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란 Dec 08. 2016

반딧불이

문성해 시인


 반딧불이 /문성해



 김씨는 온몸이 발광체다

 발광하지 않아 어젯밤에도 동료 하나가 달려드는 트럭에 치여 죽었다

 발광하지 않으면 이 도시는 그를 웅크린 쓰레기봉투쯤으로 여길 게 틀림없다


 형광 조끼와 형광 빗자루를 배급받는 순간, 그는

 이제부터 온몸으로 빛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새벽밥과 푸성귀들, 늦둥이의 재롱과 촉수 낮은 백열등으로는

 밤새 빛을 내기란 어려워서 그는 늘 어둠에 밀리기 일쑤였다


 잇몸처럼 물컹하고

 자루처럼 은밀하고

 껌처럼 합체되길 잘하는 어둠이 비적떼로 들끊는 이 도시에서

 빨간 성냥 대가리 같은 빛 하나로 버티는 김씨

 어느날은 죽은 고양이 등에 들러붙은 어둠에 놀라

 산산이 분해될 뻔한 적도 있었다


 오늘도 그는 골목이나 갓갈에 희미하게 켜져 있다

 가로등보다 어두운 그를 향해 촉수 높은 어둠이 나방이 떼처럼 달려든다

 


(주)창비

창비시선 351

문성해 시집, 『입술을 건너간 이름』중



나는 그래

치열하다. 참 치열해. 내일도 그다음 날도 치열하게 살 우리를 생각하니.
김씨의 치열한 삶의 원동력이 무엇인진 중요하지 않다.
그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분명 누군가에겐 간곡한 희망이니까.

이젠 스스로 빛나지 않으면 안 된다.
더 이상 누가 우리를, 나를, 당신을 발견해주지 않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간곡한 희망은 여기에 부합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원석을 좋아하지만, 가공되고 있는 원석을 더 갖고 싶어 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 우린 살고 있다. 자신의 몸을 태우는 걸 열정이나 시행착오라고 말하면서.     
  
그래서 불쌍하고 안타까운 삶이라 말해야 하는가.
계속 살아가고, 또 살아가며 내일을 위해 하루를 발광하며 사는 삶을


굳이 반딧불이를 보며 황홀하다고, 아름답다고 할 필요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햐얀 저수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