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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Mar 07. 2019

초행자들을 위한 <초행>

감독_김대환 (추천)

<초행>

감독: 김대환 / 2017 / 100min

     

초행자들을 위한 <초행>


출처: 영화 <초행> 중


장기연애 중인 수현과 지영에게 ‘사랑’은 여전히 낯설다. 그들은 서로에게 끊임없이 새로움을 갈구하지 않지만. ‘계속’ 사랑하기 위해 초행자를 자처한다. 이는 여타 다른 연인은 물론이고, 내일을 설계해야만 하는 모든 이가 가진 운명이다.


인천과 삼척을 오가며 각자의 부모님을 만난 두 사람은 자신들을 지배한 두려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모든 게 처음이라서? 아니다. 그 무수한 새것이 영영 낡아지지 않을 것만 같은 막막함 때문이다. 마치 부모가 나의 길을 환히 비추는 뚜렷한 표지판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처럼.  


출처: 영화 <초행> 중

그래서 두 사람은 사랑이란 숭고한 믿음 앞에서 시시때때로 당연한 듯 ‘침묵’한다. 정적은 곧 ‘동행’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연애에서 동거, 임신, 결혼까지 물 흐르듯 진행되어야만 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함께한다. 우리가 수현과 지영의 묵직한 한숨에서도 한 줄기 햇살을 느낄 수 있는 이유다.


<초행>은 “괜찮아, 다들 처음이야.”란 흔해 빠진 말에서 벗어나 그들과 동행한다. 섣부른 판단을 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한곳에 머무를 수도 없는 이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위로한다. 


당신도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고 끝내 침묵을 깨는 연인의 모습을 발견하길 바란다. 누구나 불안의 불씨를 품고 산다. 과감히 불을 지피고 온기를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그것이 우리가 초행자로서 묵묵히 낯섦을 향해 걸을 수 있는 이유이지 않을까.

     





- 글, 관객동아리 씨네몽 김진실

     


PS. 이 글은 전주독립영화관 소식지 2019 March, Vol.118 속 '관객동아리 씨네몽의  자료열람실 추천작'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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