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의 배를 가진 아빠

단상#7. 마법을 부리지 않아도 좋으니

by 우란

동생의 말에 따르면 아빠에겐 4개의 배가 있다.

밥 배, 술배, 커피와 빵 배(하나다), 과일 배.

신기한 점은 저녁에는 남산만하던 배가 아침에는 홀쭉해진다는 점이다.

물론 살이 안 찌는 체질은 아니다.

애석하게도 내가 증인이다.


언제부턴가 나의 관심사는 아빠에서 그의 배로 바뀌었다.

너무 부풀어서 터지면 어떡하지?

갑자기 배가 들어가지 않으면?

아기들의 배처럼 탱탱하지도 않으면?

누군가와 부딪혀 넘어지기라도 하면?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고 나면, 딱 아빠의 참외배꼽과 벌어진 윗니 두 개가 남았다.

그리고 웃음이 난다.


그는 조기축구의 신이었다. 그 덕에 우린 어렸을 때부터 체육대회 때마다 모든 운동 종목에 출전해야만 했다.

아들은 태권도, 검도, 수영, 축구를 모조리 섭렵했다.

딸 하나는 등산을 가장 싫어하게 됐고, 다른 하나는 역시나 자연스레 운동과 멀어졌다.

아빠 이름 석 자에 운동은 매일 두드리는 망치질만큼이나 중요한 삶의 여가였다.

그래서 그의 배는 신중하게 저녁과 아침을 구분해 등장했다.

그 덕에 나는 매일 아빠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남은 건 참외 배꼽과 벌어진 윗니 두 개뿐이다.

사실 그것만으로 사랑스러운 아빠를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점차 여려지는 그를 표현하기엔 이 두 단어 말곤 없다.

웃을 때 드러나는 이빨과 어떤 옷이든 대신 피팅해주는 남산만한 배의 콜라보는 아빠의 현재 트레이드 마크다.


나는 4개의 배가 그의 배에 속해 있음에 감사하다.


오십에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행동보다 많아 그런다.

4개의 배를 채워주는 일이 몇 마디 말보다 좀 더 쉬워서 그런다.

부끄럽지만, 그렇다.

마법을 부리지 않아도 좋으니, 좀 만 더 계속 보여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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