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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Jun 26. 2018

우표를 붙이겠습니까

김효선 시인


우표를 붙이겠습니까 / 김효선




우체국에 갑니다 쓸쓸해서
새도 없이 새장을 키우면서 말이죠
오늘의 날씨에 소인을 찍는다면
아침에 본 깃털을 저녁에도 볼 수 있나요
어제 사랑한 얼굴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요
새장을 키우면 새는 한 번쯤 고백을 할까요

우리가 다시 사랑한다면
마르고 닳도록 침이 마르게
어제의 계단을 닦겠습니다

마흔 살부터 똑같은 헤어스타일
국물 없는 떡볶이를 좋아하고
문을 열자마자 브래지어를 벗어던질 때
우표를 붙이겠습니까
새도 없는 새장에서 깃털이 떨어지고
아무리 흔들어도
새장은 깨어나지 않아요

오늘의 운세는 희망을 가져도 좋습니다
나는 또 우체국에 갑니다 아무렴요


 


계간 《문예연구》 2018년 봄호







* 나는 그래


나는 편지를 쓰기 위해 엽서를 사지 않는다. 

사실,

이 네모난 종이 모서리 끝에 어중간한 우표를 붙이기 싫어서다. 

엽서는, 편지는 우표를 달고 나서부터 집 나간 애인과 같으니까. 

잡을 수도 없고, 잡아도 불안감을 감출 수 없게 만드는 게 그 작은 풀칠 한 번으로 모두 가능하다.


"누구에게 이 엽서를 써야겠다."만큼 행복한 감정은 없을 것이다. 

물론 확정이 아닌 예정이기에 유효한 감정이다. 

그래서 나의 서랍엔 주소만 적인 엽서들이 가득하다.

받을 예정인 이들은 받지 못했지만, 난 이미 그들에게 정성 가득 편지를 써서 보냈다.

아마 그 글씨들이 희미해질 때쯤, 난 그 흔적들 위에 또 다른 주소와 이야기를 끄적일 것이다.


소인 날짜가 찍히지 못한 우표를 품은 엽서 뭉치는 나에게 '새도 없이 새장을 키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요즘 소인 날짜가 찍힌 동생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쓸쓸함을 느낀다.

동생의 편지봉투를 밟은 우표와 우표를 짓이겨 버린 잉크를 보며,  차라리 편지에 아무런 말이 쓰여있지 않았으면 한다. 

동생의 과거가 궁금하지 않아서다.

난 그 어느 때보다 공백이 주는 안도감을 느끼고 싶다.


그 안도감이면, 새장을 깨울 수 있을까. 

우표를 붙이지 않고도 희망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편지를 쓰기 위해 엽서를 사지 않는다. 

엽서에 담긴 언어를 시간 속에 버려둘 수가 없어서다. 

동생의 몸짓에 시간의 흐름을 억지로 담아볼 수가 없어서다.


그러므로 날짜 하나를 찍겠다고, 동생의 얼굴에 우표를 붙일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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