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거품에 개피물똥을 뒤집어쓰다

나락으로 떨어진 디카프리오

by 우연의 음악

밤이 깊어가자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했다. 텁텁한 8월 여름 바람이 세면 얼마나 셀까 만은 하루 종일 돌처럼 달궈졌던 동네 기와집들이 식으면서 쏟아내는 열기와 달빛 마을 뒷산이 뿜어내는 음산한 기운이 만나 서로 희롱을 하다 보니 제법 커튼 자락을 흔들 만한 바람이 불었다.


디카프리오는 시원한 바람을 즐기려는 마음에 있는 힘껏 이리 저리 몸을 뒤척였다. 욕창이 일어날 것 같았던 등짝에 시원한 바람이 들어가자 기분이 조금 좋았다. 내친김에 엉덩이 쪽에도 시원한 바람을 보내려고 좀 심하게 뒤척였다. 발분의 노력이 필요한 동작이었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만족도가 높아지자 좀 더 욕심이 생겼다. 아예 몸을 통째로 뒤집고 싶은 욕구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하여 디카프리오는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뒤집어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아뿔싸! 너무 용을 많이 썼던 것일까?

때마침 산자락에서 불어온 좀 센 바람과 디카프리오의 몸부림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디카프리오는 순식간에 1층 뒷마당 쪽으로 날아가 한쪽 가에 있는 10년생 단풍나무에 걸리고 말았다.


주꾸미 볶음 국물 자국에 곰팡이가 피면서 만신창이가 된 디카프리오의 몸은 이미 심하게 부패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람 몸의 암세포가 정상 세포를 야금야금 잡아 먹 듯 곰팡이 자국은 디카프리오의 섬유조직을 파괴해 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 끈 떨어진 연처럼 나뭇가지에 걸리고 만 신세가 되었으니 명품 중의 명품으로 밝혀진다고 한들 걸레 이상의 대접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지만 디카프리오는 여전히 포기 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는 자신의 존재를 알아줄 안목 있는 초인이 나타날 것이란 믿음에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땅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가냘픈 나뭇가지를 붙들었다.


그때였다. 뭔가 인간의 소리와 다른 옥타브의 소리가 들려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두컴컴한 단풍나무 밑에서 어른 장딴지만한 개가 앙칼지게 짖고 있었다. 개를 본 순간 디카프리오는 소름이 끼치면서 자신의 운명이 다했음을 직감했다. 단풍나무에서 떨어지는 즉시 그 개새끼가 달려들어 자신을 물어뜯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썩어가는 주꾸미 양념 냄새와 퀴퀴한 곰팡이 냄새는 개가 물어뜯으며 놀기에 최적화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디카프리오는 자기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이 들어가면서 나무 가지를 더 세게 붙잡았다. 몸에 쥐가 날 정도로 붙잡은 덕분에 다행히 떨어지지 않고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아침이 밝아 왔다. 이제 해가 뜨면 강한 햇볕에 대류 현상이 일어나면서 제법 큰 바람이 불 것이다. 그렇다면 떨어지더라도 개의 목줄 사정거리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디카프리오는 떨어지는 순간 몸을 어느 쪽으로 날려야 할지 단풍나무와 개집, 바람의 방향과 세기라는 네 가지 변수를 놓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다행히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은 개집 뒤가 심한 비탈이라 어느 쪽으로 몸을 날려야 할지는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단풍나무 밑을 내려다보며 열심히 작전 계획을 짜고 있던 디카프리오는 이상한 기운이 개집 주변을 감싸고 있는 것을 느꼈다. 어제 밤만 해도 떨어지기만 하면 물어 뜯어버릴 듯 짖어대던 개가 날이 밝았는데도 집밖을 나오지 않았다. 녀석도 작전을 짜고 있나? 설마. 그때 쑥대머리를 한 왕대곤이 사료 바가지를 들고 나타났다.


‘아무리 보는 사람이 없기로서니 꼴이 저게 뭐람? 예의 없는 새끼 같으니라고. 끝집이라 이거지?’


고무줄이 늘어난 물 빠진 황토색 7부 파자마는 겨우 골반에 걸쳐 있었고, 누른 조끼 런닝은 젖꼭지가 보일 정도로 늘어나 보기가 아주 흉측했다. 밥그릇을 든 주인이 나타나면 꼬리를 흔들며 오른쪽으로 뱅뱅 도는 것이 일반적으로 개라는 짐승이 보이는 행동 양상이다. 그런데 이놈의 개는 비록 복장은 불량했지만 주인이 몸소 밥상을 차려 집 앞까지 납시었는데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왕대곤은 개 집 쪽으로 다가가면서 ‘인분아’하고 불렀다. 인분이란 말에 디카프리오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했다. 부르는 억양으로 보아 개 이름이 분명한데, 아무리 개라지만 이름을 사람의 똥이란 의미로 그렇게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왕대곤이 다시 인분이란 이름의 개를 불렀지만 인분이란 이름의 개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왕대곤은 고개를 숙여 개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개 밥상을 든 채 잠시 개집 안을 노려보던 왕대곤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는지 “왜 그래?”하면서 목줄을 잡아 당겨 인분이란 개를 끌어냈다.


어제 저녁에 봤을 때는 어른 장딴지만 하더니 밝은 아침에 보니 훨씬 작았다. 털을 밀면 용녀 팔뚝만 할 것 같았다. 그제야 왕대곤이 왜 개 이름을 그렇게 붙였는지 짐작이 갔다. 개는 딱 1인분 밖에 안 될 것 같았다. 처음부터 키워 잡아먹기로 한 왕대곤이 혹시 키우는 도중에 계획에 없던 정이 들어 마음이 흔들릴까봐 이름을 그렇게 붙여놓고 날마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부리는 개수작이 분명했다. 디카프리오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욕이 튀어 나왔다.


‘무식하고 야만스런 새끼 같으니라고. 이렇게 먹을 것이 늘린 세상에 어디 먹을 것이 있다고 저 작은 개를.’


인분이는 어디가 아픈지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그러다가 캑캑거리며 노란 물을 토해냈다. 놀란 왕대곤이 수돗가로 달려가 물을 떠와서는 입 주위를 닦아 주고 물을 먹였다. 인분이는 한 방울도 삼키지 못했다. 대신 슬픈 눈망울을 한 채 왕대곤을 쳐다보기만 했다.


왕대곤은 늘어진 런닝을 펄럭이며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 설탕물을 타왔다. 그러고는 인분이의 입을 벌리고 조금씩 흘려 넣었다. 하지만 인분이는 삼키지 못하고 신음소리만 냈다. 잠시 인분이의 상태를 지켜보던 왕대곤은 인분이가 피똥을 싸기 시작하자 심각한 얼굴을 한 채 집안으로 들어가 휴대폰을 갖고 나와서는 토요일에도 문을 여는 동물병원을 검색했다.


옷을 갈아입고 뒷마당으로 다시 돌아온 왕대곤은 인분이의 목줄을 풀어서는 댕강 들어 올렸다. 인분이는 여전히 위로 아래로 더려운 것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인분이를 손에 든 왕대곤은 뒷마당을 두리번거리며 뭔가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단풍나무에 걸려있던 디카프리오를 발견하고 확 낚아챘다.


(아니, 이거 뭐하는 짓이야? 어, 어쩌려고? 이 미친 새끼가!)


디카프리오가 소리를 질렀지만 왕대곤이 알아들을 리 없었다. 그렇게 디카프리오는 어찌 해볼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멱살을 잡히고 말았다. 왕대곤은 디카프리오를 낚아챈 뒤 그 더러운 몰골을 한 인분이를 돌돌 말았다.

깃털처럼 가벼웠던 명품 중의 명품 디카프리오가 2층 테라스 난간에서 떨어져 개 거품에다 개 피물똥까지 뒤집어쓰게 된 사연의 결말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바비 인형과 4급 서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