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손님이 싫었다.
나는 손님이 싫었다. 정말 싫었다. 코로나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 싫었다. 이시국이라 다행인 점은 한 두개가 아니었다. 일단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점부터. 불만에 찬 목소리와 짜증에 절어있는 말투가 마스크에 묻히고 누구 하나 칠 것만 같은 표정도 절반이나 가릴 수 있다. 친구들이 살기라고 표현한 눈빛만은 어쩔 수 없었지만 손님과 나 사이 공기를 쳐다보는 것으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다.
만화카페 평일 미들 알바는 다른 일거리에 비해 비교적 한가한 개꿀 알바임은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가한 이유로 홀과 주방, 캐셔를 모두 혼자 처리해야했기 때문에 손님이 왔다는 것은 일거리가 한무더기 따라온다는 것과 다름 없었다.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고 시간이 지나면 손님 퇴실을 돕고, 손님이 머무른 자리를 청소하고, 읽은 책을 다시 꽂아 넣어야 한다. 그 사이에 음식을 추가 주문할 수도 있고 새로운 손님이 오거나 다른 손님이 갈 수도 있는 일이다. 손님이 한 분이든, 커플이든, 단체든 일거리의 규모는 크게 늘고 줄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손님이 싫을 일일까. 하루는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눈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너무 싫어서. 손님이 오고 일거리가 온다는 게 너무 싫어서. 나는 얼은이닉하... 어디서 주워본 이모티콘을 따라 열심히 눈물을 말려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싫을 건 없지 않나 싶었다. 매일 마스크 아래로 손님들에게 몰래 욕을 하고 출근하는 순간부터 퇴근하는 모든 순간 손님들에게 불친절하고 미묘하게 짜증을 숨기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나를 발견했을 때 이미 난 한참 선을 넘은 불친절한 종업원이 되어있었다. 나 혼자 일해서 다행이지 누가 보기라도 했으면, 그걸 사장님에게 말하기라도 했으면 바로 잘렸을 것이다.
사실 나는 꽤나 성실한 편이다. 어딜 가든 내 장점은 성실함과 꾸준함이었으니 분명 이런 태도는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원래 일하는 태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성격은 버릴 수가 없어 막장 태도를 일삼으면서 일은 성실하게 마무리한 편이다.) 핑계삼아 말해보자면 아마 이런 과민함도 머리가 엉망이 되어 생긴 일종의 부작용이었을 것이다. 우울의 한 증상. 우울증은 그 이름대로 우울함이 가장 큰 증상이긴 하지만 우울함이 축 늘어지고 의욕이 없고 눈물만 퐁퐁 쏟아내는 모습으로만 표현되지는 않는다. 스트레스에 지친 사람들이 피곤함만 호소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툭 치면 왁 물어버리는 쌈닭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청소년기 우울장애의 가장 큰 특징은 거부증과 찡그린 얼굴, 반사회적 행동이다. 감정을 표현하기 서툰 나이대일수록 우울은 다른 양상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비행행동이라고 표현하는 행위들이 어쩌면 우울하기 때문에 발생되는 것(우울품행장애)일지도 모른다. (모든 비행청소년들이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때문에 비행행동, 반사회적 행동을 변화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울감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 내가 배운 우울증의 특성이다.
물론 우울의 증상이 아니라 다른 이유일지도 모른다. 감정 표현을 못하기는 매한가지지만 청소년이 지난지 한참 됐으니까. 우울과 공병률이 높은 다른 질환의 증상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가 쌓여 그랬을 수도 있고 그냥 짜증이 난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울의 얼굴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힘이 없고 가련한 모습보다 짜증에 차있거나 모든 것에 시큰둥하고 어쩌면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꽤 많은 가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가지 면모로 우울이다, 우울이 아니다 견론짓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결론을 뭐라고 지어야할까. 첫 번째, 설령 진짜 이유가 나의 우울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손님들 입장에서는 봉변에 가까울 테니 정당화하기에는 어렵겠지. 참,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다. 두 번째, 갑자기 과민해진 주변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보자. 단순한 스트레스 때문이라 하더라도 주변의 지지가 있는 건 해결점을 찾아줄 수 없다 하더라도 큰 도움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