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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의 음악 Dec 03. 2021

신학교 무감독 시험

신학생과 시험, 그리고 성적과 출세

신학교도 대학이기 때문에 중간 고사와 기말고사가 있고, 이 두 시험의 합산 점수로 학점을 준다. 일반 대학과 다른 점은 시험을 '대개 무감독으로 치른다'는 것이다. 신학교 시험 시간에 감독이 없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들도 있고, '당연한거 아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당연하다는 쪽에 속하는 사람이다. 


다른 대학도 아니고 신학 대학이다. 사제가 되기 위한 사람들만 모여 일종의 특수 교육을 받는 곳이 신학교다.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교육의 대상인 신학교에서, 시험 시간이라 해서 감독이 도끼눈을 하고 지켜 봐야 한다면 사실 그 자체가 난센스다. 신학생에 대한 그런 정도의 믿음이 없다면 그것은 분명 교회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신학교 시절, 시험 시간에 감독을 하지 않으면 부정행위를 할 수도 있는 '인간'들이 훗날 사제가 되어 교회의 지도자들이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개운치 않다. 


신학교 시험은 '대개 무감독으로 치른다'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감독이 있는 시험도 있다는 뜻이다. 맞다. 시험 시간에 감독을 들어오는 교수 신부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신학교에 다닐 때는 100% 무감독 시험은 아니었다. 약 80% 정도 무감독 시험이었다고 하면 얼추 맞을 것이다.  


무감독 시험과 부정행위 


시험장에 누군가 들어와서 감독을 한다는 것은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서다. 부정행위는 본질적으로 '외적인 행위'다. 그런데 대 놓고 앞사람 등을 손가락으로 찔러가며 보여 달라고 하지 않는 다음에는 그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이 은밀하게 이뤄지는 것이 또한 부정행위다. 따라서 기본적으로는 외적인 행위지만 본질적으로는 '내적인 일'에 더 가깝다. '하늘'과 '땅'과 '자기 자신'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끝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부정행위이기 때문이다.  


시험 도중 모르는 문제가 나왔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해야 할까?' 시작 부터가 내적인 고민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민은 더 큰 내적 갈등의 연속이다. 


'으이크, 신학생이 감히 부정행위의 유혹을 받다니!' 


강의실 칠판 위에 십자가가 떡 하니 걸려 있는 곳이 신학교다. 십자가에 메달려 강의실을 내려다보고 있는 예수님이 금방이라도 걸어 내려와 싸대기를 날릴 것만 같다. '어디 신학교에서 감히!'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내면 한 쪽에서 악마의 유혹이 시작된다. 


'시험을 망쳐 신학교에서 쫓겨나면 어쩔래? 예수님한테 맞는 싸대기 보다 더 겁나지 않아? 방학 때 신학생 왔다고 좋아해주던 신자들을 생각해 봐. 가족들의 기대는 어쩌고? 성당 여학생들에게 거의 아이돌 수준으로 사랑받는 거 포기할 수 있어?' 


끙... 예수님의 싸대기와 폭망한 아이돌 사이에서 '나'는 엄청난 내적 갈등을 겪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친 결과 차라리 예수님에게 싸대기를 맞고 말자, 는 심정으로 부정행위를 결정했다고 하자. 진짜 고민은 그때부터다. 부정행위 가능 거리에 있는 사람은 앞 사람, 옆 사람 둘이다.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답안지는 뒷사람 것이겠지. 하지만 고개를 돌려 동료 신학생의 답안지를 본다는 것은 만천하에 부정행위 사실을 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건 절대 안될 일이다. 그러므로 죽으나 사나 앞과 좌우, 세 사람 선에서 해결 해야 한다. 




먼저 세 사람의 신상 부터 파악해야 한다. 적어도 '나'보다 공부를 더 잘 한다고 증명된 사람의 것을 훔쳐다 봐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공부 못 하는 사람의 답안을 베끼는 것보다 어리석은 짓은 없다. 어리석음을 넘어 굉장히 위험하다. 틀린 답을 베껴 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과는 진짜 폭망이다. 나중에 부정행위의 뚜렷한 물적 증거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 부정행위다.  


아, 아직 부정행위는 시작도 못 했는데 온갖 갈등으로 뒤덤벅된 내적 행위가 너무 많다. 맞다. 원래 시험장의 부정행위란 그런것이다.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내적 행위(갈등으로 점철된)'에 골몰하다 가장 중요한 부정행위의 외적 활동인 '흘깃 보기'는 몇초 만에 싱겁게 끝나고 만다. 이것이 부정행위다.   

 

동기 신학생들이 몇명 되지도 않고, 하루 24시간 한 공간 안에서 살기 때문에 신학생들 사이에 비밀 같은것이 별로 없다. 무엇보다 누가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지 대개 잘 안다. 그러므로 누구의 답안지를 훔쳐 봐야 할지 결정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마침 옆에 공부 잘하는 동료가 앉아 있다면, 시험 감독관도 없겠다, 슬쩍 보는 것은 사실 식은 죽 먹기다. 


신학생과 교수 신부 사이의 신뢰


시험 기간에 감독을 들어오지 않는 교수 신부들의 경우, 시험 문제와 답안지를 교학과에 맡겨 두었다. 시험 시간이 되면 학년장이 교학과에 가서 문제가 든 봉투와 답안지를 찾아온 뒤 칠판에 적는 것으로 시험이 시작되었다. 감독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답을 다 쓴 학생들은 교탁 위에 답안지를 뒤집어 올려 놓고 하나 둘 강의실을 나갔다. 맨 마지막으로 답안지를 작성한 신학생이 교탁 위에 쌓여 있는 답안지를 추스려 교학과로 가져다 주면 시험이 끝났다. 담당 교수 신부가 시험 감독으로 들어오는 경우에는 일반적인 시험장 모습과 비슷했다. 


내 기억에 평신도 교수들은 한 번도 시험 감독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저학년 시절 교양 과목으로 들었던 국어, 영어, 한국 교회사, 심리학 개론 같은 과목은 신부가 아닌 일반 교수들이 가르쳤다. 그분들은 신학생들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던지 시험 감독을 오지 않았다. 시험장에 들어와 도끼눈을 하고 감독을 했던 사람들은 모두 신부들이었다. 감독을 오지 않은 교수 신부들이 훨씬 많았지만 감독을 온 그 신부들은 왜 그랬을까?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신학생들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심심해서 시험장에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르겠다. 나와 같이 공부했던 동료 신학생들 중에서 부정행위를 한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시험때마다 머리를 쳐 박고 내 답안지 채우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다른 사람들 상황을 알리 없다. 


그렇지만 나는 부정행위를 한 신학생들이 없었을 것이라 믿는다. 왜냐하면 사제가 된다는 것은 세속적인 출세와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사제가 된다는 것이 세속적인 출세를 의미한다면 부정행위를 해서라도 좋은 성적을 받아 신학교에 남을 이유가 있다. 하지만 세속적인 출세와 사제는 거리가 있다(그 까닭은 사제 독신제 때문일 것이다). 


물론 사제가 사회적으로 대접받고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게 사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 때문에 사제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내 생각에는)아무도 없었다. 그저 사제직에 임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신학교에 지원하고, 신학교 생활을 해 나가는 동료들만 보았을 뿐이다(그들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까지는 잘 모르지만). 그러다가 그 길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하나 둘 미련없이 신학교를 떠나갔다(입학 동기 58명 중에서 최종적으로 사제 서품을 받은 사람은 20명이 되지 않고, 지금 현재 사제 생활을 계속 하고 있는 사람은 15명도 안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굳이 부정행위를 해서까지 신학교에 있으려고 하는 신학생이, 글쎄 내 생각에는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부정행위라는 것이 지극히 은밀하게 이뤄지는 것이니만큼 당사자 말고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굳이 감독을 하겠다고 시험장에 나타 났던 교수 신부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신학교에서 부정행위 사고가 있었던 적이 있었구나'라고 짐작 할 뿐이다. 그렇다면 '장가를 못간다'는 핸디캡을 감수하고서라도 출세를 위해 신학교에 왔던 신학생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 신학생에게 신학교는 자기 나름의 출세를 위한 좋은 발판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성적을 받아야 했을 것이고, 그런 신학생에게 감독이 없는 시험장은 너무나 매력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30여 년이 지난 지금, 신학교 시험장이 어떤지 조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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