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으로 받은 고추장 세례
2층 테라스 야외 테이블에 무방비로 깔려 채 사흘 밤낮을 보내고 나니 디카프리오는 명품으로서의 존재감을 많이 상실한 상태였다. 다행히 테라스 위에 지붕이 있어 한 낮의 뜨거운 직사광선과 8월의 잦은 비는 피할수 있었으니, 정말 다행스럽게도 드라이클리닝을 하고 제대로 된 위치 이동만 이루어진다면 당장이라도 명품으로 원대복귀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빌어먹을 그 사건만 없었더라면 말이다.
다음 날도 날씨는 여전히 무더웠다.
“오늘 사무실 안 나가?”
용녀가 심드렁한 얼굴로 왕대곤에게 물었다.
“응, 날씨가 너무 덥고, 오늘은 별로 할 일이 없어.”
왕대곤은 그렇게 말하고 아침부터 소파에 누워 리모컨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디카프리오가 듣기에는 말도 안 되는 이유였는데, 용녀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점심 때가 되자 이것저것 반찬 그릇들을 챙겨 2층 테라스로 왔다갔다하더니 마지막으로 세수대야 만 한 양푼을 들고 4인용 테이블 앞에 섰다.
양푼 안에는 주꾸미와 고추장과 야채가 들어 있었다. 용녀는 나무 주걱으로 그것들을 우악스럽게 버무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왕대곤이 휴대용 블루스타를 들고 나타나더니 테이블 한 가운데 올려놓았다.
‘뭐 하는 짓거리지?’
디카프리오가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왕대곤이 블루스타 위에 불판을 올려놓았고, 용녀는 주꾸미 버무린 것을 쏟아 붓고 볶기 시작했다.
‘뭐 하는 짓이야 이 미친것들이!’
디카프리오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릴 리 없었다. 용녀가 주꾸미를 볶는 동안 왕대곤은 쩝쩝거리며 밥을 먹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디카프리오는 왕대곤이 김칫국물이라도 흘릴 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그것은 걱정할 것도 아니었다.
주꾸미가 본격적으로 익기 시작하자 빨간 양념 국물이 아우성을 치면서 불판 밖으로 날아올랐다. 둘 다 일반적이지 않는 정신세계를 갖고 있다 보니 대형 폭발을 일으킨 화산의 붉은 용암 같은 양념 국물이 밖으로 튀어 나와 디카프리오의 얼굴을 빨갛게 물들여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디카프리오의 얼굴은 순식간에 가을볕에 잘 익어가고 있는 붉은 고추밭이 되어 버렸다. 정말이지 입이 있다면 제 몸을 한 쪽 귀퉁이서부터 잘근잘근 씹어 먹으며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구나 그날 보여준 왕대곤의 행위는 그에게 걸었던 일말의 기대를 완전히 접게 하고 말았다. 사실 디카프리오가 용녀네 집에 온 뒤 빠른 시간 안에 스스로 제 몸을 뜯어 먹고 죽지 않은 것은 순전히 왕대곤 때문이었다.
용녀보다 8살이나 많은 왕대곤은 앞서 이야기 한 대로 살짝 웨이브진 머리에 학구적인 스타일의 안경까지 쓰고 있어 누가 봐도 고매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다 보니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학 교수쯤 되는가보다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불행이도 대학 교수는 아니었지만 생긴 것에 걸맞게 왕대곤은 출판 관련 사업을 하는 것 같았다. 그 때문인지 1층 거실은 작은 도서관처럼 책이 많았고, 집에 있는 날이면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뭔가를 읽었다. 그리고 아주 집중해서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 볼 때도 많았다.
여기에다 가끔 거실에 매트를 깔고 앉아 요상한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요가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단순한 스트레칭도 아닌 것이 무척 희한했다. 이런 고급진 모습을 보았으니 디카프리오는 왕대곤이 예사롭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런 사람의 눈 역시 예사롭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자신이 야외 테이블에나 깔려 있을 천 조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려 적당한 위치로 이동 시켜 주거나, 적어도 미국 바바에게 연락이라도 해 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망상이었는지 그날 점심 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왕대곤은 이가 시원찮은지 주꾸미를 입에 넣고 평균 이상의 시간을 소비하며 한참을 씹었다. 그러다가 보통 사람 같으면 속으로 혼자 생각할 것을 겉으로 소리내어 말을 했다.
“아, 이놈이 너무 질겨 씹히지는 않고 이 사이에 다 끼네.”
그러고는 요란하게 쩝쩝거리기 시작했다. 입을 꽉 다물어 순간적으로 입 안을 진공 상태로 만든 뒤 쩝- 하는 소리와 동시에 입술을 최소한으로 벌려 바깥 공기를 입 안으로 끌어 들여 그 힘으로 이 사이에 낀 주꾸미를 빼내려고 했던 것이다.
글로 표현하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같이 밥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는 공포스러울 만큼 불결하게 보였으니 같은 밥상에 앉아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반경 10미터 안에 있는 사람의 밥맛도 영구적으로 없애기에 충분할 만행이었다.
“야, 진짜 안 빠지네.”
계속해서 쩝쩝거려도 잘 빠지지 않는지 왕대곤은 직접적인 응징으로 대응 수위를 높였다. 숟가락을 놓더니 갑자기 손가락 두 개를 입 안에 쑤셔 넣어 빼 내기 시작했다. 미끄덩한 주꾸미가 왕대곤의 공격을 피하기라도 하는 듯 잘 빠지지 않자 나중에는 아예 손가락 다섯을 입 안에 다 넣을 태세였다.
아무리 저팔계 상의 마누라라고 해도 다른 사람을 앞에 앉혀 놓고 할 수 있는 행동이 절대 아니었다. 앞에 앉은 사람을 아주 개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종의 퍼포먼스로 밖에 보이지 않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숟가락을 탁 소리 나게 놓고 일어나 쌍욕을 하고 사라져도 시원찮을 용녀는 왕대곤의 퍼포먼스에 가까운 더러운 짓거리를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었다.
왕대곤의 퍼포먼스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 사이에서 빼낸 그 더러운 것을 휴지에 싸서 버릴 생각은 않고 다시 제 입에 넣더니 오물거렸다.
‘이건 뭐지? 덤앤더먼가? 씹히지 않아 이 사이에 끼었던 것을 빼내 다시 입에 넣어 씹는다?’
도저히 일반적인 뇌세포를 가진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더 경악스러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그보다 더 더러운 짓거리를 한다 해도 어차피 왕대곤과 용녀의 일이었고, 용녀가 감내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한순간에 디카프리오를 당사자로 끌어들이고 말았으니 침과 입 속의 온갖 이물질들이 묻은 그 더러운 손가락을 디카프리오의 얼굴에 대고 세 번이나 문질러댔던 것이다. 그것도 손가락 방향을 바꿔가면서 아주 세게. 그렇게 단 한 번의 점심 식사로 디카프리오는 원상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지고 말았다.
왕대곤은 그렇다 치고,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이상으로 용녀 역시 이상한 정신세계를 갖고 있는 사피엔스였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디카프리오를 드라이클리닝이나 손빨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세탁기에는 넣어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디카프리오는 세탁기에 들어가면 절대 안 되는 존재였다. 그 순간 그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고 만다. 하지만 다른 존재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제 몸을 문질러 대던 왕대곤의 그 더러운 손가락 느낌만은 없애고 싶었다. 하지만 전혀 그럴 생각을 하지 못하는지 용녀는 밥을 다 먹고 나자 디카프리오를 걷어 툴툴 털더니 2층 테라스 난간에 걸쳐 놓았다.
‘이런 쌍으로 미친 것들이 있나!’
왕대곤이 그 동안 보여준 고매한 모습과 그날 점심 식탁에서 저지른 만행이 도저히 연결되지 않는 디카프리오는 큰 충격과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었다. 왕대곤이 보여주었던 교양 있는 모습은 오직 생긴 겉모습에 한정 되어 있었으니 속을 들여보면 속물도 그런 속물이 없었다.
날마다 책상에 앉아 읽는 것은 포르노 소설이었고,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뭔가 몰입해 있을 때는 반드시 야동을 보는 중이었다. 요가 매트에서 하는 이상한 동작들은 포르노 잡지에서 본 조루를 막고 남성 오르가즘을 최대 10분 동안 유지하게 해 준다는 기적의 항문 쪼우기 운동법이었다.
2층 데크 난간에 걸쳐진 디카프리오는 밤이슬을 맞으며 그대로 한뎃잠을 자야 해야 했다. 예상했지만 용녀는 다음날 날이 밝았는데도 디카프리오를 거둬들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거둬들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거기 널브러져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듯 했다.
결국 이슬과 햇볕을 번갈아 맞아 가며 무기력하게 엎어져 있어야 했으니 몸에서는 쉰내가 나고,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디카프리오는 자아 정체성을 기하급수적으로 잃어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디카프리오가 삶에 대한 희망의 끈까지 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기에는 바바의 목덜미에서 풍기던 그 살냄새를 잊을 수 없었다. 왕대곤과 용녀의 만행이 더해질수록 오히려 디카프리오에게는 삶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더 강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