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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Aug 20. 2019

이게 바로 당신 그 자체였군요

<이타미 준의 바다>_정다운 감독 

이타미 준의 바다 The Sea Of Itami Jun , 2019 제작  

한국 |  다큐멘터리 |  2019.08.15 개봉 |  전체관람가 |  112분 

감독: 정다운      


이게 바로 당신 그 자체였군요          



보는 눈이 즐거운 영화라 간단히 말할 수 없어서 좋았다.

'즐겁다'란 단어 말고도 아름다운 수만 가지의 수식어가 떠올랐고, 다 말할 수 없어 아쉬웠다. 세상에 나오는 데 8년이란 긴 시간이 걸린 작품인 만큼, 깊이 있고 대단한 영화다.

분명, 들판 한가운데, 갈대밭에 숨어있는 그의 건축물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 느낄 것이다.

<이타미 준의 바다>는 눈이 황홀한 만큼 웅장하고, 귀가 편안한 만큼 고요하게 다가온다.

출처: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컷

영화는 이타미 준의 일대기를 시간의 순서대로 되짚어보는 단편적인 방식이 아닌 그의 결과물인 ‘건축물’을 탐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의 이름은 유동룡으로 재일 한국인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조센징, 한국에서는 일본인으로 꽤 오랜 시간 ‘이방인’으로 불려 왔다. 무척 외롭고 괴로웠으나 아버지가 족보를 가슴에 품고 일본으로 삶의 터를 옮긴 것처럼, 그 역시 끝까지 한국 국적을 버리지 않았다. 


유동룡은 누구보다도 강인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은 악의적인 행동과 말에 휘둘릴 사람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바다의 마을 시미즈에서 살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과 가치관을 확립한 그였다. 즐거울 때나 울적할 때나 항상 자전거를 타고 바다를 보러 갔던 어린 소년은 자연과 함께 더 단단해졌고, 이내 혼자만의 힘으로 ‘견고한 소속’을 만들어냈다. 그를 억압해왔던 경계선 역시 자유로움을 담은 ‘이타미 준’이란 예명의 탄생으로 단번에 무너졌다.      

출처: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컷

이타미 준에게 자연은 삶 자체였다.

그의 인생에 대한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저서나 각종 인터뷰가 아닌, ‘자연 안에 세운 그의 건축물’에서 찾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실제로 수‧풍‧석 미술관, 먹의 공간, 포도호텔, 방주교회… 모두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압도하고 있다. 이질적이거나 인위적인 자연미가 아닌 마치 자연에서 함께 나고 자란 듯한 ‘자연스러움’이 건축물 곳곳에 스며들어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시간은 곧 동료였다. 시간을 따라잡고, 멈추고, 놓쳐버리는 사람들과 달리 그는 단 한 번의 다툼 없이 긴 여행을 시간과 함께 했다. 그 결과 이타미 준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시간의 집’을 만들 수 있었다.  


자연 본래의 야성미와 사람들의 따뜻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수많은 시간의 집


그는 자연의 야성미와 사람의 따뜻함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아우라를 발산하는 건축’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건축은 완성이 된 후로도 인간과 같이 계속 살아간다.”는 그의 말이 지금도 머릿속을 맴돈다. 아니, 사실 그 밖에도 이타미 준이 보여준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과 직선이 떠오른다. 그 선들이 지금 내 앞에 모여 하나의 거대한 공간을 형성한다면, 분명 아름다울 거란 상상도 함께 덧붙이면서.     

출처: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컷 _ '풍 미술관(2006)'

"아름다운 사람일 때 아름다운 건축을 만들 수 있다."


그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빛과 어둠을 동시에 품을 줄 알았고, 긍정과 부정의 조화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반드시 품고 있는 고독을 자연이 주는 고요함에서 찾은 것도 그였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먹의 집(2006)’에서 차갑고 날카롭게만 여겼던 고독의 따뜻함을 찾을 수 있었고, 자연의 소리와 밝은 빛을 가득 담는 ‘풍 미술관(2006)’에서는 공허한 마음을 치유받는 느낌이었다. 커다란 호수에 나도 모르게 모든 고민을 내려놓게 되는 신비로운 힘을 지닌 ‘수 미술관(2006)’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직접 찾아가 보진 않았으나, <이타미 준의 바다>만으로도 충분했다. 

출처: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컷 _ '수 미술관(2006)'

<이타미 준의 바다>는 유지태의 내레이션, 이타미 준을 기억하는 많은 동료들과 가족들의 인터뷰, 긴 스토리를 이어주는 음악 그리고 그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담은 카메라 영상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덕분에 이타미 준이 평생 걸어온 건축의 길에 푹 빠져 여행할 수 있었다. 참 따뜻했다.


그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하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게 정답이 아닐지라도,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인생의 고비를 잘 해쳐나갈 수 있게 하는 힘(지혜)은 될 수 있으니까.

<이타미 준의 바다>는 곧 '이타미 준 그 자체'로 기억될 것이다. 

여권 비자 문제로 자신을 가로막은 공항에서 건축물을 보여주며 "이게 바로 나, 이타미 준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아무래도 평소 좋아하던 산책길 앞에 자리한 큰 나무를 껴안고 속삭였던, 그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본 영화의 찬양을 그만 멈춰야겠다.(당연히 더 많은 이가 보고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아.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아.”     








글_관객 동아리 씨네몽 김진실



PS.  이 글은 페이스북 '전주 디지털 독립영화관'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전주 독립영화관 관객동아리 '씨네몽'회원으로 개봉작(무료)을 본 후 리뷰를 올리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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