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테러 사건 - 2

물거품이 된 디카프리오의 기대

by 우연의 음악

가만 생각해 보니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내장 비만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출렁이는 뱃살 말고는 요강만한 늙은 호박에 숯으로 이목구미를 그려 놓은 듯 한 얼굴도, 키 큰 사람의 반바지를 7부 바지로 입을 수 있는 기적 같은 짧은 다리도 사내의 잘못은 아니었다.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었다.


엄밀히 따져 잘못이 있다면 조르지아 아르마니에게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 사내가 쓰고 걸치고, 입고, 차고, 신어도 멋질 수 있는 명품을 디자인 하지 못한 잘못 말이다.


디카프리오는 사내에 대해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교양이란 것이 옷이 아니라 사람의 깊은 내면에서 풍겨 나와 상대방으로 하여금 절로 느끼게 하는 것이듯 명품의 완성을 좌우하는 것도 멀쩡한 허우대에서 시작하는 것은 맞지만 그 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 내지는 성숙함에 완성도가 더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었다.


사내가 모가지가 짧아 슬픈 태생적 한계가 있다하더라도 내면 깊숙한 곳에 그 모든 생물학적 불리함을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는 고차원적 정신세계가 도사리고 있다면 사정은 달랐다. 그런데 사내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고차원적 정신세계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져 갔다. 오히려 사차원적이 더 강했다.


사내는 소나무 집 바로 앞 집에 살고 있는 듯 했는데, 바로 앞집이지만 단차가 많이 차이가 나 아랫집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 했다. 그러다보니 용녀네 2층 테라스에서 보면 사내의 집은 지붕만 조금 보였다. 사내는 무슨 용무로 늙은 공주네 집을 방문했는지 아리송할 정도로 혼자 떠들어댔다. 그러다보니 특별한 맥락도 없었다. 5살 아이가 생각나는 대로 막 이야기 하듯 대가리도 꼬리도 없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늙은 공주는 사내와의 그런 대화가 오늘 처음이 아니라는 듯 동문서답이 제법 자연스러웠다.


“칭구양, 지금이라도 새 오피스텔을 두어 채 분양받아 임대 사업을 시작하면 칭구처럼 1년에 오피스텔 한 채 값은 너끈히 떨어질까-앙?‘


꼴에 어울리지 않게 늙은 공주는 앙앙거리는 목소리로 아양을 떨었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들의 귓구멍이 집단으로 테러를 당하는 꼴이 되고도 남을 정도로 늙은 공주의 목소리는 들어주기 힘들었다. 늙은 공주가 친구라고 하는 것을 보니 두 사람의 나이가 같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한눈에 보기에도 여자가 사내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였다. 늙은 공주도 그 사실을 잘 아는지 쉴 새 없이 손으로 목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목주름이라도 펴서 사내와 엇비슷하게 보이려고 그러는 모양이었지만 그렇다고 펴질 주름이 아니었다. 사내는 늙은 공주가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않고 늙은 공주를 아래 위로 훑어 보더니 엉뚱한 말을 했다.


“이렇게 입고 다니지 말라니까. 진짜 젊은 사람들에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는 거야?”

“에잉, 친구양 또 그래?”

“뒷모습 보고 따라 왔다가 앞모습보고 놀라 자빠져 심장이라도 상하게 하면 그 무슨 못할 짓이야? 사람이 측은지심이 있어야지.”

“친구양, 오피스텔 이야기나 해 보라나니까앙-”

“올해 나이가 환갑이야 환갑, 아들 둘 다 결혼 시켰고, 둘 다 번듯한 직장에 꽂아 넣었고, 그럼 된 거 아냐?”

“칭구양, 오피스텔 보다 허름해도 상가를 사서 월세 받는 게 낫지 않을까앙? 월세가 짱이라던뎅 홍홍. 자기는 오피스텔만 열 채가 넘는다면셩? 그럼 재산이 도대체 얼마양?”

“목동에 있는 30평짜리 아파트는 큰 놈한테, 작은 놈한테는 광명에 새로 지은 아파트 한 채 안겼으면 된 거 아냐?”

“오피스텔은 값이 잘 안 오른다는 데 진짜양? 내 칭구가 일산 어디 오피스텔을 하나 갖고 있는데, 10년 전에도 2억 몇 천 하던 것이 지금도 그렇다넹. 아무래도 상가가 낫겠지잉?”

“돈은 있고?”


사내는 처음으로 질문에 맞는 말을 했다. 늙은 공주는 다리를 바꿔 꼬더니 몸을 사내 쪽으로 조금 기우렸다.


“돈이야 뭐. 히힝, 자기 돈 많쟎앙? 호호홍”


늙은 공주는 그렇게 말해놓고 스스로도 우스운지 고개를 돌려 깔깔거리더니 자기 집을 쳐다봤다.


“칭구는 상가도 많다면셩? 어떤 게 더 수익이 좋앙? 오피스텔하고 상가? 사실대로 까봐-앙.”

“이거 팔아 살라고?”


사내는 고개를 돌려 그 짧은 턱으로 늙은 공주의 집을 가리켰다. 이 하꼬방을 누가 사기나 할까 하는듯한 표정이었다.


“서울에 작은 아파트가 하나 있는 뎅 그거 보고 하는 거징.”

늙은 공주는 말꼬리를 흘렀다.

“내 나이가 환갑인데, 아들 둘 다 장가보냈고, 30평대 아파트 사 줬고, 그럼 된 거 아냐? 무슨 영화를 더 바라겠어? 난 여기 딱 엎드려 사는 게 좋아. 냉장고에 소주 쟁여 있겠다. 200개가 넘는 채널에서 하루 종일 재미난 것들 쏟아지겠다. 요즘은 대낮에도 돈만 내면 요상한 것도 막 보여주더라고 흐흐흐. 그나저나 마당에 던져 놓은 소주병만 200개가 넘는데 그거 어째야 하나?

“슈퍼 갖다 주면 요즘 하나 100원씩이양.“

“백 원? 진짜?”


사내는 빈병을 팔아 소주를 몇 병이나 살 수 있는지 셈이라도 하는 듯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머리로 셈이 잘 안되는지 손가락까지 꼼지락거렸다. 그래도 안 되는지 이내 포기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내는 자신의 나이가 환갑이라는 사실을 몇 번 더 강조했다. 나이 자랑을 하려고 하기보다 나이에 비해 그만큼 젊어 보인다는 것을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너무 심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는 볼품 없는 얼굴과 더 볼품없는 몸매에 비하면 60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였다. 심하게 사람 볼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노안의 40대로 볼 지경이었다.


그에 비해 동갑네기 늙은 공주는 제 나이보다 최소 5년에서 최대 10년은 더 들어 보였으니 둘이 반말로 이야기 하는 모양새가 무척 어색했다. 아무튼 사내가 1시간 넘게 떠들어 댄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초등학교 아이에게 물어도 ‘돈 자랑 하고 있는 거잖아요.’할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통 맥락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던 셈이다.


술 한 잔 마시지도 않고 그렇게 횡설수설 하는 것도 재주인 사내의 말을 관통하는 굵은 맥락은 돈이었다. 그제야 디카프리오는 며칠 전 용녀와 왕대곤이 밥을 먹으면서 돈마니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재수 없는 새끼라고 욕 하던 것이 기억났다. 그 사내가 바로 돈마니였던 것이다.


그 뒤에도 늙은 공주는 상가와 오피스텔 계약서를 놓고 갈등하는 얼굴을 한 채 둘 중에 어느 것이 수익이 더 좋은지 몇 번 물어 보았지만 돈마니는 명쾌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잠시 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디카프리오는 이제야 두 사람이 만난 진짜 목적을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하겠구나 생각했다. 점심 때가 되었으니 아무래도 돈마니가 밥을 사줄 테니 나가서 맛있는 것을 먹자고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돈 자랑을 했으니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이 내다볼 수 있는 일반적인 예상이었다.


평일 한낮이었으니 늙은 공주의 남편은 일하러가고 없었고, 용녀의 말에 따르면 돈마니 부인은 서울 강남에 살면서 주말에만 양평에 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돈마니는 우산을 쓰더니 소주병이나 세 봐야겠다며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를 내며 밖으로 나갔고, 늙은 공주는 돈마니 뒤통수에 대고 ‘칭구양, 또 놀러 왕’ 하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뭐지? 늙은 공주가 밖으로 나온 것과 거의 비슷한 시간에 돈마니가 마당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 미리 전화로 마당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한 것이 분명해 보였는데, 그래놓고 1시간 넘게 동문서답만 하다가 헤어지는 저들의 정신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거지?


두 사람의 정신세계만큼은 명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쓸개 빠진 인간들과 아주 닮아 있었다. 하지만 디카프리오는 아무리 급해도 돈마니 같은 인간에게 매달려 목숨을 구걸하고 싶지는 않았다.


차림새만 보면 명품을 처바른 돈마니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코디를 잘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장 바닥에서 산 싸구려 것들로 치장한 늙은 공주에게도 실제적인 도움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아무튼 디카프리오가 내린 결론은 두 인간 모두 자신의 탈출 프로젝트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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