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를 하고 걸어오는 그 소녀가 잊히지 않는다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다섯의 순수 Innocent 15, イノセント15, 2016 제작
드라마 / 일본 / 2018.05.03. 개봉 / 88분 / 15세 이상 관람가
감독: 카이 히로카즈
긴과 나루미의 순수는 번번이 어른에게 도살당한다. 요점은 그 어른이 죄다 ‘가족’이란 점이다. 긴의 아빠는 아내를 떠나보낸 후 혼자 아들을 키우면서 남자를 사랑하게 됐다. 긴에게 게이임을 들킨 후, 혼란스러워하는 아들을 향해 오히려 당당하게 “이해해라.”라고 말한다. 나루미의 엄마는 매춘부 일을 하며 딸을 폭력과 폭언으로 키워왔다. 나아가 돈을 벌기 위해 딸 역시 매춘부로 만들려 한다. 그들은 동성애자, 매춘부여서가 아니라 자식을 키우고 있는 부모로서 <열다섯의 순수>에 등장해 관객을 경악스럽게 한다.
긴은 아빠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그동안 숨겨온 진실을 고백하는 아빠와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였을 뿐이라 말하는 아저씨 사이에서 그는 현 상황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게이도 유전이 되나요?”라 묻는 아이의 두려움 가득한 눈과 야구방망이를 자신도 모르게 휘두른 모습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는 뭐가 옳은지 그른지 알지 못하는 존재로 지금껏 살고 있었다.
나루미는 엄마에게 여전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받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바뀌지 않는 지독한 현실 속에 그녀는 수긍할 뿐이다. 그러나 나루미는 자신의 마음만은 다치지 않도록 꿋꿋이 견디고 있었다.
그래서 소년과 소녀는 함께 각자의 가족에게서 도망친다. 나루미는 아빠를 찾아가는 길에 긴을 대동한다. 그러나 그들은 또다시 거리로 내몰리게 되고, 아빠에게 버림받은 나루미는 또다시 엄마의 폭력에 노출된다. 긴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아빠의 사랑을 다시금 강요받기 시작한다.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가장 최우선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울타리가 사라져 버린 그들의 부모는 '사랑'을 비인간적으로 자식에게 표출한다. 남자에게 몸을 바쳐야만 하는 나루미가 엄마를 버리고, 나루미를 구하는 긴의 모습을 '성장통'이라 명명해야만 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가늠할 수 있을까.
가족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헌신적인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두 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 위해 다시금 '사랑'에 대해 질문한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어떤 행위이며 감정일까.
긴이 나루미에게 "너를 좋아하고 싶어."라 고백하기까지 그들은 가슴에 풀지 못한 응어리를 담고 있어야 했다. 몸이 성장하고 있는 만큼 자신의 마음 역시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고 있었던 사춘기 소녀와 소년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가족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오히려 억압했다.
따라서 두 아이의 만남은 <열다섯의 순수>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나루미는 긴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러나 긴에게 사랑은 위태롭고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일 뿐이다. 그들의 관계는 사건들 속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돼 보이지만, 관객의 불안함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진 못한다. 물론 그들에게 햇살이 비추고 있음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지만, 나루미와 긴이 타고 가는 오토바이가 이미 한 번 넘어져 쓰려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달리겠지.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오토바이만큼이나 그들의 삶이 위태롭게 전개될 것이란, 불안한 예감 들지만. 주저하지않고, 벗어나고자 부단히 용기 내겠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란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자식을 버리고 떠나려는 엄마가 자신을 마중 나온 아들에게 “난 행복해지면 안 돼?”라고 말한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그 뻔뻔함이 <열다섯의 순수>에도 가득하다. 동성애, 매춘부를 시작으로 폭력과 무관심이 난무하지만, 긴과 나루미의 탈출은 계속되어야 함을 감독은 힘주어 말하고 있다.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 등교하는 나루미의 모습은 이 작품의 명장면이다. 어떤 것도 답을 내릴 수 없었던 긴을 행동하게 하는 그녀의 그 공허한 얼굴은 ‘열다섯의 순수’를 잃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마음과 다름없다. 분홍색 카트를 모는 할머니와 같은 그들을 향한 마지막 경종이다. 따라서 <열다섯의 순수>는 긴과 나루미의 순수를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작품이다.
단순히 행복한 영화라 말할 순 없다. 행복을 찾으려는 열다섯의 몸부림을 담은 영화라곤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온갖 혼란스러운 것들에게서 스스로 벗어나고자 하는 가족을, 나아가 세상을 향한 ‘거부권 행사’가 긴과 나루미에겐 최선의 방법이었다. <열다섯의 순수>는 자신의 삶을 산다는 목적으로 외면하기 바빴던 부모(어른)에게 날아든 레드카드인 셈이다.
PS. 이 글의 일부는 페이스북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 게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