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타운> _전수일 감독
아메리카 타운 America Town (2017)_전수일
드라마 | 한국 | 2018.12.06 개봉 | 94분 | 15세이상
<아메리카 타운>은 기지촌 여성과 가난한 사진관 아들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인간다운 순수한 사랑을 갈망하는 이들의 아득한 현실을 담고 있다. 기지촌에서 살면서도 몽키 하우스가 궁금한 대책 없는 영림과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는 15살 소년 상국의 삶 속엔 결여된 것이 딱 하나 존재한다. 사랑. 바로 조건 없는 사랑이다. 이를 감독은 ‘어머니의 사랑’으로 표현한다. 양아버지에게서 도망쳤음에도 기지촌에서 사는 영림과 폭력적인 동네 형들에게 돈을 받고 음란 사진을 현상해주는 상국의 하루 속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양아버지는 영림에게 사과를 마치 짐승처럼 뜯어먹는 현실을 안겨주었다. 아버지의 무관심은 상국에게 달랑 한 장의 청재킷을 입고 음란 사진을 현상하는 기술만 늘게 했다. 안타깝지만, 그들을 지켜줄 사람은 침만 뱉을 줄 아는 악덕 사장과 다방 여자와 놀아나는 아버지, 즉 사랑에 무능력한 자들뿐이다. 따라서 영림과 상국의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다. 그들은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아메리카 타운> 안에서 진정한 사랑을 아는 이들은 단 두 명뿐이니까.
영림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상국의 속이 뻔히 내다보이는 무표정은 <아메리카 타운>만의 언어다. 영화 속에 담긴 무거운 주제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한국과 미국의 수평적이지 못한 관계가 드러날수록 영림의 목소리는 더 날카로워지고, 상국은 눈물로 무표정을 씻어낸다.
과연 사랑으로 그들의 인생을 구원할 수 있을까. <아메리카 타운>은 당연한 듯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가진 힘은 물론이고, 앞으로 얻을 수 있는 권력이 있다 해도 결코 영림과 상국은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없을 것이라 못 박는다. 잔인하지만, 그들이 사는 아메리카 타운은 아메리카 드림은 물론이고 어떠한 희망을 발견할 수 없는, 결코 따뜻해질 수 없는 세상이다.
두 인물의 접점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있다. 영림과 상국은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영림이 서럽게 울면서 지나가는 상국을 곧장 불러 세울 수 없는 것은 마음대로 전화 한 통 할 수 없는 자신의 현실로는 상국의 울음을 그치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상국을 위로하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첫 경험을 주는 것뿐이다. 그리고 당연하듯, 상국의 소원은 성병으로 이뤄진다.
상국은 성병에 걸렸음을 알고도 영림을 만나기 전과 같은 우유부단함을 버리지 못한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회피하고 마는 그에게 새로운 사건은 절대 발생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지옥 같은 현실에 일어날 사건 속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발견할 가능성은 없을 테니까.
영림을 변태에게서 구출한 사건 역시 두 사람에게 엄청난 기대효과를 주지 못한다. 이러한 상국의 한계는 결국 영림을 몽키 하우스에 들어가게 한다. 그의 선택을 옳고 그름으로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어떤 길이든 그들을 구원해줄 수 있는 사랑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사진사가 될 상국의 미래는 매섭게 내리는 눈 때문이라도 펼쳐지지 못할 것이다. 가수가 꿈인 영림을 추락시킨 나를 용서할 수 있는 용기나 사랑을 배운 적 없는 어린 그다.
영화의 끝. 몽키 하우스 앞에서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양공주들을 향해 울음을 쏟아낸 상국의 모습은 <아메리카 타운>이 그릴 수 있는 최선의 결말이다.
어디가 몽키 하우스고 아메리카 타운인가.
상국의 세계와 영림의 세계가 만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이 질문의 답이 될 것이다.
모든 영화가 그렇지 않지만, 처음부터 정해진 결말도 충분한 답이 될 수 있으니까.
글_ 관객동아리 ‘씨네몽’ 김진실
PS. 이 글은 페이스북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전주독립영화관 관객동아리 '씨네몽'회원으로 개봉작을 본 후 리뷰를 올리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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