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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Jun 26. 2019

저는 좀 난처하네요, <칠드런 액트>

브런치무비패스, 영화 <칠드런 액트>

* 브런치 무비 패스 #5    본 리뷰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 2017 제작  

영국 |  드라마 |  2019.07.04 개봉 |  12세이상관람가 |  105분

감독 : 리차드 에어 


저는 좀 난처하네요, <칠드런 액트>



결론부터 말하겠다. 

원작은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영화 <칠드런 액트>는 명배우 엠마 톰슨 말곤 정말 볼거리가 없다.

출처: 영화 <칠드런 액트> 스틸컷

"나 바람피울 것 같아."


피오나(엠마 톰슨)는 시민들이나 기자들, 동료들 사이에서 유별나고 별난 판사로 불린다. 누구보다도 자신만의 뚜렷한 신념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피오나는 확고하고 일관성 있는 태도로 최선을 다해 판결을 내리기에 주위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는다. 

강인한 여성이었다. 남편에게 "나 바람피울 것 같아."란 말을 듣기 전까진.

소원해진 부부관계가 오직 직장에만 매진하는 그녀 때문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소리가 <칠드런 액트>의 시작이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피오나를 밀어 넣고,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되짚어볼 예정이라 말한다. 남편은 바람이 아닌 이혼을 하자고 협박했어야 했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너무 터무니없지 않은가. 적어도 피오나의 상황에 몰입은 하게 해 줘야지. 난 처음부터 물음표를 갖고 엠마 톰슨을 봐야 했다.  


피오나는 '남편의 바람 협박'에 반응하기도 전에 '여호와 증인 사건'에 정신을 빼앗긴다. 엄연히 사건을 맡은 것이지만, 이야기의 빠른 전개를 위해 그녀는 전과 다른 행동을 보인다. 평소와 같았다면, 바로 법정에서 빠르게 판결문을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피오나는 수혈을 거부하는 17세 소년 애덤을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눈 후 판결을 하겠다 말한다. 물론 신앙과 자식 중 이미 자식을 선택했지만, 아들의 고집 때문에 수혈을 거부하는 '부모의 증언'도 그녀의 이례적인 행동을 부추긴 요소 중 하나다. ('여호와 증인 사건'은 종교적 신념 때문에 수혈을 받지 않고 죽겠다는 애덤의 부모와 어떻게든 애덤을 살리고자 하는 병원의 법정 싸움이다.)

피오나는 법원에서 병원으로 곧장 출발한다.

자신만의 사상에 푹 빠져있는 소년 애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사람이 피오나 자기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애덤과 피오나는 서로가 상대의 삶을 뒤흔들 태풍인 줄도 모르고, 대화하고 노래 부르고 기타를 치고, 마지막까지 웃으며 작별인사를 고한다.  

출처: 영화 <칠드런 액트> 스틸컷

"판사님과 함께 살래요."   


피오나는 단번에 백혈병에 걸린 애덤이 영특한 소년임을 알아차린다. 죽음을 앞에 두고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열을 올리는 애덤에게 펼쳐질 무궁무진한 미래도 두 눈으로 선명하게 보았다. 자신을 보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에서, 떨리는 손가락으로 기타를 치며 행복을 느끼는 행동에서, 자신의 신념을 언어가 아닌 확고한 눈빛만으로 전달하는 대화에서 삶의 의지를 확인한 판사는 단호하게 판결문을 읽는다. 

17세 소년 애덤에게 반드시 수혈하라고. 


애덤은 수혈을 받고 살게 됐지만, 그 순간 잊을 수 없는 고통도 함께 겪는다. 자신의 신념이 산산조각 났음에도 서로를 부둥켜안고 안도의 눈물을 흘리는 부모를 봤기 때문이다. 애덤은 그들에게서 깊은 분노를 느낀다. 그는 제 인생의 표지판 같았던 부모에게서 배신을 당했다며, 자신에게 새 삶을 준 피오나에게 애원한다. 

스토킹이 범죄임을 알면서도 공허한 마음을 채울 방법을 몰라 버려진 강아지처럼 판사를 쫓아다닌다. 

판사님과 함께 살겠다고. 

아주 당연한 진리를 말하듯 당당하게 피오나의 면전에 '제 삶을 책임지세요.'라 못 박는다. 


그는 삶에 새로운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당장 내일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독실한 신자로 정해진 틀 안에서 세상을 바라봤던 애덤이었다. 스스로 틀을 깨고 나온 이도 긴 시간 방황하는 게 인간이다. 애덤은 피오나의 판결문 하나로 자신을 둘러싸있던 알을 깨트려야 했다. 아주 무기력한 상태에서 말이다.


결국 그의 분노의 화살이 피오나에게 갈구의 화살이 되어 날아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피오나는 애덤에게 그냥 판사가 아니었다. 

출처: 영화 <칠드런 액트> 스틸컷

"그냥 판결만 하지 왜 제 인생에 끼어들었나고요!"


피오나는 일관성 있는 판사다. 남편의 협박에도 재판은 절대 허투루 진행하지 않았으며, 주변 사람에게도 여전히 똑같은 평을 받았다. 애덤을 만나겠다고 한 결정은 그녀의 직업적 판단과 감정적 동요가 함께 내린 것이었다. 애덤이 자신을 스토킹 하는 것을 알고도 그녀는 그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린다. 옳고 그름을 알려주면서도 따뜻한 미소와 조언도 잊지 않는다. 소년의 눈엔 냉정하게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피오나는 판사란 신분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남편 역시 그녀에게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이라 비난했으나 피오나는 그저 프로페셔널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의 마음을 날카롭게 후벼 파고, 동시에 상대의 바늘에 찔리기도 한다. 상대가 품었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각자의 상황과 감정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칠드런 액트>는 애덤과 남편이 아닌 피오나에게 책임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게 옳은 답인가. 나의 의문은 여기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 영화는 발신자가 아닌 수신자의 입장을 더 고려하고, 생각한다. 삶이 혼란스러운 애덤과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믿는 남편의 손을 잡고 피오나에게 윽박지른다. 너의 삶의 태도가 정말 인간적이고 옳다고 믿는 거니?라고 되묻는다. 난 그녀가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여성이라 느끼지 못했다. 오만한 확신과 판단으로 애덤의 삶에 관여하고 뒤흔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덤은 피오나의 인간적인 조언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였어야 했다. 8살 어린아이가 아닌 18세 소년이었으니까. 적어도 스스로 잘못된 방식으로 판사에게 집착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몰려오는 외로움과 슬픔, 공허함까지도 다 느꼈어야 했다. 피오나의 말대로 그는 새로운 생을 향해 활짝 날아들 수 있는 정말 '사랑스러운 소년'이었으니까.

그러나 애덤은 자신을 외면하는 판사를 원망한다. 

출처: 영화 <칠드런 액트> 스틸컷

 "난 내가 나름대로 친절하다고 생각했는데..."


<칠드런 액트>는 결점이 없는 피오나에게 끊임없이 결점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녀를 둘러싼 남성들은 모두 지극히 정상인 피오나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애덤 사건 판결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피오나가 본 영화의 주제다. 그렇다면, 대체 피오나는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자신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인간을 그리고 싶었다면, 첫 장면에 일에 사로잡힌 여성이 아니라 남편을 무시하고 비난하는 아내를 보여줬어야 했다. 인간관계에서 우위에 서 있다 믿는 인간의 뼈아픈 통찰을 원했다면, 애덤이 뉴캐슬에 왔을 때 경찰서 유치장에 집어넣었어야 했다. 


우연히 알게 된 사랑스러운 소년은 다시 병원으로 향한다. 암이 재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덤은 모든 치료를 거부한다. 피오나에게 버림받은 직후였고, 하필 법적 효력이 있는 18세였기 때문이다. 

자유를 위해 죽음을 택한 애덤은 피오나의 앞에서 삶을 마감한다. 


그녀는 애덤의 죽음으로 냉전이었던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할 희망을 갖게 된다. 이 한 줄을 위해 <칠드런 액트>는 피오나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애덤은 자신의 의지로, 남편은 계획적인 일탈로 본인들의 갈등을 해소했다. 그러나 피오나는 그들에게 내내 끌려다니기만 했다. 


성장하는 영화도 자아를 성찰하게 하는 영화도 아니다. 리차드 에어가 말하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다른 건 몰라도, "계속 나 사랑해 줄 거야?"라 말하며 결국 혼자 책임을 지겠다는 그녀를 어떻게 이해하고 응원하겠는가. 뭐, 더 상냥하고, 따뜻하고, 덜 바쁜 피오나가 될 거란 말인가. 


나야 말로 묻고 싶다.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지금까지 당황스러움을 숨길 수 없어 극단적 관객이 되어버린 1인의 변이었다. 

그러나 전 좀 많이 난처하네요, <칠드런 액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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