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란 Dec 13. 2018

상점 주는 법

<눈치껏>-배은혜

<눈치껏>-배은혜 / 2017 / 29min 55sec 



상점 주는 법



사회생활로 얻는 것은 눈치뿐이다. “많이 배우겠습니다.”는 “열심히 눈치껏 행동하겠습니다.”라고 말하려다가, 자신도 모르게 기지를 발휘한 ‘눈치’ 덕분에 튀어나온 말이다. 듣기 좋게 ‘예의를 배운다.’지 실상은 그곳에서 튕겨 나가지 않고, 버틸 힘을 기르는 법을 습득하는 것뿐이다. <눈치껏>은 유쾌하면서도 따뜻하게 우리의 ‘눈치 연대기’를 담는 데 집중한다. 


뭐하나 낯설지 않은 게 없는 태권도장에서 수연의 눈치는 슬프게도 관장님이 키우는 카멜레온보다 못하다. 카멜레온은 처세술이라도 할 줄 알지만, 수연에겐 그럴 만한 초능력이 없다. 심지어 그녀는 천천히 배울 수 있는 특권도 가질 수 없는 ‘보통’의 존재다. 


출처: <눈치껏> 스틸컷


첫날, 그녀는 누구냐고 물어보는 아이의 말에 대답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관장님에 의해 빼앗긴다. 눈치 만렙의 백 사범의 사회생활은 너무 따라가기 버겁다. 아이들과 친해져야만 하는 목적의식은 수연을 스스로 낯부끄럽게 만든다. 수습 사범에게 주어진 일이 고작 아이들의 신발 정리라 해도, 뭐든 빨리 배워 적응해야 하는 한국 사회에선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두 손을 꼭 모으고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수연의 모습은 너무나 친근해서 웃픈 동시에 ‘나와 같아’ 씁쓸하다.  


출처: <눈치껏> 스틸컷


빠른 적응을 위한 백 사범의 간섭은 수연에겐 아이들의 무차별적인 인사와 같고, 사건의 원흉인 상점 스티커와 다를 바 없다. 백 사범과 아이들의 텔레파시를 받아내기 위해 수연은 그동안 보고 들은 남들의 눈치 스킬을 장착한다. 그러나 타인이 만들어준 가면을 쓴 수연에게 돌아오는 것은 대책 없는 어른들의 술주정과 고집스러운 아이의 장난뿐이다. 물론 한 번은 웃음으로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의 눈치력을 사용한 대가로 수연은 자신의 슬픈 자화상을 더 비참하게 발견하게 된다. 


<눈치껏>이 말하는 이상적인 눈치는 뭘까. 백 사범의 눈치법은 수연의 눈치법과 다르다. 사회초년생이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냐 만은, 반드시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알아야만 한다. “너희 다 상점 줄게.”란 말이 불러온 비극을 경험한 수연이라면, 우리라면 공감할 것이다.    


출처: <눈치껏> 스틸컷

‘수연의 눈치력 키우기’는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다. 상사와 밥을 먹으면서 “천천히 먹어 천천히.”란 말을 들어 봤을 거고, 하루 차이 나는 후배에게 “솔직히 쉴 수 있을 때 쉬는 거예요.”란 말을 애정 듬뿍 담아 으스대기도 했을 것이다. 자신이 힘들게 습득한 눈치력을 자랑하며, 회사의 눈치법을 만드는 중일지도 모를 일이다.   


<눈치껏>은 눈치 먹이사슬을 위트 있게 보여준다. 수연은 백 사범과 관장님의 눈치를 보고 백 사범은 관장님의 눈치를 본다. 그렇다면 관장님은 누구의 눈치를 보는가? 학부모는 물론이고, CCTV의 눈치를 본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갑과 을을 명확히 나누는 것을 즐기고, 그로써 안도하는 사회가 만든 결과다. 따라서 수연과 백 사범, 관장님은 CCTV 속에서만큼은 같은 입장으로 불특정한 다수에 의해 유리 안에 갇힌 카멜레온처럼 말없이 눈만 깜빡거린다. 그러나 CCTV로는 현실을, 진실을 읽을 수 없다. 함부로 사람을 판단할 수도 없다. 


수연의 따끔한 가르침은 분명 어색한 부분이 많지만, 고집을 부린 아이에게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것이 아마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그녀만의 방법으로 아이를 마주했다는 점이다. CCTV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한 그녀의 결단은 완벽하지 않았으나, 그녀다웠고 사범다웠다.  


출처: <눈치껏> 스틸컷


결국 <눈치껏>은 수연을 통해 우리에게 사회 속에서 ‘나만의 눈치법’을 쌓길 바란다. 수연이 보고 배운 모든 눈치 스킬들은 그저 타인의 생활방식일 뿐이다. 모름지기 자신의 힘으로 만든 가면이 더 사용하기 쉽고 편리한 법이다. <눈치껏>을 통해 자신만의 오답 노트를 만든 이들이라면, CCTV는 그저 안전용 카메라일 뿐임을 확신할 것이다.


<눈치껏>은 사람들 속에 섞여 조화롭게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지극히 평범한 백 사범 같은 이들처럼 자유스럽게, 자연스럽게, 또 능글맞게 ‘상점 주는 법’을 잘 활용하길 응원한다.






글_‘씨네몽’, 김진실



PS. 본 비평문은 제1회 전주단편영화제 [프로그램 노트]에 실린 글입니다.























배은혜 감독의 인터뷰가 궁금하다면?!, (사진 출처 포함) : 

https://blog.naver.com/owlpic/221136842966


매거진의 이전글 정해진 결말도 답이 되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