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사진>_김미림
<청춘사진>-김미림
자연스럽다.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도 충분히 전주한옥마을과 최명희 문학관, 전주 향교, 전주 경기전의 한 계절을 엿볼 수 있다. 물 흐르듯 진행되는 카메라 연출과 인물들의 동선 또한 조화롭게 잘 어울린다.
단지, 너무나 익숙할 뿐이다.
영화의 묘미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에 있다. <청춘사진>의 낯섦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정우의 카메라 렌즈에서조차 찾을 수 없다. 그의 카메라는 영화 내내 사랑의 매개물로서 작용하지만, 진부할 뿐이고 평범한 두 남녀의 썸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청춘사진>는 초점 없는 사진들로 장면 장면을 연결하고 있다.
<청춘사진>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작을 알 수 없는 사랑인가, 아님 썸인가? 썸을 연애 시작 전 생성되는 사랑의 초기 단계라 정의한다 해도, 감독의 로맨스는 어딘가 모르게 어설프고 애매하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썸’만으론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없다.
정우와 여름의 동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의 마음을 간지럽히지 못한다. 설득력이 부족한 <청춘사진>은 결국 스스로 본질적인 의문을 생성하고 만다.
“전주한옥마을에서 그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가?”
뭐가 ‘청춘’이고 ‘사진’인가. 또 어떤 것을 ‘사랑’이라 하고 ‘썸’이라 하는가.
청춘을 20대의 젊은 남녀만이 가진 특권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당황스러움은 지나치게 짧은 피사체와 카메라의 거리에서도 전달된다. 곳곳에서 보이는 카메라와 인물의 모호한 거리는 여름과 정우를 담는 마지막 장면까지 이어진다.
정우의 고백은 <청춘사진>의 유일한 반전사건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 사진을 찍자는 여름의 마지막 말은 정우에겐 긍정의 의미로 전달되어 영화는 아름다운 청춘의 사랑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물론 반드시 극적인 요소로 사건을 변주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청춘사진>엔 성공한 로맨스 영화들이 가진 희귀성이나 차별성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청춘사진>은 따뜻한 작품이다.
그러나 초점 없는 사진은 감독의 무기가, 작품만의 색깔이 될 수 없다.
PS. 본 비평문은 제1회 전주단편영화제 [프로그램 노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