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하고 지칠줄 몰랐떤 케티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전날 밤에 그랬던 것처럼 각자의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지난날의 여행 이야기와 앞으로의 여행 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일이면 케티와 헤어진다. 케티는 함피로 가고 나는 바다미와 함피 사이에 있는 아이홀레란 작은 마을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케티는 함피에서 더 밑으로 내려갈지, 다시 북쪽으로 올라갈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밑으로 더 내려가 인도의 땅끝이라는 깐냐꾸마리까지 갈 계획이었다.
해가 지고 완전히 어두워지자 그 어떤 문명의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어둠과 적막만이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아버지가 영국 사람이라 했지?”
“맞아, 국적은 영국이지.”
‘국적은 영국?’
케티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버지는 인도 사람이었어. 국적은 영국이었지만.”
케티는 분명히 과거형으로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아버지가 죽었단 말인가?
“아버지는 어릴 때 영국으로 유학을 갔어.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했다고 해. 그 사이에 영국 국적도 취득했어. 프랑스에서 살던 엄마는 영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갔고.”
“두 사람이 대학에서 만났구나.”
“그런 셈이야.”
"어릴 때 영국 유학 갈 정도면 아버지가 인도에서 무척 잘 살았는가 보네.”
“아버지는 부잣집까지는 아니었지만 가난하지도 않았어. 아버지는 상인계급에 속했어. 장사를 하던 집안에 태어났으니까 적어도 가난뱅이는 아니었지.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사업을 한 것은 아니야. 그냥 동네에서 조그맣게 구멍가게를 하는 정도였대. 그런데 할아버지의 수완이 남달랐나 봐. 물려받은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제법 그럴듯한 가게로 만들었다고 했어. 그 때문에 아버지를 영국 유학까지 보낼 수 있었던 거야. 부자여서라기 보다 아버지가 똑똑했기 때문이었지...”
머릿속에 케티의 아버지와 엄마가 그려지는 것 같았다.
“엄마가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을 때 내가 태어났어. 아버지는 박사 과정을 먼저 끝내고 대학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있을 때였어. 어린 나를 아버지가 거의 키웠어. 엄마는 학생이었으니 무척 바빴을 테니까.”
케티는 내가 그녀의 말을 잘 알아듣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자연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사실 난 30% 정도밖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케티가 워낙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데다, 내 입장에서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따져야 하는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알아듣는 척했다.
“내가 다섯 살 때 엄마가 공부를 끝냈어. 엄마는 프랑스로 돌아가고 싶어 했어. 물론 아버지는 인도로 돌아가고 싶어 했지. 사실 이 문제는 두 사람이 만났을 때부터 잠재해 있던 문제였어. 다만 그동안은 서로 공부하느라 문제 삼을 여유가 없었던 거지. 각자의 공부가 끝나고 나니까 문제가 되기 시작한 거야. 엄마는 당연히 아버지가 프랑스에서 살고 싶어 할 것이라 생각했어.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많은 인도 사람들이 유럽으로 와서 살고 싶어 했으니까. 아버지가 유학하면서 영국 국적을 획득한 것도 그 때문이었지. 그런데 아버지의 생각이 바뀌었어. 아버지는 공부를 마치고 인도로 돌아가고 싶어 했어. 엄마도 당연히 찬성할 것이라 생각했고. 왜냐하면 남편의 나라니까. 두 사람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보니 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그 문제는 서로 꺼내지도 않았던 거야.”
‘음, 그러니까 공부를 끝낸 뒤 엄마는 케티를 데리고 프랑스로 가고, 아버지는 인도로 갔다, 그리고 케티는 프랑스에서 자랐다. 그 뒤로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뭐 이런 이야긴가?’
난 케티의 말을 들으면서 잘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은 내 마음대로 해석해 소설을 쓰고 있었다. 케티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난 아홉 살 이후로 아버지를 보지 못했어.”
내가 좀 놀라는 눈치를 보이자 케티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그런 눈빛이었다. 그런데도 한 번 내뱉고 나니 제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내가 왜 이런 작은 동네까지 온 줄 알아?”
그렇지 않아도 나는 그 점이 궁금했다. 이틀 동안 우리는 다른 외국 여행자를 만나지 못했다. 길에 나서기만 하면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 ‘저 사람들 여기 뭐 볼 거 있다고 왔을까?’하는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케티가 이런 작은 마을에 온 이유가 나와 비슷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바다미까지 간 것은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갔을 뿐이다. 케티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케티가 그렇게 물어오니 무슨 사연이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티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케티에게 들은 이야기와 지난 이틀 동안의 일들, 그리고 박물관과 고고학 같은 단어들을 조합해 보았다. 그러자 케티가 한 말과 연결되는 몇 가지가 있었다. 맞아, 그거였어.
“케티, 아버지를 찾아다니고 있구나?”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내 얼굴이 제법 상기되어 있었다. 맞은편 출입문 쪽의 하얀 벽을 쳐다보고 있던 케티는 약간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꼭 만나고 싶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말 못 할 사정이 있었는지 너무 궁금해. 엄마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아꼈어. 엄마에게 들은 것은 아버지가 남인도에 있는 큰 대학의 교수로 있다는 것뿐이었어. 내가 성인이 되면 아버지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했지만 성인이 되기 전에 엄마는 죽고 말았어. 사고였어.”
케티의 이야기는 이제 진짜 소설같이 느껴졌다. 그 쯤에서 케티가 아버지와 죽은 엄마를 엮어 내게 뭔가 금전적인 것을 요구했다면 모르긴 해도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값까지 털어 그녀에게 바쳤을 것이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아?”
내가 궁금한 것이었다.
“방학이 되면 아빠는 어린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녔어. 엄마는 공부하느라 바빴으니까 둘이 갈 때가 많았지. 인도에도 몇 번 왔어. 나를 인도에 데리고 온 아빠가 가장 먼저 한 것이 힌디어를 가르쳐주는 것이었어.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대부분 간단한 것들이었어. 그런데도 아빠가 가르쳐 준 몇 마디 힌디어로 동네 아이들과 금방 친구가 되곤 했어. 안이 인도 사람들과 힌디어로 이야기를 할 때 아빠 생각이 났어. 힌디어를 배울 생각을 왜 못했을까? 힌디어를 할 줄 알았더라면 안이 말한 것 처럼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더 작은 마을도 여행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음...”
“아버지 이야기로 불편했다면 미안해.”
“불편하지 않았어. 그런데 남인도쪽 대학들에는 가 본 거지?”
"대학에 들어간 그해 여름방학 때 인도에 왔어. 목적지는 마드라스 대학이었지. 남인도에서 가장 큰 대학이잖아.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학교를 그만둔 뒤였어.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갈리오르로 갔다고 했어. 갈리오르가 어디 있냐 하면, 아그라와 잔시 중간쯤 있는 작은 도시야. 뉴델리에서 그렇게 멀지 않아. 그곳에 작은 박물관이 있는데, 거기 관장으로 있다고 했어. 당장 갈리오르로 갔어. 하지만 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어. 이번에는 프랑스로 갔다고 하는 거야. 무척 혼란스러웠지. 내가 아는 한 아버지는 프랑스에 오지 않았거든. 프랑스에 왔다면 내게 연락하지 않을 리 없었어.”
바다미 박물관에 갔을 때 전시품보다 박물관 관리인을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보던 케티가 생각났다. 바다미에 온 첫날 쿠르마(돼지) 상을 보기 위해 갔던 동굴 신전에서도 케티는 쿠르마 상 보다 관리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케티의 그런 행동들이 이해가 갔다.
“인도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는 가 봤을 거잖아?”
“물론이지. 하지만 내가 갔을 때는 두 분 모두 돌아가셨어."
케티는 잠시 말을 멈추고 허공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러고는 느닷없이 이렇게 말했다.
“두유 원트 조인 위드미?“
‘잉?’
이틀 연속으로 듣는 말이었지만 들을 때마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차마 ‘예스’라고 하기 무서워 또 ‘조인’을 ‘내일 같이 함피로 갈래’로 해석했다. 내 입에서 나온 말도 전날과 같았다.
“웬?”
“나우!”
케티도 전날과 똑같이 말하더니 화장실로 들어갔다. 물소리가 나고 씻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멍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오늘은 진짜 조인을 하려나...’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런 해괴망측한 생각이 들었다. 잠시 뒤 케티가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나왔다. 회색 면티에 흰색 삼각팬티 차림은 여전했다.
침대 위로 올라온 케티는 아주 평화로운 표정을 짓더니 전날 저녁처럼 페이퍼 담배를 꺼내 정성스럽게 말았다. 그러고는 내게 내밀었다. 이번에는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그렇게 우리는 담배 하나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아주 꽁초가 될 때까지 나눠 피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 삼매경.
다음날 아침, 케티는 잔뜩 웅크린 자세로 자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늘 하던 데로 동네를 몇 바퀴 돌았다. 케티가 타고 갈 함피 행 버스는 오전 11시에 출발할 것이다. 내가 타고 갈 아이홀레 버스는 오후에 있다고 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마을은 오가는 사람들로 활기찼다. 근처 밭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인도 사람들은 주로 서늘한 아침에 일을 많이 한다. 내가 인도 사람이라도 그렇게 할 것 같았다. 낮에는 너무 더웠기 때문이다. 근처를 몇 바퀴 돈 다음 숙소로 돌아가자 케티가 짐을 챙기고 있었다. 호리호리한 몸매의 케티가 배낭 두 개를 갖고 다닌다는 사실은 여전히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렇게 케티는 떠났다. 바다미에 올 때처럼 버스 차장이 케티의 배낭 두 개를 지붕 위에 올려 주었다. 함피로 떠나는 버스는 제법 승객들로 붐볐다. 나는 버스가 정류장을 빠져나가 사흘 동안 꽤나 정이 든 사거리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바라보았다.
에필로그
의도치 않게 크리스마스이브를 헤롱헤롱 하게 보낸 나는, 다음날 점심 무렵까지 어두컴컴한 숙소에 누워 있었다. 마치 전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것처럼 몸이 힘들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일어나 케티의 숙소로 갔다. 미리 귀띔이라도 해 주었더라면 좀 더 재미있게 경험했을 텐데 왜 그랬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바다미에서 케티가 했던 ‘조인’의 의미도 알았다. 마약의 세계에서 ‘조인’은 ‘같이 대마초나 피울래?’란 의미로 사용하는 말이었다. 아마 그날 케티에게는 화씨시가 없었고, 그런 까닭에 ‘같이 담배나 피울래?’ 뭐 그런 의미로 '조인'을 말했던 말 같았다.
“외로울 때는 담배가 좋아.”
바다미에서 이틀 동안 밤마다 담배를 나눠 피울 때 케티는 이 말을 몇 번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외로움을 잘 느끼지 못했다. 혼자 다니다 보니 때로 심심한 적은 있었지만 외롭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나는 선천적으로 혼자 잘 노는 그런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니 케티의 말에 잘 공감할 수가 없었다. 케티는 달랐던 것 같다. 아홉 살에 아버지와 헤어지고, 고등학교 때 엄마까지 잃은 케티에게 어쩌면 삶은 기본적으로 외로운 것이었는지 모른다.
케티와 같이 가기로 했던 비루파크사 신전에 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체크아웃을 했다는 케티가 큰 배낭 두 개를 앞뒤로 메고 그 신전에 갔을 리 없었다. 아직 함피에 있다면 몇 군데 숙소를 둘러보면 금방 만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날 것이었다. 다시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았다. 어차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다만 케티가 아버지를 만났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몇몇 가게 앞에 엉성하게 만든 크리스마스트리가 서 있었다. 그야말로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였다. 메마른 나뭇가지에 솜으로 눈을 연출해 놓은 것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함피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눈을 실제로 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모르긴 해도 단 한 명도 없을 가능성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눈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눈은 고사하고 태어난 뒤로 단 한순간도 추웠던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추운 겨울날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나 말 입김으로 몸을 데웠다는 이야기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전해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