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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Nov 02. 2016

햐얀 저수지

문성해 시인



   햐얀 저수지 / 문성해



  저수지가 얼고 그위로 눈이 왔다

  맨얼음 위로는 감히 올라가지 않더니

  땅과 물의 경계가 없어지자

  사람들이 겁도 없이 그 위로 걸어들어간다


  얼음판 가운데 서 있으니

  내가 오래전에 이 저수지에 빠져 죽은 사람 같다

  내 발밑으로 사람을 뜯어 먹고 산다는 잉어 한마리 지나가는가

  머리카락이 키를 넘기게 자란 그 여자가 지나가는가


  클클거리는 얼음판 밑이

  지금은 아우성이고 폭풍 속 같은 데고

  얼음판 위는 물 속처럼 적막하다


  퍼런 물살 한 조각 신발에 묻히고 걸어나오면

  잉여된 목숨을 사는 듯 피가 훈훈히 데워지고

  신발코를 하얗게 밝힌 채 사람들이 집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주)창비

창비시선 351

문성해 시집, 『입술을 건너간 이름』중





* 나는 그래 *


앞마당을 가로지르고 언덕 밑 포도밭을 헤쳐지나 가면 큰 저수지가 보인다.

누구든 마음으로 품을 수 있는 딱 적당한 크기. 그러나 결코 집으로 가지고 돌아갈 순 없다.

갖은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진 않지만, 내장 깊숙이 씁쓸할 것 같은 이끼가 잔뜩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감히 손가락조차 담기 싫은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포도밭을 등 뒤로 한 채 저수지를 바라보면 왼쪽으론 황토 모래사장이, 오른쪽으론 물 위로 잔뜩 서로 엉켜있는 이끼를 볼 수 있다.

결국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꼴이지만, 거길 갈 때마다 난 주저 없이 왼쪽으로만 걷고 또 본다.

이율 굳이 설명하기도 싫지만, 신비스럽기도 하고, 꼭 이끼에게 쫓겨날까 봐 전전긍긍하기 때문이랄까.


즉, 이렇든 저렇든 이끼는 언제나 당당하고 억척스럽게 저수지의 주인 행색을 하고 살고 있다.

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선 지금까지도 알려진 게 없지만, 정확한 점은 앞으로도 그 자리에서 주인 대접을 받을 거란 확신이 있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듯이 누구도 혀를 차지도, 손가락질하지도, 욕하지도 않는다.

당연한 듯이, 동시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들은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또 그만큼 알려지지도 않아 비밀스러운 관광명소의 주인이 된 지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저 기다린다. 

있는 듯 없는 듯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제 발로 미끼를 무는 낚시꾼들을.

낚시꾼이 자신의 바늘에 걸려들 때까지 기다린 후 쏜살같이 물속으로 낚아채 들어간다.

그리곤 빠져버린 모든 것을 온몸에 잉어의 이빨을 한 채 뜯어먹는다.

조용하게 흔적 없이 서서히.


래서 언제나 그곳은 마법 같은 곳이다.


매번 사고가 끊이질 않는데, 낯선 낚시꾼이 익숙한 그 자리에서 어깨를 떨며 서 있기 때문이다.

죽지 못해 왔다고도 하고, 내일은 더 나을 거란 희망으로 왔다고도 한다. 그리곤 알지 못한 두려움과 끝이 보인 절망감에 찾아왔다고도 한다.

그리곤 답답했던 자신을 내어 논다.


사실 뜯어 먹힌 자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낚시꾼들은 여전히 그들에게 찾아간다.

이끼가 뭘 먹어치우며 사는지도, 악착같이 저수지 안에 숨긴 것도 뭔지 알 수가 없다.

그 어떤 것도 알고 느낄 수 없는데, 왜 또 찾아가 자신을 버리고 오는 걸까.


오늘도 얼마나 흠뻑 젖은 꾼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흠뻑 젖은 나를 스쳐 지나갔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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