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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Apr 19. 2019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
나는 함께 못 떠나겠어

(브런치무비패스)단순한 이야기에 과한 감정이 섞일 때

* 브런치 무비 패스 #5 


고양이 여행 리포트 The Travelling Cat Chronicles , 2018 제작  

일본 |  드라마 |  2019.05 개봉 |  전체관람가 |  119분 

감독: 미키 코이치로



<고양이 여행 리포트>, 나는 함께  못 떠나겠어


출처: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 스틸컷

# 단순한 이야기

자동차 위에 고양이가 등장한다. 

고양이 이름은 나나, 길고양이 출신이다. 나나가 주인으로 삼은 인간은 사토루란 남자다. 영화는 나나와 사토루가 차를 타고 출발하면서 시작한다. 


단순한 이야기다. '나나의 새로운 가족 찾기'. 

주인공 사토루는 홀로 남겨질 나나를 위해 자신의 친한 친구들을 찾아간다. 가장 소중한 고양이에게 따뜻한 가족을 선물하는 것이 그에게 남겨진 마지막 삶의 목표다. 나나의 새 주인이 될 후보는 총 4명. 어린 시절 뛰어놀던 코스케, 전화상으로만 통화했던 한 친구, 고등학교 시절 단짝 친구들 스기와 치카고 부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을 지금까지 키워주신 노리코(이모). 


사토루는 친구들에게 찾아가면서 자신의 과거를 현재와 자연스레 연결한다. 물이 끓는 주전자로, 친구와의 대화로, 밥을 먹다가도, 예고 없이 쑤욱 과거에 빠졌다가 순식간에 현재로 돌아온다. 그 장치는 너무나 익숙해 특별한 감흥을 주진 않는다. 하지만 충분한 설득력은 있다. 

사토루의 과거를 통해 우리는 고양이가 그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행복을 주는 존재인지를 알 수 있다. 


출처: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 스틸컷

# 실패한 주인공들, 비교대상의 출현

<고양이 여행 리포트>에는 제목에 맞게 단 한 명의 악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카리스마 넘치는 고양이가 극을 적극적으로 이끈다. 나나의 존재는 흔하다. 길고양이가 흔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이 영화에서 맡은 역할은 그리 색다르진 않다. 안타깝게도 무난한 이야기 구조를 뒤엎을 주인공의 매력은 본 영화에선 뚜렷하게 찾을 수 없다. 

솔직히 나나는 과한 내레이션 때문에 실패한 주인공이다. 나나의 목소리를 인간의 목소리보다 더 크게  녹음이유를 모르겠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의 특이하고 과장된 감정은 종종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데, 이 역시 사토루를 포함한 모든 인물에게서 여지없이 터져 나온다.


더구나 동물을 주인공으로, 직접 말하고 행동하면서 사건을 해결하기까지 하는 이야기 소재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영화 시장에서 <고양이 여행 리포트>가 내세울 자신감은 없어 보인다. 사실 비교 대상이 생각난 것만 해도 이 작품에겐 치명타다. 


*이후 글에는 스포가 있습니다.


<베일리 어게인> 속 베일리와 이든 (스틸컷)

영화의 주제 측면에서는 <베일리 어게인>(라세 할스트롬, 2017)과 비교된다.  

사토루가 나나를 키울 수 없는 이유는 너무 뻔하다. 나나가 사토루를 끝까지 떠나지 않겠다는 의지도 너무나 아름답지만 익숙하다. 약봉지와 갑작스레 고통을 호소하는 장면만으로도 관객은 사토루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린다. 그 이상까지도 충분히. 

그러나 감독은 사토루에게 굳이 '저물어가는 냄새'를 입힌다. 물론 참신하지만, 그 냄새를 통해 진정으로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란 의문이 남는다.


<베일리 어게인> 속 베일리는 몇 번의 환상을 통해 개의 목적을 스스로 찾는 데 성공한다. 주인을 향한 충성심과 사랑이 베일리의 삶의 목적을 확인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개의 내레이션이 전혀 어색하지 않으며, 오히려 행복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나나의 목적은 사토루를 영원히 떠나지 않는 것이다. 죽음도 둘을 떼어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고양이 여행 리포트>는 인간과 고양이의 눈물 나는 우정을 다룬 영화로만 남는다. 그러나 <베일리 어게인>은 우정과 사랑 넘어 삶을 향한 철학을 담아낸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고 개가 인간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는 데 감동을 넘어 깊은 감명까지 준다.  

 

물론 자신을 위해 울어준 사토루를 향한 나나의 일편단심은 보는 모든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하지만 감동을 느낄 여유가 없다. 나나의 목소리가 2시간 내내 쉴 새 없이 관객의 귀에 파고들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나나에게 필요한 대사는 몇 가지뿐이었다. 


1. 노리코: "나나, 사토루가 행복하게 살았다고 믿어도 될까?"  
    나나: "물을 필요도 없지 노리코."

2. 나나: "난 단 하나뿐인 너의 고양이야. 영원히 너의 고양이로 남을 거야." 

3. 나나: "모두가 네 이야기를 하고 있어. 널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로 인해 이어져 있어. 이 행복한 얘기들이 들리니? 네가 있는 곳은 그날의 무지개가 뜨니? 언젠가 우리가 갈 거야. 큰 이야기보따리 들고 갈게."


<미스터 피그> 속 하워드(돼지)와 유뱅크스 (스틸컷)

나나와 사토루의 이별여행을 그린 측면에선 <미스터 피그>(디에고 루나, 2016)와 비교된다. 

죽음에 가까워진 유뱅크스는 하워드를 도축장에 보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도축장 앞에서 돌연 하워드를 데리고 도망친다. 그 비인간적인 공간에서 하워드를 두고 올 수 었었다며, 오로지 그를 위한 보금자리를 찾아 나선다. 

이 작품 역시 이별여행을 담고 있다. 유뱅크스에게 하워드는 이미 자신의 가족이었고, 딸은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다가갈 수 없는 존재였다. 딸과 사이가 소원해진 이유와 하워드가 자신에게 갖는 의미를 유뱅크스는 미묘한 표정과 몇 마디의 말로 전달한다. 지나치게 웃음을 유발하지고 않고, 눈물을 유도하지도 않는다.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한 후회와 미련을 강조하지도 않다. 그저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죽음을 천천히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별여행의 마침표를 찍을 준비를 한다. 


유뱅크스는 죽음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어떻게 죽느냐.'가 아닌 '어떻게 삶을 마무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다가올 죽음이 두려운 것보다 하워드의 보금자리와 딸과의 오해를 푸는 일이 그의 마지막 염원이니까. 

숨이 가파지는 와중에도 하워드를 위한 식사는 빼먹지 않고, 화내는 딸에게 "언제나 난 너에게 보살핌을 받는구나. 미안하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엄청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나나와 사토루의 이별여행은 과거로 회귀하는 특별장치가 있음에도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단한 과정이, 철학적인 결말이 아니어도 괜찮은데 말이다. 

둘의 이별여행 역시 <미스터 피그>와 같이 죽음과 가족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정체되어있다. 반복적으로 나나의 얼굴을 타이트하게 잡으며 관객에게 직접 보여주기 위해 혈안이다. 즉 나나와 사토루의 관계를 천천히 뜯어볼 수가 없다. 이미 그들의 관계는 정해져 있기에 관객은 관계의 깊이에 대해 생각하거나 빠질 수가 없다. 


결국 <고양이 여행 리포트>는 과정과 결말을 하나로 통합해버린다. 

나나를 향한 사토루의 고백("나의 마지막 고양이가 되어줘서 고마워.")과 사토루를 향한 나나의 고백("난 단 하나뿐인 너의 고양이야")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전부가 되어버린 셈이다.  


두 편 모두 죽음으로 이야기를 끝낸다.

유뱅크스의 죽음은 정겹고 따스하다. 그러나 사토루의 죽음은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출처: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 스틸컷


정말 솔직하게, 재미없다는 말을 너무 길게 한 것 같다. 







<미스터 피그>가 더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dkdnfk9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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