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란 Aug 07. 2017

당신의 건넨 따스함, <미스터 피그>

<미스터 피그> 따사로운 햇빛이 함께 하는 그들의 여정.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스터 피그 2016 제작

멕시코  /  드라마  /  95분  

감독 : 디에고 루나


미스터 피그, 당신의 따뜻한 시선


     

미스터 피그, 유뱅크스는 전 재산인 농장이 팔릴 위기에 처해있다. 몸도 성치 않은 그가 유일하게 다 쓰러진 농장에서 키우고 있는 동물은 돼지 한 마리, 하위다. 하나밖에 없는 딸의 걱정과 원망 속에 지칠 대로 지친 유뱅크스는 죽기 전 딸에게 목돈이라도 남겨주려 하위를 도살장에 데려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그는 하위를 도살장에 팔지 못하고 도망치듯 달아난다. 도살장을 점령하고 있는 최신식 기계들을 보곤 불같이 화를 내며 이런 곳에 하위를 죽게 놔둘 수 없다고 소리치면서. 최신식 기계들은 그의 눈에 야만적이며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망할 기계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유뱅크스는 하위에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난다.


그렇게 <미스터 피그>의 진정한 여행기는 시작한다. 영화 초반 유뱅크스와 하위의 관계가 흔한 농장주인과 동물의 관계가 아님을 알 수 있다면, 영화 중반 이후로는 그의 숨겨진 이야기가 드러나면서 꼬여있던 매듭이 점점 풀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유일한 말동무이자 삶의 동반자인 하위를 친한 친구에게 데려가는 내내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어 산소통을 찬 자신보다 더. 나아가 그는 모텔까지 찾아온 딸을 설득해 하위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 위한 여정을 이어간다. 

출처: 영화 <미스터 피그> 중

<미스터 피그>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돋보이는 영화다. 

아무 말 없이 떠나버린 아버지를 어떻게든 이해하려는 딸과 굳이 진실을 말하지 않고 혼자 모든 책임을 지려는 아버지. 그들의 여정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다. 그러나 점차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부녀간의 꺼내지 못했던 진심이 하위로 하여금 조금씩 밖으로 넘치듯 흘러나온다.

모텔 침대 위에서, 도로 위 차 안에서, 그리고 배 위에서.

 

그는 아내를 너무 사랑했기에 그녀의 외도를 눈치챈 후 조용히 떠났었고, 딸을 너무 사랑하기에 자신의 병도 알리지 않았다. 딸은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어쩔 수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한다. 그의 짧은 몇 마디였지만, 어느새 딸은 아버지의 꿈을 무모하다고 비난하지 않고, 그와 눈을 맞춰 함께 걷기 시작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꺼지는 거였어." 
"언제나 난 너에게 보살핌을 받는구나. 미안하다."  

마지막 장소를 향해 가는 아버지와 딸의 모습은 이제 더는 불안하거나 초초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산소통 배터리 포기하면서 하위를 섬으로 데려가는 유뱅크스. 그의 곁에 묵묵히 함께 있는 딸. 이제 그들 사이엔 엉켜버린 감정도 없으며 못다 한 이야기도 없다. 엉켜있을 시간이 그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했고, 딸은 하루빨리 아버지의 마음에 짐을 덜어주고 싶었으니까.   

출처: 영화 <미스터 피그> 중

도착 장소까지 가기 위해 탄 배 위에서 유뱅크스의 여정은 끝난다. 청명한 하늘과 웃음을 머금은 딸의 얼굴, 그리고 자신의 품 안에 있는 하위를 끝으로 그의 눈은 스르륵 감긴다. 

미스터 피크의 삶은 너무나 고단했고, 외로웠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정말 아름다웠다. 해변에 도착하고 배에서 내린 딸의 뒤로 들리는 다급한 목소리, 눈을 감고 있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손을 핥고 있는 하위, 그를 껴안고 우는 딸의 모습. 그들의 뒤에서 환하게 비추는 햇살까지. 슬퍼하고 안타까워해야 할 그 장면은 <미스터 피그>의 최고의 장면이다.


가족에게서 스스로 도망쳐 나온 아버지는 다시 딸을 만나고, 새 가족이었던 하위를 보내주면서 코 앞에 다가온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제야 자신을 이해하는 딸과 함께 살 수 있는데도, 충분히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데...  오히려 그는 담담하게 자신의 결정과 그 이유를 딸에게 털어놓는다.

"사람들은 죽음을 너무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여 그래서 죽기 전 중요하고 의미 있는 얘길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아. 모두 의미 없어. 의미 없는 것들이야."

살면서 충분히 했으면 된 것이다. 더는 부족한 자신을 옭아맬 필요가 없다. 아버지는 딸에게 자신의 죽음이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우린 죽음을 앞둔 그에게서 초초함이 아닌 따뜻함이 느껴진다. 질투, 욕망, 배신과 같은 어두운 요소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한없이 깨끗하고 정겨우며, 평화롭다. 

죽음마저도 <미스터 피그>에선 따사로워 보인다.

 

하위가 주인의 마음을 안다는 듯 해변 모래사장에 누워 파도를 맞다가 일어나 자연스럽게 카메라 앵글에서 사라진다. 그 마지막 장면이 긴 여운으로 남는 건 분명 이유가 있다. 난 이를 글로 다 풀어쓰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에 또 한 번 따뜻함을 느낀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토리보다 돋보이는 것들, <돌아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