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년에게
<홀로 내팽개치다>
어제 집에 가는 길에 쌍년을 봤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느님께 제발 저 쌍년만큼은 가장 처절하고 불쌍한 인생을 선물하시고, 거둬 가실 때도 제일 고통스럽게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다. 너무나 죄송하고 송구스럽지만, 제발 이 부탁을 들어달라고 매일 밤 간절히 빌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네가 아들을 낳던 딸을 넣던 상관없다고 편지했다. 네 피를 갖고 태어난 순간 이미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질 거라고, 아무런 죄 없는 아이들에게 침을 뱉고 얼굴을 때리던 너의 과거가 네 자식들에게 현재로 뒤섞여 나타날 거라고. 개처럼 맞을 거고, 원숭이처럼 놀림받을 것이며 풀어내지 못한 울분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면서 결국엔 제대로 된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 울분이 사라지지 않는 한 너의 죄는 점점 더 무거워져 끝내 자신을 죽일 거라고.
하느님께 편지를 쓰며 밤을 지새우던 날들이 어느 순간 무의미했졌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그제야 세상에선 털어낼 수 없는 응어리도 존재함을 인정했다. 눈물이 아니라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가슴속에 묵직한 돌덩이가 돌아다녔고, 이내 잠잠해졌을 때 그렇게 아픈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나는 피해자다.
가해자를 향해 미친년이라고, 당장 달려가 죽여버리고 싶다며 울분을 토해도 절대 그 쌍년을 피해자로 만들 수가 없음을 너무나 잘 아는 피해자.
"어린 마음에 그런 거지. 원래 애들은 다 그렇게 크는 거지."
홀로 내팽개칠 수 있는 아픔이었다면, 분노였다면 집 앞에서 그 쌍년과 눈을 마주쳤을 때 심장이 내려앉진 않았겠지.
당연하게도 나는 여전히 사과받지 못했다. 번번이 내 앞에 나타나는 얼굴만 백색인 년을 봤을 때도, 난 사과 그 비스무레한 것도 받아볼 수 없었다. 그 독사 같은 눈깔, 짤딱만한 키와 역겨운 역삼각형 얼굴도 여전했다. 지금도 그런 쌍년으로 살고 있음을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불쌍하지도 않다. 어차피 불행한 삶을 살다가 고통스럽게 죽을 삶임을 단언하기 때문이다.
홀로 내팽개칠 수 있는 건 오직 자기의 괴기스러운 몸뚱이밖에 없음을 깨달았을 때,
아니 스스로 자신의 몫을 쓰레기통에 쳐넣을 때, 넌 내 얼굴을 반드시 떠올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