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끝났다

단상#5 한 번의 가위질로 시작한-

by 우란

단상#5 <그렇게 끝났다>


어렸을 때 사촌 동생의 손가락을 가위로 자른 적이 있다. 물론 실수였다.

색종이와 살이 함께 씹혀 들어가고 말았다. 순식간에 살이 벌어졌고 피가 뚝뚝 흘렀다.

어린아이의 가위질이 세면 얼마나 셌겠느냐먄, 동생은 집이 떠나가라 울었다.

꼭 내가 살점을 발라낸 것 같았다.

혼난 기억은 없다. 동생만큼 나 역시 패닉 상태였다.

고모는 억지로 웃으며 동생을 달랬고, 놀란 엄마는 지나치게 헐떡거리는 나를 보고 더 놀랐다.


그 기억은 내가 사람에게 가한 첫 번째 폭력사건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사촌동생을 보면 그 생각부터 난다.

악의적인 폭력은 아니었으나, 여전히 잊지 못했기에 실수가 사고가 명백한 폭력사건이 되어버렸다.

사실 몇 번이고 가위가 무섭지 않으냐고 묻고 싶었다.


"나는 가위 무서운데 너는 괜찮니?"

"가위 잘 못 사용하면 큰일 나잖아, 그렇지?"

"넌 칼을 주로 쓰니?."

"-"

정말 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그러나 한 번도 물어본 적은 없다. 기억난다고 할까 봐.

정말 아팠다고 할까 봐. 지금도 가위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할까 봐.


친구는 오버한다고, 웃기지 말라고 했다.

살점이 그렇게 쉽게 떨어지는 거냐고, 무슨 공포영화냐면서.

심지어 폭력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라고 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고.


[다음]에서 폭력은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에 쓰는, 물리적인 수단이나 힘'을 뜻했다.

내가 동생의 손가락을 고의적으로 잡고, 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해 강제로 가위질을 했어야 '폭력'인 것이다.

색종이를 접으며 놀다 일어난 예상치 못한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건이다.


그러나 어느새 신부 드레스를 입고 목사님 앞에 서있는 동생을 보니.

마음이 더 복잡했다. 한술 더 떠,

"아이를 키우다가 그 사건이 생각나면 어쩌지?" 란 두려움이 엄습했다.


처음엔 경악스러웠고, 이후엔 놀랐다.

원인을 탐구한 결과,

나는 사촌동생의 손가락을 잘라놓고도 단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었다.

울기만 했고, 놀랐다고 되려 위로받기만 했다.

아무리 어린아이였어도 해야 할 말은 했었어야 했는데.

당시 고모가 엄마 눈치를 보고 있었음을 암묵적으로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 폭력사건으로 나의 뇌리에 새겨진 거겠지.


미안하다고 했다. 동생은 뜬금없는 말에도 생글생글 웃어줬다.

아마 정신이 없어 제대로 듣지 못했을 것이다.

건성으로 들은 척한 것이어도 나는 좋았다.


나 스스로가 애매하고 허무하고 어처구니 없었으나

그렇게 끝났다.


매거진의 이전글가장 오래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