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가지하고 유별난 사람들

저는 사실 오늘 너무 힘들었어요.

by 댜니

내가 정상과 이상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완전히 이상 쪽에 있는 사람인 것을 인정한 후 어떤 대화가 떠올랐다. 아직 우울감과 우울증을 직접 경험하고도 구별하기 어려웠던 학부생 시절, 마침 이상심리학 수업을 듣고 있었을 때. 인기 많은 교수님의 대형강의는 수많은 이상함과 수많은 정상의 기준들을 가르치면서도 주변 사람들을 평가하는 잣대로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로 수업이 끝나고는 했다. 우리는 그런 이상함에 매료된 이상한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심리학과는 이상하게도 다른 학과들보다 더 자기 전공에 심취한 그야말로 빠순이와 빠돌이들로 구성된 학과였고 그런 열정적인 집단임을, 자신이 그 집단에 속해있음을 자랑스러워하는 정말 요상한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사실 우리 학교만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를 홀린 수많은 이상함 중에는 우울장애도 포함되어 있었고 그 날은 우울장애의 평가 기준이 되는 증상들을 배우며 나름의 학구열을 불태우는 날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하릴없이 앉아있을 마땅한 곳을 찾아 교내를 어슬렁 거리다 도서관 한 켠 소파에 짐을 풀고 잠깐 낮잠 잘 요량이었다. 나는 복습과 예습에 열심인 모범생도 아니고 친구들과 항상 시간을 보내는 인싸도 아닌 꼭 낮잠 한 두시간은 자줘야하는 슬리퍼였다. 잠에 미쳐있던 내가 먼저 소파 한 쪽 끝에 앉아 이어폰도 없이 눈을 감고 있는 사이 소파 반대편 끝에 남학생 둘이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자고 있다고 생각해서 신경 쓰지 않는 둘의 대화가 이어졌고 적당히 조근조근한 목소리 두 개가 거슬리지 않아 나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하지만 뚫린 귀로는 내용이 들려 그에 나도 모르게 집중을 하니 아무래도 방금 전까지 같은 이상함을 배운 이상함의 동지임이 분명했다. 한 번 들리기 시작하니 집중을 끊을 수 없어 잠은 텄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나이가 더 어린지 존댓말을 쓰고 있던 쪽에서 머뭇거리듯 한 마디를 꺼냈다.


- 저는... 사실 오늘 너무 힘들었어요.


고백이 길어진 즉, 우울장애의 경험을 다시 상기시키는 부분이 나올 때마다 본인은 강의실을 뛰쳐나가고 싶었다는 것이다. 나는 수업이 특정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는 부분에는 공감할 수 없었으나 강의실을 뛰쳐나가고 싶었다는 그의 마음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수많은 이상함 중 나의 이상함을 배울 때 그 비슷한 경험이 많으니까. 나는 벌레를 무서워한다. 누구나 무서워하긴 할테지만 나는 확실히 공포증의 증상을 보였다.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심한 불안을 느끼며 눈물을 쏟아냈고 눈 앞에 등장한 그 녀석들을 보며 발작을 일으켰다. '하하 나도 무서워해'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친구들 앞에서 발작을 일으킨 다음에는 공포증의 예시로 벌레 에피소드를 드는 교수님 앞에 파리하게 질려 눈과 귀를 막고 있던 나의 눈치를 보다가 예시가 끝날 때 신호를 주기도 했다.


심리학과의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심리장애의 근방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교수님 왈, 입시 시즌 심리학과 지망생의 자기소개서에는 위클래스, 본인이 받은 치유,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경험과 극복 과정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는 마음 속 이상함에 사로잡혀있으면서 각기 다른 상흔을 가진 이상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 학생은 우울증이라는 상흔을, 그 때의 나는 공포증이라는 상흔을 가지고 '이상하다'고 평가받던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본인이 이상한 사람들이어서 느꼈던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받은 고통이란 질병의 증상에 더해 그 '이상함'에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유난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지가지한다는 표현 하나로 나는 가지가지하는 사람이 된다. 유별나다는 말 한 마디로 우리는 유별난 사람이 된다. 우리의 고통은 실재하며 그 실재하는 고통은 내 삶이 분명한데 말이다. 강의실을 뛰쳐나고오고 싶었던 공포는 나와 그 학생의 것이다. 그것은 분명 이상함의 범주의 들어설 테지만 그것은 나와 그 학생의 삶이지 타인의 잣대로 평가할만 한 것은 못 된다. 또, 인정받아야하는 종류의 사실도 아니다. 우리의 이상함은 그저 우리가 아프다는 것을 알릴 뿐이었고 아픔을 겪는 개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없고 부여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탓도 아닌 것을 고백했을 때 우리는 쉽게 가지가지하고 유별난 사람이 된다.


우리가 배웠던 가르침은 과학이지만 과학이라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삶을 평가내리는 권능을 부여받은 것은 아니었다. 교수님은 뭘 안답시고 사람들을 가볍게 평가내리는 태도를 항상 경계하라 주의했다. 하지만 그것은 비단 우리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가볍게 평가내리는 태도의 주체이면서도 객체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주체일 때 배웠던 가르침이 객체가 되어 경험해보니 여간 서러운 것이 아니었다. 본인이 지금까지 보지 못한 낯설고 특이한 경우라고 해서 왜 우리가 유별나고 가지가지하는 사람이 되어야할까. 그건 그냥 어디가 다쳤다고 말하는 것 뿐인데 너무 가볍게 별 것 아닌 것에 사소하게 예민해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사실 오늘이 힘들었다고 고백하는 그 학생의 머뭇거림에는 상흔 위에 또 어떤 상흔이 덧입혀져 있는지, 그 상흔이 어떤 것에서 말미암은 것인지 나는 쉽게 짐작이 가 착잡했다. 아마 속에서 올라오는 증상의 고통이 아닌 시선과 표정과 태도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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