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기 때문에

절반 정도로 슬픈 사람이 둘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

by 댜니

오늘도 여지없이 우울이 밀려왔다. 가슴을 몇 번이나 툭툭 두드려봐도 스프링이 달린 것 마냥 두드릴 때 멀어졌다 손을 떼면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툭툭, 손님을 맞다가도 툭툭, 음료를 만들다가도 툭툭. 친절한 척 한껏 목소리를 높여 안내를 했지만 마스크 속으로는 욕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사실 그보다는 울고싶은 기분이기는 했다. 억지로 웃기도 힘들지만 친절을 연기해야 하는 오늘은 특히 사라지고 싶었다. 만화 카페를 찾는 사람들은 이 넓은 공간을 알차게 즐기고 있는데 나의 공간은 너무 좁고 해야할 것은 많으며 대가는 너무 적었고 무엇보다 너무 외로웠다. 이럴 바에는 사라지고 말지. 나의 존재가 사라질 만큼 작아지길 바라면서 냉장고 앞에 아픈 다리를 쉬는 척 잔뜩 쭈그리고 앉아버렸다.


오늘같은 날에는 특히 입을 다물고 조용히 집에 돌아와 방에 홀로 앉아 거대한 우울을 꾸역꾸역 씹어넘기는 안 좋은 버릇이 있다. 이유 없이 울음이 차올라서 혼자 울어버린 날이면 특별히 우울한만큼이나 특별히 조용해진다. 내 우울은 온전히 나만의 소중한 보물이라고 되는 양 중요한 비밀을 숨기는 것처럼 한참을 슬퍼한 후에야 찌꺼기를 겨우 털어놓을 수 있다. 나 그 때 힘들었어, 나 그 때 많이 울었어, 나 그 때 사라지고 싶었어. 항상 내 몫의 우울을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누군가의 도움을 청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고 여전히 어렵다.


그릇이 넘치는 고독을 억지로 감내하는 사람이 나뿐일까. 나 그 때 힘들었어, 나 그 때 많이 울었어, 나 그 때 사라지고 싶었어. 이 말은 내 안에서 가장 크게 울렸지만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로도 많이 들었던 말이다. 이미 다 지난 일이라 여기는 담담함은 비슷했지만 그 안에 어떤 고뇌가 있었을지는 함부로 예상치 못할 일이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건 우리가 너무 다정한 탓이라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지만 절반 정도로 슬픈 사람이 둘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 우리에게는 이 아이러니가 큰 걱정이다.


어쩌면 나의 어둠이 경계를 뛰어넘어 당신의 영역마저 어둡게 물들이진 않을지, 그보다 더 현실적으로는 나에게 소중한 당신이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것이 아닌지 늘 전전긍긍해 한다. 그 아픈 와중에도 서로를 생각하는 다정한 사람들. 생각해보면 늘 힘든 일이 다 지난 다음에서야 이런 일이 있었음을 어렵게 털어놓은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아니었을까. 나는 퍽이나 다정한 사람이고 다정한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어서 나만의 우울 속에만 갇혀있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우리는 서로가 너무 소중하고 서로에게 너무 많이 다정하기 때문에 문드러지고 문드러지는 것을 혼자 견디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혼자 죽어가는 게 다정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있기 때문이라니. 내가 다정한 사람이라서라니. 인생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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