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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렌더 이야기꾼 Apr 28. 2020

팔꺽이 대참사  - 삼팔이의 팔은 어디로 갔나?

생장일기

팔꺽이 후의 삼팔이, 아직도 팔부자이다


매력포인트

초록색 몸에 빨간 가시가 삐쭉삐쭉 나와있다.

개인적으로는 제일 선인장다운 생김새라고 생각한다.

이름도 '삼팔이'라고 지어줬다.

데려온 당시에는 팔이 3개밖에 없었었다.


조그마한 팔이 세 개라 삼팔이~

하지만 엄청난 생장의 시간 뒤에 삼팔이는 엄청난 팔을 가지게 되었다.

더덕더덕한 팔들로 인해 삼팔이지만 삼팔이가 아닌 상태가 된 것이다.

역시 매력은 팔이 많음이 아니라 (덕지덕지 자란 팔들도 너무 신기하지만) 삐쭉한 빨간 가시이다.

선인장 다운 투박함이 있다.


또 새 팔이 나왔다

삼팔이의 무한한 팔 생성은 놀라움이었고, 진짜 사막에서 볼 것 같은 외관이 가장 큰 매력포인트였다.

나는 거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을 것 같은 선인장을 좋아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삼팔이와 같은 홍기린은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서 굳건히 서 있을 것 같은 친구였다.

키우기로 했다. 바로 데려왔다.


팔꺽이

한동안 나의 배경화면이었던 소중하고 작디작은 팔

역시나 처음에는 달린 팔이 우람한 상태는 아니었다..

꼬꼬마 선인장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벌크업해서 우람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너무 비정상적으로 팔이 자랄 때
너무 많이 자라서 몸통을 위협할 때
우리는  팔꺽기를 시도한다.


팔꺽이란 글자 그대로 팔을 꺾는 것이다.

원칙적으론 팔을 떼서 햇빛에 3~4일 정도 말린 다음에 분갈이를 해주는 식으로 진행한다.

이때 햇빛에 말리는 이유는 떨어진 선인장 팔이 말려지는 과정에서 뿌리가 나올 확률이 크고, 메마른 상태에서 분갈이를 했을 때 뿌리 내림이 더 쉽기 때문이다.


팔을 뗴고 난 자리에는 하얀색 물이 나온다..

삼팔이의 팔을 떼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우람한 팔이 많아서 몸통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햇빛 잘 드는 날을 잡았다.

제일 우람한 팔들을 엄선하여 하나씩 뽑아댔다.

총 6개의 팔이 뽑혔나 갔다..

삼팔이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과정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뽑힌 팔의 자리에서 하얀색 물이 나왔다.

몸통은 시원해졌다.

햇빛 샤워 중인 삼팔이의 팔들


6개의 애기 팔들은 4일 동안 햇빛 아래서 뿌리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누구가의 팔에서 어엿한 선인장으로 자라길 바랬다..

하지만 떨어진 팔은 다시 자라지 못했다…


킬링포인트

햇빛 아래서 말리는 시간 동안 중간에 비가 와서 습도가 많이 올랐었다.

팔꺽이를 한 날은 쨍쨍했건만… 다음날에는… 비가 내린 것이다.

그래도 이틀을 더 말렸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괜찮을 거라고 ‘내’가 생각했다.

하지만 팔들은 그렇지가 않았나 보다.


알고 보니 팔꺽이의 성공률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더라.

실제로 내가 꺾은 6개의 팔은 심어지자마자 2개가 사망했다.

나날이 서바이벌처럼 팔들의 상태가 안 좋아져 갔다..

팔 하나 사망…. 팔…. 한 개 더 사망…


어느새 팔은 두 개가 되었다.

남은 두 개도 그리 오래 살진 않았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기 전에 전멸했다.

팔꺽이 후의 모습


처음 해보는 팔꺽이여서 사전 지식이 부족했다.

햇빛에 말리긴 했지만 충분하게 말리진 않았고,

분갈이 후에 물을 주었는데 그 물의 양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많이 물을 주어서 뿌리내리는 데에 방해가 된 것 같다.

이미 뿌리가 내린 선인장이면 모를까

아직 이제 막 떼어진 선인장은 뿌리를 내려야 하는 과정을 위해 적은 관수를 해야 할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메말라 가다가 갈색으로 변한다.

곰팡이 피듯이 썩어간다.

뿌리내리지 못한 선인장의 최후는 빠르게 흙으로 돌아간다.


추도사

마지막 3인방의 생전 모습


팔들아!

작은 생명이 온전한 모습으로 가지 못했구나.


너희를 잘 키우고 싶었었다.

작디작은 몸뚱이들이 온전한 선인장으로 생장하길

그 어떤 선인장보다 멋있게

태양 아래서도 당당한 선인장이길

누구보다 원했었다.


짙어지는 갈색빛에

나의 마음도 어두워졌었다.


부디 하늘에서는 마음껏 뿌리내렸길.

굳건히 내린 뿌리로

태양 아래 당당히 서있길..


삼팔이의 작디 작은 팔들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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