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잊혀지는 것이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수, 2018 제작 / 25min
감독: 이윤규
깊은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장수>의 영기 역시 마찬가지다.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딸과 아내의 죽음은 다리를 절뚝이는 어머니에게로 연결돼 그의 삶을 더 위태롭게 한다. 가족이 찍힌 동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하는 영기는 어머니의 약통과 전동차 역시 모른 척 외면한다.
어머니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 때문에 그녀를 카메라 안에 담으려 하지도 않는다. 영기는 영정사진을 미리 찍은 어머니가 아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럽다. ‘영정사진을 일찍 찍어 오래 살 것’이란 어머니의 언어는 결국 영기의 마음에 닿지 못하고,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게 된다.
하지만 영기는 아버지의 산소 앞에서 툭 던진 어머니의 “조금씩 잊힐 거다. 엄마도 그랬어.”란 말에 참아왔던 눈물을 쏟는다. 어머니의 진심 어린 위로는 슬픔에 쓰러져있던 그를 다시금 일으킨다. 그녀의 말처럼 그들의 죽음은 자신의 잘못도 아니고, 세상의 잘못도 아니다. 산 사람이 잘살아야 하는 것은, 먼저 떠나간 이들을 계속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게 남겨진 이들의 몫이다. 이후 영기는 카메라로 어머니의 순간순간을 간직하면서 다시 웃기 시작한다.
영기의 사진들로 <장수>는 자연스럽게 시간을 이동한다. 영기는 집 근처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며, 카메라를 통해 천천히 어머니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러나 이별은 언제나 갑작스럽다. 우리가 결코 죽음에 익숙해지지 못하는 이유다. <장수>는 영기가 찍은 어머니 사진들로 그녀의 마지막 삶을 따뜻하게 전달한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의 딸과 아내의 옆에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자신의 옆에 영원히 그들이 존재함을 느낀다.
사람들은 이를 “추억한다.” 혹은 “기억한다.”라고 한다. 스스로는 “많이 담담해졌다.”고 말한다. 온갖 미사여구로 꾸미지 않아도 그 의미는 전달된다. 다른 말로 대체할 필요도 없다. 각자의 방식으로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는 것은 남겨진 이들에게 삶의 또 다른 원동력이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장수>는 죽음이란 어렵고도 철학적인 소재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사건을 극적으로 전개하지도 않고, 카메라를 번잡하게 이동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모자의 언어와 몸짓으로 우리에게 괜찮다고 말한다.
삶은 죽음까지 이해해야 비로소 완성된다.
한 장의 사진으로 떠난 가족을 추억하는 그처럼.
앞으로도 계속 어르신들의 장수 사진을 찍을 영기처럼.
어머니의 전동차를 아들이 타고 다니는 것처럼.
PS. 본 비평문은 제1회 전주단편영화제 [프로그램 노트]에 실린 글입니다.
사진출처:
[출처] 10월 제작지원 <장수 長水> 촬영스케치|작성자 Oscar HAN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anmovie&logNo=221130388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