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과 글래머

새로운 초인 후보들의 등장

by 우연의 음악

금요일 오후가 되자 달빛 마을이 시끌시끌했다. 그동안 눈에 보이는 집들의 수에 비해 동네가 조용하다 싶었더니 주말 주택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던 몇몇 집들의 마당에도 사람들이 어슬렁거리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사람들 소리도 들렸다. 왕대곤도 늘어난 런닝을 입고 마당을 어슬렁거렸다. 햇살이 약해지면서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늙은 공주 옆집 마당에도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지붕 선이 아기자기 한 것이, 동화 속에 나오는 예쁜 2층집을 빼닮은 그 집 잔디밭에서는 젊은 부부가 깔깔거리며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여자는 키가 170센티미터가 넘을 정도로 큰대다 살집까지 두둑해 완전 글래머 스타일이었다. 깔깔거리고는 있었지만 평소 남편에게 쌓인 것이 많았는지 여자는 계속해서 강 스파이크를 날렸다. 강 스파이크를 날리기 위해 땅을 박차며 육중한 몸매를 들어 올릴 때는 잔디밭이 푹푹 파헤쳐졌다.


검은 색 동그란 안경을 쓴 것이, 만주에서 독립 운동 하던 김구 선생의 환생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글래머가 먹이는 강 스파이크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두 사람은 그동안 디카프리오가 본 인간들 중에서 가장 싱싱한 축에 속했다. 물론 용녀는 30대 중반으로 물리적 나이는 그 보다 젊었지만 액면가는 40대는 물론 50대도 위협할 정도였으니 싱싱하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달빛 마을에 사는 다른 인간들이 마당에서 하는 일이라곤 풀을 뽑거나 텃밭에서 뭘 심거나 따거나,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거나, 그것도 아니면 구석진 곳에서 오줌을 싸면 쌌지 저런 문화적 행위로 마당을 이용하지는 않았다.


한창 배드민턴을 치던 두 사람은, 김구의 '좀 쉬었다 하자'는 말에 잠시 멈췄다. 그러자 글래머는 양 다리를 A자로 벌리고 꼿꼿이 선채 앙탈을 부렸다.


“뭐하는거야 지금? 더 해 오빠!”


그 나이까지 오빠라고 하는 것을 보니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 짐작이 갔다. 글래머는 씩씩거리며 선 채 김구를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김구는 지쳤는지 글래머의 앙탈을 무시하고 마당 구석에 있는 6인용 나무 테이블로 가서 앉더니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맥주나 한 잔 먹소!”


전라도 쪽 태생인 모양이었는데, 생긴 것과 다르게 목소리는 허스키하면서도 감미로웠다. 목소리도 목소리였지만 김구의 말투는 마치 사극에 나오는 조선시대 양반이 교양 있는 부인에게 하는 것 같아 디카프리오는 웃음이 났다.


말 하는 폼새를 보니 장난으로 한 번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처음 두 사람의 외모를 보고 디카프리오는 저렇게 멋진 여자가 어떻게 저런 꼴의 사내와 짝을 이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김구의 목소리와 말하는 태도를 보고는 얼른 이해가 갔다.


글래머는, 지금은 글래머지만 처녀시절에는 꽤나 남자를 홀렸을 것 같았다. 처녀 때는 지금처럼 글래머가 아니었을 것이니 저 키에, 저 몸매에 저 정도 얼굴이면 완전 연예인급 이었다. 그에 비해 남자의 얼굴은 앞서 말했듯이 김구 선생 얼굴에 찰흙을 발라 그대로 본을 뜬 것 같은데다 키도 별로 크지 않고, 피부도 거무튀튀했으니, 행여 자기네 소 고삐를 잡고 꼴이라도 먹이려고 집을 나서면 누구라도 달려들어 뒤통수를 후려치면서 ‘야이 소도둑놈 새끼야’할 것 같았다.


요즘의 인간형으로 말하면 일수놀이 하는 사채업자 행동대장형 쯤 될 것이다. 그런데 목소리는 완전 달랐다. 카사노바 세계에서 떠도는, 얼굴 20에 목소리 80이라는 이야기가 헛말이 아니라는 것이 김구를 보면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목소리로 여자를 부를 때 ‘자네’라고 하거나, 여자의 말에 ‘그렇게 하소’라고 대답했다면, 철없던 시절에는 어떤 여자라도 ‘이 남자가 정말 어지간히 나를 위해주겠구나’하는 생각을 할 했다.


브이자 눈썹을 만든 채 씩씩거리며 서 있던 글래머는 김구의 맥주 이야기에 갑자기 반색을 하더니 배드민턴 채를 내팽개치고 쿵쾅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왜 그 맛있는 것을 생각 못했지?’하는 표정이었다. 보아하니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눈치였다.


글래머는 플라스틱 병에 든 대형 맥주 두 병과 세숫대야만한 접시에 한우 갈비찜을 가득 담아 들고 나왔다. 그 모습에 김구가 또 점잖게 한 마디 했다.


“저녁을 그냥 마당에서 먹소 그랴.”


김구는 시원하게 맥주를 한 잔 마신 뒤 갈비를 하나 들고는 기분 좋게 뜯기 시작했다. 김구가 처음부터 끝까지 조선시대 사대부 예의를 갖춰 이야기하는데 비해 글래머는 처음부터 반말이었다. 아마 여동생으로서 오빠에게 주장하는 나름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오빠, 이거 저녁 아냐. 저녁에는 해물탕이야. 산낙지하고 왕새우 잔뜩 사 놨어.”


글래머도 맥주를 한 잔 쭉 들이키더니 말했다. 김구는 ‘지금 시간에 이거 먹고 저녁을 어떻게 먹으라고?’하는 표정으로 뜯던 갈비와 글래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한 마디 했다.


“점심에는 골뱅이 무침에 닭도리 탕, 간식으로 갈비찜, 저녁에는 해물탕, 정말 우리 먹기는 잘 먹소.”


김구의 말에 글래머는 ‘어차피 먹기 위해 태어난 것이 인생이잖아’하는 표정으로 씩 웃었다. 갈비를 다 먹고 나도 저녁에 먹을 해물탕이 또 있다는 사실에 글래머는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하며 신나게 갈비를 뜯고 맥주를 마셨다.


맥주만 한 잔 마시고 다시 배드민턴을 칠 기세였던 글래머는 이미 배드민턴은 잊은 얼굴이었다. 맥주 빨이 받았는지 빈 맥주병을 밟아 찌그러트리더니 얼른 들어가 맥주 한 병을 더 들고 나왔다. 순식간에 갈비는 바닥을 보였다.


글래머는 강 스파이크를 먹이느라 에너지를 많이 소비했고 김구는 그거 받느라고 힘들었을테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글래머는 벌떡 일어나더니 ‘해물탕도 먹어버리자’ 하면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배드민턴을 치다 말고 맥주나 한 잔 먹자고 했던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갈비찜 한 접시와 4인분은 족히 될 듯한 해물탕에 대형 맥주 다섯 병을 마셨다. 술이 더 있으면 더 마실 기세였는데 안타깝게도 더 이상 마실 술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두워지면 자동으로 불이 들어오게 타이머를 맞춰 놓은 정원 등에 불이 켜지자 마당은 마치 카페처럼 멋있게 바뀌었다. 현관에서 공주 옷을 입은 여자가 하품을 하며 걸어 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디카프리오는 김구와 글래머에게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돈이 없지는 않는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그들의 소비 패턴을 알 만했기 때문이다. 저 정도 집에 살면서, 앉은 자리에서 한우 갈비찜에 해물탕까지 순식간에 해 치울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여자라면 금반지와 금 목걸이 정도는 기본이고, 팔찌나 발찌까지 주렁주렁 차야 정상이었다.


글래머는 팔찌나 발찌는 고사하고 흔한 목걸이도 하나 걸고 있지 않았다. 태생적으로 걸고 끼고 달고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여자였다. 덩치로 보아 역동성이 강한 것이 분명하니 몸에 그런 장신구들을 걸어 놔도 오래 가지 않을 것 같았으니, 어쩌면 현명한 판단이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허구한 날 잃어버리기만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 여자에게서 명품에 대한 높은 안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실제로 운동 좋아하는 여자 치고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디카프리오는 지푸라기라도 잠는 심정으로 그들도 잠재적인 초인 후보군에서 넣어 놓았다.


술이 깨기 전에는 절대 집 안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라도 있는 듯 글래머와 김구는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4인용 테이블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술은 김구가 더 많이 마셨지만 더 취한 쪽은 글래머였다. 글래머는 횡설수설 했고, 김구는 더 조선시대 남자처럼 굴면서 돌부처 처럼 앉아 있었다.


디카프리오가 달빛 마을로 유배와 처음으로 맞이하는 불금 저녁이 그렇게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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