆에는 몸통이 어른 팔뚝만한 대추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주렁주렁 열린 대추 열매들은 주황색 반점을 보이며 한참 익어가고 있었다.
간간히 부는 바람에 기름을 발라 놓은 듯 반짝이는 이파리들이 소리를 내며 파르르 떨었는데, 마치 참새 떼가 지저귀는 듯 한 것이 늙은 공주의 요란한 옷차림을 흉보는 듯 했다. 그때였다. 저벅거리는 발자국 소리를 내며 한 사람이 마당에 들어섰다. 주차장으로 쓰는 마당 한 쪽에 회색빛 파쇄석을 깔아 놓아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 제법 큰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동네의 다른 집들은 모두 색깔과 크기가 다양한 보도블록으로 주차장을 예쁘게 만들어 놓았는데 돌을 깐 집은 그 집이 유일했다.
이래저래 동네의 다른 고급진 집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 셈이었다. 모르긴 해도 동네사람들 중에는 ‘저 집 때문에 집값 떨어지게 생겼으니 미치겠다’면서 속으로 욕을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마당에 들어선 사람은 커다란 검정색 골프 우산을 쓰고 있어 남잔지 여잔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발에 밟힌 파쇄석이 내는 비명 소리의 정도로 보아 몸무게가 상당 할 것 같다고 생각하니 남자인 것 같기도 했다. 우산이 크기도 했지만 겨우 발끝만 보일 정도로 몸 전체가 숨어버리는 것으로 보아 키 작은 여자 같기도 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몇 가지 사실을 교차로 대입해 짐작 해 본 결과 비대한 땅딸보인 것은 분명했다. 남자든 여자든 결코 매력적인 몸매의 소유자는 아닐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디카프리오가 설정해 놓은 초인의 자격에 한참 떨어지는 생물학적 신체 조건이었다. 그런 조건이라면 어떤 명품을 쓰고, 걸치고, 차고, 신고 있든 그것은 명품을 욕되게 할 뿐이었다.
우산이 치워졌다. 사내였다. 순간 디카프리오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내 치고는 정말 키가 작았다. 살이 디룩디룩 쪄서 작은 키가 더욱 작아 보였다. 얼굴에는 살집이 필요이상으로 많았고 눈과 코와 입은 지나치게 선이 굵었다. 여기에다 머리까지 짧았으니 요강만한 늙은 호박에 숯으로 이목구비를 그려 놓은 것 같았다.
디카프리오가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은 사내의 그런 안쓰러운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꼴에 어울리지 않게 명품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끼고, 입고, 차고,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멋진 것이 아니라 너무나 이상하고 너무나 천박스러워 보였다.
한 마디로 사내의 행색은 명품에 테러를 가하고 있는 중이었으니 명품을 만드는 회사 사장이 봤더라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발가벗겨 버릴 것 같았다.
‘당신 같은 사람이 명품을 욕되게 한다,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란 말이 생긴 거다,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명품이 허세니 꼴값이니 하는 말들과 쌍을 이루는 거다.’
사내는 짧은 머리 위에 걸쳐 놓은 선글라스부터 파쇄석을 밟고 있는 신발에 이르기까지 죄다 이탈리아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조르지아 아르마니로 처바르고 있었다. 오직 인간의 멋을 위해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일찍이 백화점 의류 판매 사원으로 패션계에 입문한 뒤 마침내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를 탄생시킨 조르지아 아르마니가 봤다면 그 자리에서 구글 번역기를 돌려 한국말로 ‘씨발놈아 개새끼야’ 하며 욕을 하고도 분이 삭지 않아 씩씩거릴 것 같았다.
사내의 꼴이 그 지경이다보니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란 말이 단순히 수사학적 표현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신의 온 몸으로 피비린내 진동하는 명품 테러 사건을 일으키며 마당에 들어선 사내는 접은 우산을 지팡이처럼 짚고는 늙은 공주에게 “하이-”하면서 인사를 했다. 꼴에 유머를 날린다고 그런 모양인데, 자신의 몸에서 명품 테러 사건이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가당찮은 유머를 날리며 해맑게 웃는 것을 보면 사내가 사는 집 안은 테러 수준을 넘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는 내전 상황임이 틀림없을 것 같았다.
테러? 내전? 갑자기 디카프리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면서 ‘아차’ 하고 정신이 들면서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지, 내가 이런 테러리스트를 찾고 있었던 거잖아.’
맞았다. 같은 명품 입장에서 조르지아 아르마니가 풀세트로 못할 짓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잠시 이성을 잃었지만 사실 디카프리오는 이런 사내를 만나려고 똥구멍에 힘을 주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므로 욕을 하기 전에 일단은 좀 자세히 지켜 볼 필요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을 구해줄 초인인지 아닌지 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