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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Apr 01. 2019

잔혹한 예고편, <바이스>
영화, 브런치무비패스

우리가 잃고 얻는 것

* 브런치무비패스 #5 


<바이스> Vice, 2018 제작  

미국 |  드라마 |  2019.04.11 개봉 |  15세 이상 관람가 |  132분

감독: 아담 맥케이

     

잔혹한 예고편, <바이스>

     

     

익숙한 영화의 열나게 노력한 한방

<바이스>는 익숙한 영화다. 마이클 무어의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2018)와 <다음 침공은 어디?>(2016), 마이클 윈터바텀의 <벌거벗은 임금님>(2015), 나다니엘 칸의 <모든 것의 가치>(2018)를 본 관객이라면 더욱 친숙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 영화들은 화려한 기술을 갖고도, 절대 과시하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은 과시를 위한 치장이 아니다. ‘문제’를 고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집요하게 본질에 파고든다. 음악, 미술, 광고, 뉴스, 도표, 애니메이션, 다른 영화, 공연 등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장르를 기발하게 혼합해 하나의 거대한 흐름(사건)을 만들어낸다. 모순투성이인 과거사를 해체하고 다시 봄으로써 앞으로의 ‘나의 내일’에 무거운 책임감과 경각심을 부여한다.

또한 친절한 해설자를 통해 우리의 무지를 부드럽게 깨우고, 무관심을 자연스럽게 흔들어 놓는다. 마이클 무어는 인터뷰를 통해 총기사건으로 시작한 국민의 인권, 권리에 대해 말한다, 마이클 원터바텀은 러셀 브랜드(배우, 코미디언)를 정면으로 내세워 은행가와 시위 장소를 누비며 기득권이 교묘하게 숨겨왔던 비밀들을 유쾌하게 폭로한다. 나다니엘 칸은 자본이 집어삼킨 현대 예술 시장 속에 들어가 경매사, 아트딜러,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가치’에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바이스>에도 뛰어난 해설자, 커트가 등장한다. 덕분에 우린 딕 체니의 비밀스러운 욕망을 바로 눈앞에서, 그것도 역겨운 ‘날 것’으로 보게 된다. 본 작품의 한 방은 단연 ‘커트’다. 커트를 활용하는 감독의 방식은 다시 생각해도 정말 충격적이었다. (꼭 영화로 확인하길 바란다.)


출처: 영화 <바이스> 중

감독의 전작 <빅쇼트>보다 더 자극적이며 풍자적이다. 하나의 사건에 다르게 반응하는 네 개의 집단을 통해 허술한 체제와 인간의 극한 이기심을 보여주는 <빅쇼트>는 베넷(라이언 고슬링)의 위트 있는 참견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어렵다는 평을 받았다. 반면 <바이스>는 쉽고, 더 재미있다. 오직 한 사람, 딕 체니에게만 집중한다. 밥버러지로 살던 그가 어떻게 미국의 부통령까지 될 수 있었는지, 그의 확고한 신념이 끝내 그릇된 욕망으로 이어지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더 관심을 둔다.

<바이스>는 딕 체니의 삶과 세계를 뒤바꾼 사건들을 적절한 비율로 다루며, 격렬하게 부딪히며 발생하는 접점을 정확히 집어낸다. 딕 체니가 무심하게 “잡아 와”하면 잔혹하게 고문하는 군인들이 보이고, 이라크에 폭탄이 투여되는… 뭐 그런 요점이랄까. 그가 승승장구할수록 망가지고, 버려지고, 좌절하는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우리에게 노출된다. 너무나 정교하고 집요한 나머지 다음엔 내가 폭탄을 맞을 것 같은 그런 불안감까지 가져다준다. 그런 점에서 <바이스>는 교묘한 편집이 일품인 작품이다. 엔딩 크레디트까지 놓칠 수 없다. '나는 미국이 좋아, 미국에선 다 자유로워 돈만 조금 있으면-'란 노래, 화려한 낚싯바늘들, 그리고 '노란 대가리'까지.  


감독의 말대로 ‘존나게 노력’한 티가 작품의 외적에서도 내적에서도 나타난다.

     

출처: 영화 <바이스> 중


◇ 누구인가? 딕 체니를 괴물로 만든 이는..

딕 체니는 9.11 테러가 발생한 그때, 돌연 특별 재량권을 선언한다. 그것도 대통령에게 전화해 비행기에서 내리지 말라고 직접 말한 뒤에 말이다. 그가 거대 권력을 이토록 쉽게 휘두를 수 있게 된 원동력은 “날 사랑하면 증명해! 달라질 거야?”란 아내의 마지막 경고에 있다. 밥버러지의 인생을 바꾼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눈물 나는 사랑이었다. 딕 체니는 헌신적인 사랑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실패 없는 낚시 실력으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했다.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집어내며, 다른 것은 철저히 외면했다.

사랑, 욕망, 외면 그리고 낚시. 다른 경쟁자들이 그를 이길 수 없었던 까닭은 그들은 이를 하나의 독립적인 것으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딕 체니는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자신의 거대한 신념을 만들어냈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엿본 자의 여유는 그렇게 탄생했다.


태풍의 눈에서 홀로 파이를 먹으며, 손을 까닥거리는 딕 체니의 삶은 원래 평범했다. 아내에게 “다시는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라고 약속한 후, 럼즈펠트의 보좌관을 거쳐 난생처음 백악관에 집무실을 얻었을 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누구의 잘못일까. 딕 체니를 인간답지 못하게 만든 장본인이. 출세에 눈이 먼 아내인가, “우리의 신념은 뭡니까?”라고 질문한 그를 비웃은 럼즈펠드인가. 가족을 향한 사랑 때문에 정치권에서 이탈한 딕이 쓱, 던져놓은 낚싯바늘을 덥석 문 조지 W. 부시인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한참 고민하니, 답은 두 가지였다.


출처: 영화 <바이스> 중

우리의 친절한 해설가 커트 답은 린 체니, 아내다. 그녀는 여자가 성공할 수 없는 시대에 태어나 남편을 이용해 자신의 삶을 가장 꼭대기에 올려놓는다. 린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는 딕에게 “당신은 절대 나를 떠날 수 없어.”라고 말했으며, 직접 선거 유세를 이끌었다. 물론 아내의 말에 절대적으로 순종한 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녀의 출세욕은 사랑하는 딸도 막을 수 없었다. 레즈비언 딸을 앞에 두고 “딕, 당신에게 큰 걸림돌이 될 거야.”라고 말하는 린의 얼굴이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나의 답은 ‘아무도 아니다’다. 가장 슬픈 답이기도 하다. 나는 딕 체니의 과거를 모두 뜯어봐도 범인을 색출할 수 없었다. 의미 없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누구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딕은 정말 미친 듯이 열심히 산 인간이었다. 입을 다물고, 아내가 원하는 대로, 항상 충직하게 오직 최고의 자리만을 바라봤다. 그런 그를 멈출 수 있었던 인물이 단 한 명도 없었으며, 심근경색까지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런 맥 빠지는 답을 끌어냈다.


출처: 영화 <바이스> 중

 ◇ 잔혹한 예고편, <바이스>

<바이스>는 군더더기 없이 딱 핵심만을 전달한다. 굳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어렵지도 않다. ‘대통령의 행위는 모두 합법이다.’란 괴변을 품은 단일행정부론과 독재자였던 왕과 파라오가 딕 체니의 다른 이름이란 것만 확실히 이해하면 된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커트의 말이 계속 귀에 맴돌 것이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우린 인생의 흐름을 바꿀 거대한 힘을 무시한다.” 

     

출처: 영화 <바이스> 중

우린 무엇을 잃고, 또 얻고 있는가.

     

현실은 무응답이다. 관심 없으니까. 우리가 아닌 오직 ‘내’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에 관심 있을 뿐. 미국 국민들은 단 한 번의 외면으로 ‘우리’의 권리를 딕 체니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안보라는 명목으로 다른 나라에 폭탄을 던졌고 세계를 흔들어놓았다.

이는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

     

<바이스>를 보고 혀를 차고, 우리나라를 생각하며 한숨도 쉬고, 동시에 안도감도 가졌다가 갑자기 분노하며 욕도 했다.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는 정작 외면하고 무지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영화를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꼈고, 억지로라도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취하며 다 게워냈다. 그러나 뭔가 찝찝하다. 가장 중요한, 어떤 결정적인 것을 간과한 느낌이랄까. 뒷골이 뻐근하고, 온몸이 서늘한 게 꼭 사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조시 W. 부시를 비웃은 내가 되려 딕의 미끼를 문 것 같다.


결국 아주 잔혹한 예고편을 132분 동안이나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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