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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Jun 15. 2019

파괴, 가장 최선의 방법
<데몰리션>

 <하나레이 베이>에 홀렸다면, 추천한다.

<데몰리션> Demolition , 2015 제작

미국 | 드라마 | 2016.07.13 개봉 | 청소년관람불가 | 100분

감독: 장 마크 발레

     

     

파괴, 가장 최선의 방법

     

     

상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누군가는 이겨내고, 외면하고, 또 절망한다. 

여기, <Demolition>의 방식은 좀 색다르다.


출처: 영화 <데몰리션> 스틸컷


주인공 데이비스는 아내를 교통사고로 떠나보냈다. 그러나 그는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 대신 온 거리를 쏘다니며 끊임없이 자기 고백을 하는데, 모두 가학적이고 폭력적이며 심지어 비도덕적이기까지 하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충동적인 파괴를 일삼으며 “아내가 죽었는데 괴롭거나 속상하지도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의 파괴적 행동은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아닌, 아내를 잃은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는 ‘나’에게서 비롯되었다.


출처: 영화 <데몰리션> 스틸컷


평범하기만 했던 삶의 궤도에서 이탈한 데이비스. 

그는 마주해야만 했던 거대한 태풍 속으로 일말의 고민도 없이 걸어 들어간다. 

돈을 먹어버린 과자 자판기 회사에 장문의 편지를 보내는 걸 시작으로 말이다. ‘환불 요청’이란 제목으로 ‘아내를 잃은 자신의 심리상태 보고서’를 작성하며 시간을 보내고, 아내의 환영을 보며 밤을 지새우고, 회사에선 골칫거리로 전락한다. 

설상가상, 편지의 답신은 데이비스를 더 가여운 미친놈(?)으로 만들어버리는데… 

과연 우린 아내와 대화하던 데이비스의 장난기 넘치는 미소를 또 볼 수 있을까. 

그는 그 답신으로 상실의 구멍을 메꿀 수 있을까.   


출처: 영화 <데몰리션> 스틸컷
출처: 영화 <데몰리션> 스틸컷


태풍이 지나간 자리엔 다시 생명이 살아 숨 쉰다고 한다. 데이비스의 태풍은 여전히 매섭게 그를 갉아먹고 있다. 부수고 또 부서지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인 셈.


자신을 자학하는 몸짓에 이창동의 <박하사탕>이 떠올랐고, 무표정으로 내일을 또 살아가려는 방식에서 마츠나가 다이시의 <하나레이 베이>가 생각났다.


출처: 영화 <데몰리션> 스틸컷


놀라움의 연속인 스토리만큼이나 영상편집도 뛰어난 작품이다. 데이비스의 내면을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표현하는데 매력적이다. 강한 흡입력을 일으키는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유명한 감독이 그려내는 ‘상실을 받아들이는 한 인간의 일생’이 궁금하다면, <데몰리션>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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