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면 달리는 사람

밖에서 숨을 못 쉬어가며 심장 터질 것 같은 건 그냥 달리는 거다.

by 댜니


한 번도 그래 본 적 없었지만 갑자기, 불현듯 그 일을 꼭 해야겠다는 충동이 들 때가 있다. 그 날이 그랬다. 해가 져서 공기가 미지근해질 때 쯤 에어컨 바람을 벗어나 달려야만 한다고 강하게 느꼈다. 해야만 한다라기 보다 하지 않으면 안된다에 가까울 정도로 강하게. 내가? 뛴다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말이 안 되는 조합이다. 유구한 역사의 와식생활 예찬론자인 사람이 말이야. 그래도 이상함을 느낄 시간에 옷을 갈아입고 나가야만 했다.


약을 먹은지 2달이 되어가는 중에 우울은 줄고 불안이 늘어나는 해괴한 증상을 겪고 있었다. 누구는 취준이 끝나면 나아지지 않을까 물었지만 아마 아닐 것만 같다고 혼자 예언했다. 그러니까 이게 원래 내가 가진 원형일지도 모르는 게지. 서러운 자기 성찰이 끝나고 나면 그럼 이런 내가 험악한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다시 더 큰 파도가 밀려왔다. 불안과 자기 비난과 우울의 굴레가 착실하게 불행의 늪으로 나를 이끌어가고 있을 즘이었다. 그 와중에 다행인 건 기분은 기분일 뿐이었다는 것. 땅에서 11m 쯤 떠 있는 것 같은 불안과 귓가를 울리는 비난은 속에서만 부글부글 끓고 있을 뿐 나는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것. 나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분은 기분일 뿐이라더라도 그 기분이 꽤나 자주 반복되는 건 좀 골치 아픈 일이다. 토익문제를 풀다가도 울컥. 토할 것 같은 불안이 밀쳐올라오고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듯한 기분이 계속 된다. 가슴을 쳐가며 숨을 쉬어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심장은 멀쩡하고 폐도 건강할 텐데. 그렇지만 기분 탓으로 넘기기에는 너무 피곤한 증상들이었다.


좁은 방에서 숨을 못 쉬어가며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쥐어 뜯는 건 살갗의 생채기만 낼 뿐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했다. 차라리 진짜로 터뜨리고 말지. 방 안에 갇혀 있으면서 가슴이 답답한 건 불안이지만 밖에서 숨을 못 쉬어가며 심장 터질 것 같은 건 그냥 달리는 거다. 심장만 쿵쿵 뛰어 어지럽기까지했던 머리가 정리되는 건 순식간이다. 심장과 몸이 같이 쿵쿵 한 박자를 맞추면 그만인 것이다. 지금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건 불안 때문이 아닌 내가 내달리고 있어서다.


그래봤자 1km를 뛰면 오래 뛴 저질 체력이지만 마스크 아래로 헥헥거리면 숨도, 심장도, 머리도 한 번에 박자를 맞추게 된다. 겪어본 바, 우울의 큰 증상 중 하나는 역시 판단력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순간의 불안에 머리는 하얘지고 현재의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을 거대한 재난으로 여기게 된다. 똑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저 이에게는 고난일 뿐인 상황이 나에게는 생명의 위협이 되었다. 이런 자동적 사고와 과일반화가 계속되는 것을 끊어주는 게 필요하다. 제 때 자고일어나기, 제 때 밥 먹기, 제 때 씻기는 가벼운 우울에 도움이 되지만 아주 거대하고 실체 없는 거인과 싸워야할 때가 종종 있다.


저질 체력인 내가 달리면서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는 많지 않다. 아 죽겠네, 아 힘들어, 아 X같다, 아, 아, 아!!!!!!!!!! 정도? 단말마의 비명을 속으로 내지르면 재난같던 생각들이 온통 힘들다로 가득 차고 만다. 그렇게 오늘치의 불안만큼 열심히 힘들고 나면 이젠 끝. 집 가서 샤워하고 낮잠 자면 그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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