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칭찬은 살고 싶은 이유가 되기에 너무 연약했다.
지난 추석 때 2kg이 쪘다. 지금은 (야매)식단으로 간신히 원래 체중으로 돌아왔지만 불어난 체중은 2달 가까이 갔다. 체중계 위에서는 언제나 다양한 감정이 오고가지만 이번에는 특히 오묘하고 복잡한 감정이 섞여서 올라왔다. 아차 싶은 경각심이 먼저 퍼뜩 지나쳤다가 명절이니 당연하다는 뻔뻔함도 잠깐 스쳐지나갔다가 체중계에서 내려올 즘에는 많이 나아졌구나하는 생각이 오랫동안 머물렀다. 마지막 생각이야말로 무슨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모르겠다.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인지 지난 시간에 대한 안쓰러움인지.
평생을 퉁퉁이와 통통이의 경계 어드메에 살아왔던 나에게 정상 체중은 꽤 먼 나라 얘기였고 몇 번을 도전했으나 실패한 영역 중 하나였다. 성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효율이 안 좋았다고 해야하나. 나의 다이어트에는 언제나 문제점이 많았지만 몸과 마음이 동시에 건강하지 못하는 방법이라면 나는 몸을 건강하지 못하게 다이어트를 시도했다. 운동하기 싫어? 안 해. 대신 밥을 적게 먹자. 먹고 싶은 게 생겼어? 먹어. 대신 오늘 저녁은 먹지 말자. 항상 이런 식이었고 덕분에 굶는 것에는 도가 터있었다. 건강한 다이어트는 하기싫은 것을 하고 하고 싶은 것을 안 하는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대신 효과는 100%인 반면 하고 싶은 걸 적당히 하고 하기 싫은 것도 적당히 안 하는 방식의 결과는 당연히 예상 불가능이었다. 그럼에도 느긋하게 언젠가는 빠지겠거니 열심히 굶다보면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을 때 쯤 엄마의 등짝 스매싱과 함께 다이어트는 결말을 맞았다.
늘 그런 식의 되풀이였지만 아름다운 결말보다는 꼼수에 더 익숙해져있는 터라 올 봄에도 졸업식에 찍을 수많은 사진들을 대비해 다시 한 번 다이어트에 돌입했고 이번에는 곡기를 끊는 대범함까지 보였다. 효과는 굉장했다. 2주만에 모든 하의의 허리가 헐렁해지는 기적. 탄수화물을 끊은 대가는 매우 달콤했고 졸업식은 즐거웠으며 그 때 착장은 너무 만족스러웠다.
졸업식은 축제의 시간이지만 한 편으로는 불안의 시작이다. 특히 그 날은 졸업식이면서 상담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나는 별로 해낸 것 없이 졸업을 해야했고 별반 나아진 것 없이 상담을 종결해야 했다. 그 날 선생님이 나에게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저는 사실 다은씨가 좀 불안해요.
네, 저도 제가 불안해요. 맞장구를 쳐주기 위한 농담이 아닌 삼키려다가 내뱉은 진심이었다. 둘의 불안이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 어렴풋하게 느껴졌으므로 나는 얌전히 선생님의 메일주소를 받아 챙겼고 꼭 다음에 힘든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는 당부를 마음 속에 새기며 집으로 돌아왔다.
밥을 굶는 습관은 졸업식 때문이었지만 졸업식을 기점으로 스노우볼처럼 불어났다. 우리의 불안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져버렸다. 잠재력만 인정받은 서류 탈락 통보와 정답 없는 스펙 쌓기는 모두가 견디는 일이지만 나에게는 너무 아득했고 그 아득함 때문에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의 무게를 가진 불안과 무기력이 덥쳐왔다. 죽는 건 무섭지만 죽어가는 과정은 순탄했다. 밥만 먹지 않아도 사람은 죽으니까. 그리고 밥을 먹으면서까지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 않으니까. 나의 마음은 딱 그 정도였다. 삶의 미련이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아 있어 밥이라는 사소한 것까지 신경쓰고 싶지 않은 상태.
나는 아무도 모르게 밤마다 칼에 손을 대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외면했고 이유없이 터지는 울음을 참기 위해 가슴을 쳐댔다. 그 '아무도 모르게'라는 것만 너무 잘 한 모양인지 졸업식 이후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칭찬 일색이었다. 살이 너무 많이 빠졌다고, 너무 예쁘다고, 옷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그 말을 듣고 잠깐 기분이 올라갔다가 올라간 만큼 집으로 돌아와 추락해버리길 반복했다. 그런 칭찬은 살고 싶은 이유가 되기에 너무 연약했다.
2월 졸업식이 끝나고 두 달 동안 바닥이 없는 우울을 맞이하다가 이러다 정말 죽을까봐, 죽고는 싶지만 내가 배운 건 사람들이 스스로를 죽이지 않도록 돕는 배움이었으므로, 살려달라는 마음을 담아 메일을 보냈다. 두 달만에 만난 선생님은 8kg가 빠진 모습에 제일 먼저 걱정해준 첫 사람이었다. 그 후 상담을 이어가는 동안 2주에 한 번씩 꼭 선생님은 밥 잘 챙겨먹어요? 다정하게 물어봐주시곤 했다.
맘고생 다이어트가 효과가 가장 좋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맘고생은 다이어트가 될 수 없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목적과 삶의 의지를 잃은 상태가 어떻게 같이 있을 수 있을까. 우울증의 진단기준 중 가장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기분보다 상태다. 입맛을 잃은 것과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것. 감정을 억누르는 것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기분은 생각보다 알아차리기 어려운 영역에 있다. 대신 몸으로 표현되는 것이 이른바 맘고생 다이어트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갑자기 홀쭉해져서 돌아와서 씁쓸한 미소로 일이 있었어요... 하는 것에 이제는 더이상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얼마나 너덜너덜해졌으면 그게 몸으로 표현되는지 알기 때문에. 그러니 누군가 함부로 맘고생 다이어트라는 말을 하면 얼마나 힘든지, 혹시 위험하지는 않은지 알아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