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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Aug 22. 2017

스토리보다 돋보이는 것들,
<돌아온다>

 내가 하지 못한 이야기를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나 봐요.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돌아온다 2017 제작

한국 / 드라마  /  100분 

감독: 허철  


스토리보다 돋보이는 것들, <돌아온다>    

 


<돌아온다>에선 ‘왜’란 질문이 무의미하다. 그 짓궂은 의문점을 갖고 막걸리 집 대문을 두드릴 여유도, 이유도 없다. 그저 변사장의 깨져있는 거울 마냥 그들의 얘기를 가만히, 조용히 지켜보며 들어주면 된다.


주영은 남편을 떠나보내야 했던 이유와 책임을 묻고자 여행객인 척 변사장을 찾아온다. 그리곤 어디서, 어떻게, 왜 이곳에 왔는지 숨긴 채 비밀스럽게 변사장을 주시한다. 관객은 그런 주영에게 모든 시선을 집중한다. 그녀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관찰한다. ‘분명 저 가방에 뭔가 있다!’하면서 그녀를 이 진부한 스토리를 뒤집을 열쇠로 인식한다.    

출처: 영화 <돌아온다> 중

여교사는 군대 간 아들을 그리워한다. 아니 온 마음 다해 사랑해주지 못한 아들을 미안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욕쟁이 할머니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집 나간 아들을, 술 중독 아저씨는 돈 들고 도망간 동남아에서 온 아내를, 떠돌이 스님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변사장은 자신이 매몰차게 밀어냈던 아들을 기다린다. 그들에게 막걸리 집은 언제나 기다릴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란 글귀가 써진 액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슬픔을 털어낼 수 있는 그런 염원의 공간.


그러나 주영의 아픈 그리움은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매번 녹이던 그 글귀는 유일하게 그녀의 세상만큼은 밝게 비추지 못한다.

  

<돌아온다> 속 주영의 등장은 필연적인 요소이면서 엄청난 변수다. 날카롭게 선 그녀의 시선과 몸짓으로 막걸리 집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변하기 시작한다.

우린 주영을 통해 마을 사람들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면서, 그들에게 일어나는 사건들과 심리적 변화를 함께 경험한다.


주영의 존재처럼 <돌아온다>엔 변수가 많다. 

다 알 것 같은 이야기가 어렵게 뒤엉키지 않았는데도, 쉽게 지루하다 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산 위에 있는 막걸리 집. 변사장이 아들의 비난에도 꿋꿋이 운영하는 그 공간은 참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공간이다. 안개가 항상 자욱한 그곳은 현실인지 환상 속인 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소리 없이 시끄럽다. 조용하고 한적하며 따뜻하게 보이는 공간이지만, 언제나 풀어내지 못한 응어리가 각 인물의 잔을 소란스럽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구분이 소용없는 유일한 이 공간은 그들의 모임 장소로 쓰임으로서 더 극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출처: 영화 <돌아온다> 중

<돌아온다>를 이끄는 중추적인 힘은 어떤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변사장에 있다. 그는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자책하는 만큼 그의 눈도 더 깊어졌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 누구보다도 혼란스럽지만, 꼿꼿이 그 무게를 버티고 서있어야만 했다. 

변사장은 자신에게 손가락질하며 비난하는 아들을 꿈에서도 잊을 수 없어 매번 눈앞에 환상을 현실처럼 꺼내놓는다. 아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가슴 깊숙이 꺼내지 못했던 말들을 대신하고 있었지만, 꽉 다문 입은 아들이 깨고 간 유리조각에 베어 피 흘리고 있었다. 주영이 흐느끼면서 건넨 아들의 유골함을 자기 두 손으로 받기 전까지 변사장은 자신의 피를 닦아내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떠나보내고 용서하고 기억한다. 방법이 폭력적이었던, 감동적이었던, 억지로 끼워 맞췄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삶은 결국 남겨진 사람들의 것이고, 그리움을 포함해 느끼는 모든 감정은 우리가 인간답게 살려는 본능에 꼭 필요한 것들이니까.  

출처: 영화 <돌아온다> 중

그들의 하루가 평생 막걸리 집에서 마무리된다 해도 괜찮다. 혼자여도 함께할 수 있으며, 그리움을 언제든 희망으로, 추억으로 혹은 깊은 여운으로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변사장의 막걸리 집은 과거 안개에 사로잡혀 있던 곳이 아니다.

그리움은 기다림으로 연결된다. 그 자연스러움을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올 거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까닭은 이미 그 끈을 몇 번이고 놓아본 적이 있기 때문이고, 이젠 그 행위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화 <돌아온다>는 본래 연극 <돌아온다>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연극을 보진 못했지만, 충분히 굵직한 인상을 남기는 연극파 배우들 덕분에 생생한, 날것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상투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음에도 짙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그리움과 복수, 후회, 용서, 그리고 곳곳에서 터지는 유머까지 표현하는 모든 등장인물의 몸짓 언어만으로도 만족스러웠던 영화다. 

 

<돌아온다>는 스토리보다 돋보이는 것들이 너무 많은 작품이다.

    





ps. 이 글은 문화화예술전문잡지 글마음조각학교, <너나답다> '씨앗호'에 실린 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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