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을 기다리며

소나무집 주인을 기다리다

by 우연의 음악

용녀네 2층 테라스 야외 테이블 위에 깔린 디카프리오는 그날부터 기약 없는 유배 생활을 시작했다. 바바가 옷장 한 칸을 통째 내주는 바람에 아무런 부대낌 없이 1년 내내 서늘하고 안정된 어둠 속에서 호사를 누리던 그가 한 순간에 작렬하는 8월의 태양빛에 그대로 노출된 채 먼지며 온갖 더러운 벌레의 습격을 받고, 역한 오일스텐 냄새를 맡으며 싸구려 테이블 위에 누워 있는 것은 그 자체로 난센스였다.


불행하게도 디카프리오에게는 마음대로 걸어 이동할 수 있는 다리가 없었고, 자신의 처지를 설명할 입도 없었다. 그저 자기 존재를 알아 볼 수 있는 누군가의 안목이 절실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뜻하지 않게 싸구려 테이블 위에 깔려 속수무책 상태가 되긴 했지만 테이블 위에 깔리고 보니 다행히 한 군데 믿는 구석이 생겼다. 용녀네 집이 맨 꼭대기 집이다 보니 20여 가구 쯤 되는 달빛 마을의 집들이 속속들이 들여다보였다. 게다가 그런 집들에서 나는 온갖 소리들이 상승하는 공기 흐름을 타고 속속들이 다 들렸다.


디카프리오가 믿는 구석이 생긴 것은, 달빛 마을 집들이 모두 럭셔리했기 때문이다. 이런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집 안에 명품 한두 개는 틀림없이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자기가 어떤 존재론적 가치를 갖고 있는 물건인지 금방 알아볼 만한 사람이 틀림없이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디카프리오가 강하게 기대를 건 집은 2층 테라스에서 대각선으로 내려다보이는 큰 저택이었다. 달빛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이라 눈에 금방 띄었다.


주황색 스페니쉬 기와에 외벽을 온통 돌로 마감 해 낯익은 대기업 회장이 조폭 중간 보스처럼 생긴 집사를 거느리고 마당에서 골프채를 휘둘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디카프리오가 그 집에 기대를 건 것은 엄밀히 말하면 집 때문이 아니라 마당 때문이었다. 축구장처럼 넓은 마당에는 송곳 꽂을 자리도 없을 정도로 파란 잔디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고, 마치 오래되어 내려앉은 무덤처럼 군데군데 솟아 있는 흙무더기 며, 그 주변에 자리 잡은 크고 작은 바위덩어리들과 다양한 장식용 석상들은 마치 경주에 있는 신라시대 왕릉을 연상케 했다. 무엇보다 디카프리오의 눈길을 잡아 끈 것은 마당 곳곳에 심어 놓은 소나무였다.


대형 트럭도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대문 양쪽에는 용송 두 그루가 마주보고 서 있었다. 이름 그대로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듯 한 모양이었다. 왼쪽에 있는 용송은 키가 4∼5미터 쯤 되고, 가지가 부챗살 모양으로 퍼진 것이 승천하는 용이 도약하기 위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 같았다.


오른쪽 용송은 한 쪽으로 가지를 늘어 뜨려 마주 보는 용송을 견제하면서 먼저 하늘로 올라가려고 용쓰는 모습이었다. 두 용송을 보고 있자면 서로 구애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질투심에 싸우자고 덤벼드는 것 같기도 했다. 두 용송이 뿜어내는 위압감으로 인해 대문이 열려 있어도 함부로 마당에 들어서기가 겁날 정도였다.


용송을 시작으로 마당가에는 키가 3미터 쯤 되는 오엽송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하나같이 수형이 예사롭지 않고 마디가 짧은 것이, 농장에서 장사꾼들이 비료를 듬뿍 먹여 1년에 몇 뼘씩 쑥쑥 자라게 해서 판 나무들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깊은 산속 절벽에서 자란 야생 소나무는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시골 야산에서 캔 것 정도는 되어 보였으니 예닐곱 그루의 오엽송들은 하나같이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집 앞 현관을 중심으로는 키 작은 반송들이 도열하듯 서 있었다. 한창 성장기라 일시적으로 연한 녹색을 띠고 있었지만 가을이 되면 황금색 잎을 뽐낼 황금 반송들이었는데, 하나같이 밑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뻗어 나온 가지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정원의 백미는 현관 바로 앞에 서 있는 백송 한 그루였다. 다른 소나무들과 달리 수피가 밋밋한 백송은 그 자체로 예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독특하기로 치면 백송만한 것이 없었으니 어디서든 금세 눈에 띄고,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인 나무였다.


물론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나무는 아니고 웬만해서는 보기 힘든 나무였다. 잔뿌리가 적어 옮겨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고, 공들여 씨를 심어도 싹이 잘 나지 않는데다 어릴 때 자라는 속도가 너무 느려 태생적으로 널리 퍼져 나갈 수 없는 나무였다.


처음 마당에 들어선 사람들은 입구의 용송 두 그루에 감탄사를 연발하겠지만 사실 그 집에 있는 소나무들의 값어치를 돈으로만 따진다면 대문에서 현관으로 가는 동안 몇 곱절씩 뛰고 있었다. 결국 마당에 심어 놓은 소나무들을 합치면 집보다 더 값나갈 것이 분명했다.


주객이 뒤바뀐 상황 앞에서 인간들의 행태가 사뭇 이해가지 않았지만 디카프리오 는 그걸 타박할 입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객이 전도된 형태의 삶을 살면서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인간들이 그 동네에 하나라도 더 있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무릇 명품이란 그런 인간들의 이상한 정신세계와 부합하면서 탄생한 정체불명의 신기루였으니, 그런 집에 사는, 그런 정신세계를 가진 인간이라면 자신을 4인용 야외 테이블에서 탈출시켜 줄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디카프리오가 용녀네 2층 테라스에 유배되자마자 그 집을 눈여겨 본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여차해서 그 집 주인이 용녀네 마당에 들어서기라도 하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몸을 날려 목에 감길 요량이었다. 그 때문에 한시도 그 집 마당에서 눈과 귀를 떼지 않았으니 덕분에 그 집 주인에 대해 유의미한 몇 가지 사실을 알아내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이 소나무집 아저씨라 부르는 주인 사내는 대기업 회장이라 해도 그런가보다 할 정도로 점잖은데다 인물도 훤했다. 다만 키가 좀 작은 것이 신경 쓰였다.


유전자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행여 어릴 때 못 먹어 그런 것이라면 디카프리오 입장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자수성가형이라는 뜻이고, 지금 아무리 잘 산다 한들 근본을 이겨내기는 힘드니 명품 같은 것에 관심이 있을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거실에 ‘돈은 모으는 것이다’같은 글귀를 대문짝만하게 적어 놓고, 날마다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집 밖을 나서면 그 가르침에 어긋남이 없는지 살피고, 집 안에 들어서면 실내 온도를 점검하면서 겨울이면 보일러 스위치를 끄고, 여름이면 에어컨을 끄고 다니기 바쁠 사람이었다.


다행히 그런 부류는 아닌 것 같았다. 디카프리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까닭은 마당에 있는 비싼 소나무들이 우선 그랬고, 그 소나무들을 가꾸는 자세가 또 그러했으며, 부인을 시켜 온갖 맛있는 음식을 만들게 해서는 시도 때도 없이 동네 사람들을 불러 먹이는 것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네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해안에 있는 무슨 공단에서 제법 규모가 큰 금형 공장을 운영하는 것 같았다. 소나무 집 사내 부인은 신도림 김 여사로 통했는데, 디카프리오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신도림 역 근처에 있는 40평짜리 아파트에서 20대 후반의 아들과 20대 중반의 딸, 고등학교에 다니는 막내딸과 살았다.


소나무 집 사내는 양평에 사는 듯 했지만 그 부인은 막내딸 때문에 아직 양평에 완전히 오지는 못하고 한 번 오면 삼사일 머물다가 가는 것 같았다. 먹을 것을 나눠 먹는 자비를 많이 베풀어서인지 짧은 커트 머리가 잘 어울리는 신도림 김 여사는 오십 줄에 들어섰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젊은 얼굴에 미인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키도 남편보다 한 뼘 정도는 더 크고 군살 없는 몸매는 무척 늘씬했다.


한 마디로 명품만 몸에 걸치고, 쓰고, 들고, 신어야 어울릴 것 같았으니 디카프리오가 기다리는 그런 초인인 셈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 두 사람이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자기 집으로 오는 사람들은 언제나 대 환영이었지만 다른 집에는 잘 가지는 않았다. 더구나 소나무 집 사내는 웬만한 일이 아니면 대문 밖을 나오지 않았다. 누가 보면 가택 연금이라도 당한 줄 알 정도였으니 서해안에서 큰 공장을 한다는 사람이 양평에서 그렇게 도 닦듯 있어도 될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동네 사람 누군가가 그런 의문을 제기하자 소나무 집 사내는 “요즘 일이란 게 인터넷으로 다 할 수 있잖습니까”하고 느릿하게 대답했다. 아무튼 디카프리오는 소나무 집 사내든 신도림 김 여사든 누구라도 용녀네 마당에 들어서는 날을 디데이로 잡고 만반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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