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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Aug 25. 2016

덮어준다는 것

복효근 시인


덮어준다는 것 / 복효근



달팽이 두 마리가 붙어 있다

빈 집에서 길게 몸을 빼내어

한 놈이 한 놈을 덮으려 하고 있다

덮어주려 하고 있다

일생이 노숙이었으므로

온몸이 맨살 혹은 속살이었으므로

상처이었으므로 부끄럼이었으므로

덮어준다는 것,

사람으로 말하면 무슨 체위

저 흘레의 자세가 아름다운 것은

덮어준다는 그 동작 때문은 아닐까

맨살로 벽을 더듬는 움막 속의 나날

다시 돌아서면

벽뿐인 생애를 또 기어서 가야 하는 길으므로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덮어줄 수 있는

지금 여기가

지옥이더라도 신혼방이겠다

내 쪽의 이불을 끌어다가 자꾸

네 쪽의 드러난 어깨를 덮으려는 것 같은

몸짓, 저 육두문자를

사람의 언어로 번역할 수는 없겠다

신혼 서약을 하듯 유서를 쓰듯

최선을 다하여

아침 한나절을  년이 흘러가고 있다



실천문학사

실천시선 207

복효근 시집 『따뜻한 외면』 중




 나는 그래

 "널 이해해."란 말이 너무 어려울 때가 있다.
 그냥 딱 한 번만 눈 감고 할 수 있는 말인데도.
 "괜찮아."란 말 역시 입술도 눈빛도 어색하게 만들 때가 더 많다.
 갖가지 이유로 스스로를 정당화해도 쓸쓸함만이 남는 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겠지.

 슬프지만 덮어준다는 건 어쩔 수 없이 힘든 거다.
 결국 서로에게 푹 쓰러지듯 기대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그래서 남에게 자기 어깨를, 품을 내어준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쓸쓸함까지도 포근하게 품을 줄 안다는 것이다.
 그게 건강하다는 게 아닐까.
 그게 바로 덮어준다는 게 아닐까.

 난 그걸 '사랑스럽다'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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