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모름
서운한 일 아닌 거 같은데 너무 서운하고
티 내고 싶진 않은데 짜증도 나고
서럽고 서글픈 그런 날이다
오늘은
감정 기복 심한 날
왜 때문에 이러는지
요즘 들어 더 출구 없는
아빠의 건강 문제와
이와 동반한 아빠의 감정 기복을 감당하고
그 와중에 천사 같은 엄마
씩씩한 척 센척하는 메추리같이 프레자일한 언니
감정과 이성의 극과 극이 부딪쳐서 힘들어하는 동생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 지쳐서 그런 건가
아니면 그냥 곧 그 날인 건가
유난히도 검정치마 노래가 슬프게 들린다
세상 제일 가까운 사람과
세상 제일 멀어진 거 같은 기분이
나를 너무 슬프게 하는 오늘이다
지금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이렇게 감정의 쓰나미를 타는 이유는
아빠임이 분명하다
나를 열심히 달리게끔 한
원동력이자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가장 큰 역할을 한 아빠
요즘의 아빠를 보면
그냥 기운 빠지게만 하는 느낌이다
사실 집에 가서 방에 빨리 들어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아빠가 아픈 건 10년도 넘었다
그동안 아빠가 아무리 아파도 아빠는
아픈 사람 같지 않았다
종종 이런저런 일들로 위축될 때가 있긴 했지만
아빠는 여전히 한방이 있는 우리 집 가장이었고
나를 지켜주고 사랑만을 주는, 그런 든든한 사람이었다
아빠가 건강과 사람과 부를 잃었다 한들
나에게는 감사하는 아빠임이 분명했다
우리 앞에서 만큼은 아빠는 당당했고,
늘 해주실 말씀이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빠는
세상 제일 가까운 우리 앞에서까지 위축되었고
쓸데없는 마지막 자존심만 남은 괴팍한 환자같이 굴기 시작했다.
저 마음, 무슨 마음인지 알지, 아빠도 저러고 싶지 않겠지 하며
아빠를 이해하려 했던 시간이 참 길고 많았던 거 같다.
종종 힘들고 꼬여버린 상황에 아빠를 탓하고 원망하기도 했지만
이내 아빠도 힘들 테니까, 그래도 아빠가 이만큼,
그래서 덕분에 나도 이 정도 이런 것들로 위안하며
내 마음속에서의 아빠를 치켜세워주고, 그런 나의 아빠로 두고 싶었다.
어렵게 나의 그런 아빠를 나의 사랑하는 아빠로
그렇게 평생을 두고 싶었는데
자꾸만 실망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더 이상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진 지금은
이런 나 자신이 싫어질 정도로,
후회하면 나중에 하든지 말든지 싶을 정도로
외면하고 부정하고 싶다.
세상 제일 가까운 사람과
세상 제일 멀어진 거 같은 기분
그게 나를 힘들게 하는 오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