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형 매듭으로 용녀의 목을 졸라야 하는데...
디카프리오가 바바의 헤르메스 가방 안에 들어가게 된 정확한 사연은 모르지만, 아무튼 디카프리오가 든 헤르메스 가방은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왔고, 한국에 도착해서는 점순 여사가 사는 인천 작전동의 허름한 30평짜리 단독 주택으로 갔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다. 점순 여사로 말하면, 앞서 이야기 했듯이 생전 명품이라고는 들고 다닌 적이 없었으니 바바가 준 가방이 어떤 존재론적 가치를 지니는지 전혀 몰랐다. 짐 정리를 하던 점순 여사는 헤르메스 가방을 보고 혼자 중얼거렸다.
“이그, 애기 기저귀 가방 같은 이런 가방이 뭐 좋다고, 쯧쯧”
그러고는 거실 한 쪽 구석에 갖도 놓고 본체만체 했다. 용녀에게 전화 해 이모가 가방을 보냈으니 가져가라는 연락도 하지 않았다. 이모 이야기만 나오면 명품 타령만 하는 용녀가 얄미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헤르메스 가방은 점순 여사 집에 도착한 그날부터 거실 구석에서 벌서듯이 우두커니 처박혀 있었다.
점순 여사가 미국에서 돌아왔다는 소리에 며칠 뒤 용녀와 그의 남편 왕대곤이 인천 작전동에 나타났다. 헤르메스 가방 안에 갇힌 채 곰팡이 냄새 작렬하는 거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디카프리오는 그들의 방문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드디어 해방의 순간이 왔구나, 지프만 열면 나의 존재가 드러날 것이고, 그렇다면 곧바로 바바에게 연락 하겠지?’
그런데 상황은 디카프리오의 기대와 달리 엉뚱하게 흘러갔다. 점순 여사에게 가방의 유래를 전해들은 용녀는 낚아채듯 들어 올려서는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런데 표정이 점점 고속도로 갓길에서 엉덩이를 까고 똥을 누다 주저앉은 것처럼 변해 갔다.
명품을 알아보는 안목이라고는 오직 샤넬처럼 말발굽 모양의 브랜드 표시 장식이 달려 있거나 루이비똥처럼 특유의 장판지 같은 가죽 소재를 알아보는 정도였으니, 그런 것이 아니라면 제아무리 값나가는 명품이라도 용녀에게는 싸구려 가방으로 보일 뿐이었다.
모르긴 해도 국제적인 사기꾼이 겉가죽에 한글로 샤넬이나 루이비똥이라고 대문짝만하게 박아 놓은 가방을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한국인들만을 위해 특별 한정품으로 만든 명품 가방이라고 해도 얼씨구나 살 위인이었으니 용녀가 사랑한 명품 가방은 오직 겉으로 명품임이 드러나는 그런 가방이었다.
사정이 그러했으니 정말 명품을 볼 줄 아는 사람들만 들고 다닌다는 헤르메스를 알아볼 리 없었다. 용녀는 더위 먹은 사람처럼 얼굴이 시뻘겋게 되더니 얼굴에 난 온갖 구멍으로 스팀을 뿜어내며 소리쳤다.
“뭐야 이거? 샤넬도 아니고 루이비똥도 아니잖아! 이모 너무 하네.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쪽팔려서 이걸 어떻게 들고 다녀!”
마치 점순 여사의 부추김에 이모가 그런 가방을 보내기라도 한 것처럼 용녀가 점순 여사를 째려보자 점순 여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비싼 가방이라 했던 것 같은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바바에게 특별히 전해 들은 말이 없다보니 점순 여사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용녀는 점순 여사의 그런 태도에 싸구려 가방임을 확신하고는 헤르메스 가방을 자신의 벤츠 뒷자리에 아무렇게나 던져 넣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양평으로 돌아온 용녀는 헤르메스 가방을 거실 구석도 아닌 다용도실 양파 자루 위에 던져 놓았다. 명품을 보내지 않은 이모에 대한 일종의 반항적 표시였다.
“그래도 미국 이모님이 보낸 것인데 한 번 들어나 보지 그래?”
저팔계 상의 용녀와 달리 왕대곤은 웨이브가 살짝 들어간 머리에 밤색 안경이 잘 어울리는, 무척 학구적인 스타일이의 사내였다. 여기에다 점잖은 목소리는 학구적 스타일을 더욱 빛나게 했다. 왕대곤의 말에 용녀는 발끈했다.
“무슨 개 똥싸는 소리야! 애 기저귀 가방 같은걸 들고 다니라고!”
용녀의 고함소리에 왕대곤은 눈을 끔벅거리며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런데 정체불명의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다용도실 문을 부서져라 닫고 돌아서던 용녀가 갑자기 야릇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가방을 냅다 들고 나왔다.
“혹시 이모가 딸라 몇 장 꿍쳐 넣었는지 몰라, 히히.”
용녀는 날치기 범이 날치기 한 가방을 확인이라도 하듯 기대에 찬 얼굴로 지프를 열었다. 왕대곤도 돈 많은 용녀의 미국 이모가 싸구려 가방만 보낼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내심 기대를 하면서 용녀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뭐야 이건?”
용녀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웬 천 쪼가리였다. 용녀가 찾고 있던 것은 달러 뭉치였으니 그 천 쪼가리가 눈에 들어 올 리 없었다. 용녀는 천 쪼가리를 바닥에 휙- 던지고는 가방 안의 지프란 지프는 죄다 열어보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가방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용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마치 가방을 찢어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거칠게 구석구석 다시 뒤졌다. 그렇지만 달러는 고사하고 종이 쪼가리 한 장 나오지 않았다.
“제기랄 아무 것도 없잖아! 아휴, 열 받어!”
용녀는 도끼자국 같은 눈을 샐룩거리며 궁시렁거렸다. 그러고는 지프를 닫지도 않고 헤르메스 가방을 한쪽 구석으로 냅다 던져 버렸다. 왕대곤은 가방에서 나온 천 쪼가리를 주워 슬쩍 펼쳐 보았다. 여자 얼굴이 금색 실로 수놓인 스카프였다.
“그 보자기는 뭐야?”
엉거주춤한 자세로 스카프를 들고 있던 왕대곤을 향해 용녀는 화가 난 저팔계처럼 물었다. 왕대곤은 혹시라도 자신에게 불뚱이 튈까봐 스카프를 곱게 건네며 말했다.
“스카프 같은데.‘
“스카프?”
용녀는 건네받은 스카프를 바람소리가 나게 앞뒤로 휙휙 흔들며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피식 웃었다.
“뭐야! 이 촌스런 스타일은? 아유, 이 똥색 좀 봐라. 요즘같은 AI 시대에 이런 똥색이 가당키나 하겠다. 딸라 뭉텅이나 좀 쑤셔 넣어 일이지 제기랄!”
기대했던 달러가 없다는 사실에 골이 난 용녀는 스카프를 둘둘 말아 식탁 위에 던져 놓았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시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바바가 들었으면 열두 번 기절을 하고도 남을 말을 했다.
“자기야, 이거 2층 테라스 테이블에 깔면 딱 이겠다. 안 그래도 테이블 보 하나 살까 했는데 잘 됐네.”
용녀는 스카프를 들고 쿵쾅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 솥뚜껑 같은 용녀의 손에 멱살이 잡혀 2층으로 끌려 올라가던 디카프리오는 지금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드려야 할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1퍼센트라도 예측 가능한 일이 벌어져야 해결책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인데, 용녀의 행동은 예측도가 마이너스 몇 백 퍼센트 수준이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동시에 자신에게 닥쳐 올 거친 운명에 대한 두려움으로 온 섬유질이 뻣뻣해지면서 싸구려 나이롱 천이 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테이블보라니! 이 돼지년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디카프리오는 교수형 매듭으로 용녀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그런 능력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