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시인
뜨겁고 깊고
단호하게
순간순간을 사랑하며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바로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데
현실은 딴전
딴전이 있어
세상이 윤활히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초승달로 눈물을 끊어보기도 하지만
늘 딴잔이어서
죽음이 뒤에서 나를 몰고 가는가
죽음이 앞에서 나를 잡아당기고 있는가
그래도 세계는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단호하고 깊고
뜨겁게
나를 낳아주고 있으니
(주)창비
창비시선 357
함민복 시집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중
나는 그래
부질없음을 깨닫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한 번 자기 감정에 빠져버리기만 하면 되니까. 말 그대로 놓아버리면 된다.
잘못한 것이 없어도 꼭 죄인인 마냥 어깨를 들썩거리며 움츠려들면 된다.
'아무도 모르게'가 아니라 다들 길거리에 쓰러진 날 발견하도록 충분히 티내면서 말이다.
스스로 잔인하고 단호하게 탁 끊고 살아갈 자신이 없는 걸 부끄러워 말자.
말은 바로 하라고, 어디 나만 너만 그러겠나.
그렇게 마음 속 굴을 하나라도 파놓은 사람을 건강한 인간이라 말하며 슬쩍 그 속에 날 끼워 넣는거다.
그렇지 않으면, 순간순간이 행복한 지도 모르는 법이다.
결국 나는 살아가야 하고, 죽음이 끌고 가기 전까지는 치열하게 살아야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