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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Dec 14. 2018

어머니의 전동차를 아들이 타는 것처럼 <장수>

조금씩 잊혀지는 것이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수, 2018 제작 / 25min

감독: 이윤규 

     

     

어머니의 전동차를 아들이 타는 것처럼 

 

   

     

깊은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장수>의 영기 역시 마찬가지다.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딸과 아내의 죽음은 다리를 절뚝이는 어머니에게로 연결돼 그의 삶을 더 위태롭게 한다. 가족이 찍힌 동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하는 영기는 어머니의 약통과 전동차 역시 모른 척 외면한다


어머니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 때문에 그녀를 카메라 안에 담으려 하지도 않는다. 영기는 영정사진을 미리 찍은 어머니가 아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럽다. ‘영정사진을 일찍 찍어 오래 살 것’이란 어머니의 언어는 결국 영기의 마음에 닿지 못하고,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게 된다.


출처: 10월 제작지원 <장수 長水> 촬영스케치


하지만 영기는 아버지의 산소 앞에서 툭 던진 어머니의 “조금씩 잊힐 거다. 엄마도 그랬어.”란 말에 참아왔던 눈물을 쏟는다. 어머니의 진심 어린 위로는 슬픔에 쓰러져있던 그를 다시금 일으킨다. 그녀의 말처럼 그들의 죽음은 자신의 잘못도 아니고, 세상의 잘못도 아니다. 산 사람이 잘살아야 하는 것은, 먼저 떠나간 이들을 계속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게 남겨진 이들의 몫이다. 이후 영기는 카메라로 어머니의 순간순간을 간직하면서 다시 웃기 시작한다.

 

영기의 사진들로 <장수>는 자연스럽게 시간을 이동한다. 영기는 집 근처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며, 카메라를 통해 천천히 어머니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러나 이별은 언제나 갑작스럽다. 우리가 결코 죽음에 익숙해지지 못하는 이유다. <장수>는 영기가 찍은 어머니 사진들로 그녀의 마지막 삶을 따뜻하게 전달한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의 딸과 아내의 옆에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자신의 옆에 영원히 그들이 존재함을 느낀다. 


출처: 10월 제작지원 <장수 長水> 촬영스케치


사람들은 이를 “추억한다.” 혹은 “기억한다.”라고 한다. 스스로는 “많이 담담해졌다.”고 말한다. 온갖 미사여구로 꾸미지 않아도 그 의미는 전달된다. 다른 말로 대체할 필요도 없다. 각자의 방식으로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는 것은 남겨진 이들에게 삶의 또 다른 원동력이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장수>는 죽음이란 어렵고도 철학적인 소재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사건을 극적으로 전개하지도 않고, 카메라를 번잡하게 이동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모자의 언어와 몸짓으로 우리에게 괜찮다고 말한다.



삶은 죽음까지 이해해야 비로소 완성된다.

 


한 장의 사진으로 떠난 가족을 추억하는 그처럼. 


앞으로도 계속 어르신들의 장수 사진을 찍을 영기처럼. 


어머니의 전동차를 아들이 타고 다니는 것처럼.






PS. 본 비평문은 제1회 전주단편영화제 [프로그램 노트]에 실린 글입니다.





















사진출처:                                                                                                       

[출처] 10월 제작지원 <장수 長水> 촬영스케치|작성자 Oscar HAN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anmovie&logNo=221130388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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