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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Aug 22. 2018

두통이 편을 가르면

이동우 시인 / 나는 새로운 땅 위에서 당당해져야만 한다.

두통이 편을 가르면 / 이동우



도둑맞은 나를 찾아다닌다


나는 늘 바깥이다

머릿속에서 나온 벌레가

나를 베껴 간다

이젠 어디든 객지다

모자 대신 물음표를 쓴다

이 도시는 땅속에 아가리를 키운다


어둠을 쪼아 균열을 만드는 새떼

숲에 바람이 인다

구름을 오려 날개를 만든다

신발이 무거워 날 수 없다

머릿속이 가려우나 긁어지지 않는다

파충류의 뇌가 포효한다

나의 눈빛은 자주 휘발된다


지도를 펼쳐 방향을 잡는다

손바닥을 오므리자 길들이 접힌다

둥근 지구 모양이다

섬들은 서로 부딪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원만한 자전을 위해선

가시를 빼내야 하는데,

그래도 지도가 좋다

거짓을 말하니까


우리 집에서 못질은 안 된다

못 박은 자리마다 도지는 병

가구에는 손톱자국이 많다

나는 집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우리들은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나와 우리는 서로 모른 체한다

서로를 견디다 뒤죽박죽된 일상


세상엔 내가 흔하다

잘못을 스스로 사면하기로 한다

머릿속 숲, 속바람이 잦아든다

맑은 날씨처럼 당당해지고 싶다





계간 《시산맥》2018년 봄호




* 나는 그래


그러고 보니 나는 어디에 속해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

모두 내 맘대로, 내 뜻대로 하고 싶어서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 시간들이 여전히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에게도 변화의 시기가 온 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것은 처음 시도해야 하기에 망설여지는 것이 아니다. 시도하는 것보다, 기존에 해왔던 것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나에게서 새로움은 분명 기분 좋은 설렘이어야 하는데.

그 설렘에 두려움과 망설임이 가득하다는 걸, 마치 이제야 깨달은 사람처럼 난 오늘도 주저하고 있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차이를 논하는 일이 얼마나 흔한 일상을 살고 있는 것인지 알고 있음에도.


나 역시 거짓말에 능한 지도를 좋아한다. 세상에서 가장 흔한 오줌싸개일지도 모르겠으나, 그토록 마음이 가는 편지는 또 없으니까.

반복되는 이름과 사라져 가는 이름들 사이에서 나의 위치를 찾기란, 그의 말처럼 바보 같은 행위가 아닐까.


나는 새로운 땅 위에서 당당해져야만 한다.

잘못을 스스로 사면하기로 한 날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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