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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May 28. 2019

결코 지겹지 않다, 김군

영화 <김군>, 브런치무비패스

* 브런치 무비 패스 #5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군> Kim-Gun , 2018 제작

한국 |  다큐멘터리 |  2019.05.23 개봉 |  12세이상관람가 |  85분

감독: 강상우


결코 지겹다 말하지 않아, 김군



데니스 간젤의 영화 <디벨레> 속 독일 학생들은 나치의 만행을 공부하는 역사 시간에 지루함을 표출한다. 노골적으로 "이제 그만 얘기할 때도 됐지 않나요?", "그놈의 나치즘!, 파시즘!, 지겨워 죽겠어!"라고 말한다.

상업영화 <꽃잎>을 시작으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수없이 영상으로 재현되었다. 대표적으로 <박하사탕>,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가 있고, 최근 개봉작 <1987>은 5.18을 본 사건의 시작으로 끼워 넣었다.

그리고 <김군>이 새로운 노선 위에 등장한다. 


왜 계속해서 우린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를 소비할까. 왜 영화인들은 끊임없이 그 역사를 재현할까.  답은 간단하다. 잊지 않기 위해서. 그 피의 역사를 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더구나 광주 이야기는 여전히 속 시원한 결말을 쓰지 못했지 않은가.


다시 <디벨레>로 돌아오자.

출처: 영화 <디벨레> 스틸컷

학생들은 선생님의 제안으로 단체를 하나 만든다.

오로지 선생님의 말에 복종해야만 하고, 반드시 개인이 아닌 단체로 모든 것을 행동해야만 하는 조건임에도 아이들은 순식간에 융합된다.

스스로 단체 로고를 만들고, 이름을 붙이고, 심지어는 인사법까지 만들어낸다. 단체에 속하지 않으면 친구가 될 수 없다. 온 거리에 로고를 페인트칠하기 시작하고, 똑같은 옷을 입고, 단체에 반기를 드는 친구를 가차 없이 피의 심판대에 올린다.


"하이! 히틀러!"라 말하지 않을 뿐이다.

결국 그들은 파시즘에 잠식되어 끝내 피를 부르고 만다.

선생과 학생 모두 손을 번쩍 들어 파도의 현상을 흉내 낼 때 관객은 경악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적인 결말.

선생이 모든 활동이 피시즘에 어떻게 빠져드는지 경험하는 쇼였음을 밝히자, 단체에 깊게 빠져있던 아이는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을 쏴버린다. 이 영화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영화한 작품이다.

더 이상 파시즘에 빠지지 않을 거란 안일한 인식을 향한 경종이다. 또한 후대가 피의 역사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강하게 피력한다.


5.18을 다룬 영화는 모두 제각기 다양한 주제의식을 가져와 역사를 재현했다. <박하사탕>은 계엄군을 또 다른 피해자로 그려, 정부의 폭력성을 비판했고, <화려한 휴가>는 광주시민들의 숭고한 희생을 그대로 보여주며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역사임을 상기시켰다. <택시운전사>는 광주를 처음으로 제삼자의 시각에서 그렸다. 외국인의 눈과 광주가 아닌 서울(외부) 사람을 통해 이 역사가 결코 광주에게만 해당되는 과거 아님을 보여줬다. 거기에 광주를 탈출하는 두 외부인을 보여주면서 광주를 아픈 역사로만 재현하지 않았다. 희망을 쏘아 올린 광주로 관객에게 색다른 감명을 주었다.


그리고 <김군>.

출처: 영화 <김군> 스틸컷

이 작품은 오로지 인터뷰로만 구성되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재현하고자 만든 영화가 아니다.

지만원이 주장하는 광수들을 찾으며, 그가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라 주장하기 위해 만든 다큐도 아니다.

물론 시작은 제1광수로 지목된 저 사람의 정체를 명확히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감독은 지만원이 표시한 빨간 점과 그 화살표를 역으로 따라가, 그 진원지를 알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김군>은 5.18 광주를 잊지 않고, 전두환을 비난하고, 시민군의 희생을 기억하자는 '강력한 메시지'와는  다른 선상에서 본 이야기를 시작한다.

출처: 영화 <김군> 스틸컷

<김군>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묻는다.

끊임없이 물으면서 제1광수의 정체를 밝히려 하지만, 쉽지 않다. 민주화가 뭔지도 몰랐던 그들이 시민군이 되어 총을 들었던 건, 내 이웃이 가족이 아무런 이유 없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도청 앞에서 리어카에 실린 시신 2구를 본 후에야 전두환이 누군지 알았다고 했다. 언제 잡혀갈지 몰라 복면을 하고 다녔고, 함께 다녀도 절대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들은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는 주인공들이 아니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당장 총에 맞아 쓰러져도 전혀 알 수 없는 현실에 놓여있었던 일반 시민들이었으니까.


어렵게 그의 이름이 김군이며, 넝마주이 출신임을 알게 되지만 그게 <김군>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아니다.

'김군이 그를 찾아 헤맸던 수많은 이에게 발견되지 못한 것은, 당시 계엄군의 총에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가 영화가 내린 김군의 정체다.


<김군>의 시선은 뚜렷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그들의 말을 대신해줄 수 있는 산 자 역시 숨죽여 죽어가는 중이란 가슴 아픈 통찰.

출처: 영화 <김군> 스틸컷
"우리가 이 놈을 찾아내는 것도 이놈이 스스로 증명하는 것도 웃겨, 이건 역행하는 거지. 왜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아? 김군? 둘 중 하나는 됐겠지. 죽었던가 스님이 됐던가."
"난 또 이 말하고 잠 못 자."
"오월 얘기는 그만 하자."
"사람들이 이걸 받아들여요? 이걸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은데 제발 왜곡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난 지금도 이발소 가면 머리를 내가 감아. 엎드려서 물만 대도 무서우니까. 그냥 내가 감아."
"그 툇마루에 먼저 발을 내닫은 그 친구, 그 친구 덕분에 내가 산 거지. 그래서 난 평생 못 잊어."


오월 광주 이후 그들의 삶은 평범하지 못했다. 광주를 지켜낸 후유증으로 트라우마로, 여전히 오월 광주를 잊지 못한 채 가슴에 품고 살고 있다. 그런 이들에게 우린 39년간 '10일간의 항쟁'에만 관심을 가졌었다. 어떻게 계엄군과 맞섰고, 당신 시민군의 희생을 눈 앞에서 목격한 감정을 날것의 언어로 듣고 싶어 했다. 참 잔인하게도 그게 후대인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는 방식이라 믿었던 것이다. 분명 필요한 관심인데도 신중하지 못했고, 배려하지 못한 부분이 수두룩 했겠지.

 

<김군> 속 함께 장갑차를 탔던 시민군들은 39년이 돼서야 만났다.

서로를 보며 한 첫마디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습니까?"가 아니라 "살아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였다.

감독은 직접 준비한 영상을 그들에게 보여주며 김군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눈 앞에 있는, 살아남은 '김군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출처: 영화 <김군> 스틸컷

영화의 끝자락, 전남도청에 새벽빛이 드리운다.

수많은 김군 중 한 명이 도청의 정문을 연다.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김군을 이야기하고 싶으나 힘들다. 그러나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우린 놓여있다. 감독은 <김군>을 4년 동안 제작하며 이 같은 딜레마에 빠져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김군>을 세상 밖으로 담담하게 꺼내놓았다.


나는 그런 <김군>에 어떠한 딜레마를 느끼지 못했다. <디벨레>가 전한 경종을 똑같이 느꼈다.

사진 속 김군의 존재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이것이 5.18 광주에만 해당하는 시선이겠는가.

우리 역사엔 정말 궁금해해야 할 후유증이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지겹지 않다.


결코 지겹지 않다. 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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