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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렌더 이야기꾼 Apr 24. 2020

반려식물 이야기

생장일기

반려식물 이야기

 4년 전이 되어버린 그 여름날에 나는 처음 식물을 키우게 되었다. 그 당시 집 근처 잡화점에서 일을 했었다. 그 잡화점에서는 식물도 취급을 했었는데 그때 상품가치가 없는 식물들은 그대로 버려졌었다. 그 버려지는, 쓰레기통으로 갈 수밖에 없는 식물들 중 일부를 주워다 키우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완전한 형태의 상품을 사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제 값한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값어치가 떨어진 식물은 버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키울 때는 한 두 가지의 하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상품가치가 없는 친구들을 하나, 둘씩 주어다 키웠다. 그러한 친구들은 데려와서 햇빛 잘 드는 창가에 물을 듬뿍 주고 나면 금방 기운을 차린다. 줄기가 별로 없더라도, 잎사귀가 말랐어도, 몸통이 휘어졌어도 괜찮다.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이 5년 차 애식인으로써 깨달은 것이다. 



하자가 있어도 괜찮다 

식물과의 첫 만남

 당시 나는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생들의 무덤인 대학원을 바로 들어갔었다. 문과의 끝판왕인 신학을 전공하던 나는 빨리 필수과정을 밟아서 사역을 했어야 했다. 나는 목사의 딸도 아니었고, 우리 부모님은 돈이 많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가 벌어서 보태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대학생의 무덤 속으로 뛰어들었다. 


1학기 만에 휴학을 했다. 학부 3학년 때에 아버지가 가출을 하셨다. 어머니께서 어떻게든 졸업 때까지 생계를 이어오셨지만 더 이상은 무리셨던 것 같다. 대학원 학비도 부담스러웠고, 당장의 생활비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2~3년 급한 불을 끄고 나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생활이 5년째 계속되어 왔다.


나의 예상지점이었던 3년 차에 나는 더욱 강도 높은 일을 하고 있었다. 월급을 현찰로 주는 집 앞 잡화점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이다. 12시간씩 일하면서 나는 시들어 갔다. 우울증과 불안장애 그리고 대인기피가 초대하지도 않았건만 나를 덮쳐왔다. 그리고 나의 마음은 그 친구들이 빠르게 차지해갔다. 당시를 떠올리면 가슴이 많이 아프다. 돈은 많이 벌었던 시기였지만 많이 아팠던 시기 이도 하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 나의 방황기 속에서 우연히 키우게 된 식물에 관한 것이다. 내가 키우는 식물의 반은 매장에서 버려진 아이들이었다. 집으로 데려오면 반반이었다. 죽거나 살거나. 그 패턴은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 삶과 죽음을 계속 지켜보다 보니 묘하게 힘이 생겼다.


꼬마 식물인

식물의 세계에는 질서가 있다. 가만히 보다 보면 각 자마다의 리듬이 보인다. 그 질서를 잘 따라가다 보면 만발하는 생명력을 볼 수 있다. 줄기가 꺾인 엔젤이 살아났고, 토마토 모종이 살아났다. 습도에 취약한 신홀리 페페는 문들어졌고, 추위에 약한 블루버드는 집 앞에 제때 들어오지 못해서 얼어 죽었다. 내가 죽인 식물들과 내가 살린 식물들 그리고 나와 같이 살아가는 식물들. 여러 식물들이 이야기들이 모였다. 나는 그저 식물을 키웠는 데, 어느 새 많이 밝아진 나를 볼 수가 있었다. 


 나에게 반려식물은 그런 의미이다. 묵묵히 같이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세심히 들여봐야 상태가 어떤지 보이는 느리고 더딘 아이들. 그들과 같이 천천히 걸어가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만발한 풀줄기로 가득찬다. 



 사실 아직 나는 많이 우울하고, 삶은 여전히 버겁다. 하지만 나는 식물들이 가르쳐준대로 천천히 걸어가는 중이다. 다시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면서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동안 나의 삶에 대한 위로의 과정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그 묵묵한 걸음걸이에 관한 것들의 기록물이 될 것이다. 그냥 나와 함께한 식물들의 생과 사를 기억의 순서대로 나누는 것이다. 식물이 주는 느긋함과 우직함을 같이 따라가다보면 어느 새 마음의 힘이 생긴다. 그런 생장의 시간들과 죽음의 시간들은 같이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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