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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Sep 05. 2019

내 걸음을 막지 말란 말에서
다 끝난 이야기

영화 <틴 스피릿> 엘르 패닝 주연

* 본 리뷰에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틴 스피릿 Teen Spirit , 2018 제작  

미국 |  드라마 |  2019.09.04 개봉 |  12세 이상 관람가 |  93분 

감독: 맥스 밍겔라 



내 걸음을 막지 말란 말에서 다 끝난 이야기



바이올렛은 아빠가 떠난 농장에서 엄마와 함께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에 점점 지쳐간다. 세상에 잔뜩 불만 있는 표정을 유지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일을 하고 또 하루를 마감한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은 오직 음악뿐이다. 아이팟에 담긴 몇 개의 음악만이 바이올렛을 흥분시키고 끊임없이 움직이게 한다. 
17세 소녀는 매일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동네 라이브 바에서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삶에서 번번이 탈출한다.

그리고 라이브 바에서 바이올렛은 미래의 음악 선생님이 될 블라트를 만난다. 블라트는 왕년의 오페라 가수였다. 그는 소녀의 목소리에 반한다. 파리에 있는 딸을 생각하며 바이올렛이 크게 될 거라 칭찬한다.   


영화 <틴 스피릿>은 주인공과 조력자가 만난 후, 오디션 '틴 스피릿'광고를 보여주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전까지는 바이올렛의 우울한 내면을 보여주는데, 주로 노래를 틀어 놓고 각종 화면 전환을 통해 노출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바이올렛의 주된 무대인 농장, 풀밭, 라이브 바, 파티 장소가 주를 이루고 있고 모든 장면의 주체는 이어폰을 끼고 있는 그녀다. 그러나 관객이 소녀에게 느끼는 감정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는 십 대의 우울하고 처연한 상황에서 오는 안타까움 정도다. 영화의 사건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 그녀 주체임에도 말이다. 이는 암울한 현실에 사는 그녀에게 벌어지는 운명 같은 사건들이 관객의 감정선을 효과적으로 건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출처: 영화 <틴 스피릿> 스틸컷

블라트는 오디션을 앞두고 "운을 빌어주세요."라 말하는 소녀에게 "운으로 되는 건 없어."라고 말한 뒤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쳐 보인다. 운이 아닌 내가 '나 자신'을 믿는 다면 할 수 없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그 말에 힘입어 바이올렛은 살얼음판인 오디션에 끝까지 살아남는다. 최종 라운드에 올라설 기회의 끝에서 한 번의 좌절을 맛보긴 하지만, 결국 생방송 진출권을 따낸다. 그리고 우승 트로피까지 거머쥔다. 

생방송 진출권과 바이올렛에게 온 기회(앨범 계약 건)는 <틴 스피릿>의 반전 요소였지만, 사실상 눈에 다 보이는 수였다. 반전을 위한 장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 즉 이미 확보된 티켓이었다. 


바이올렛은 오디션을 보기 이전에 이미 축복받은 인물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소녀는 가정사가 모난 만큼 좋은 목소리를 대신 가졌고, 우연히 라이브 바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한때 잘 나갔던 오페라 가수였다. 심지어 단 5명을 뽑는 예선에서 한참 부족한 퍼포먼스 기술을 갖고도 당당히 통과까지 한다. 소녀가 가진 거라고는 목소리 뿐이었고 가수가 될 재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지만, 바이올렛은 처음부터 '흔한 시골 소녀'가 아닌 '엄청난 매력을 가진 소녀'였다.


말과 교감하고, 이어폰을 낀 채 음악에 취해 몸을 흔들고, 혼자 이 무거운 세상을 견디고 있다는 무표정은 바이올렛에게 신비로운 효과를 잔뜩 주었지만, 그 그림은 너무나 쉽게 벽에 걸려 전시된고 만다. 

즉 <틴 스피릿>은 영화의 유일한 주인공에게 오디션 티켓을 주지 않고는 이야기를 전개할 수 없다는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출처: 영화 <틴 스피릿> 스틸컷

바이올렛의 감정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이어가는 점은 충분히 설득력 있다. 도망간 아빠가 남긴 목걸이를 엄마에게서 받고, 내내 차고 다니다가, 마지막 라운드에서 빼고 무대에 올라가는 소녀의 성장은 <틴 스피릿>의 명장면으로 꼽힐 것이다. 가슴을 치며, 넌 할 수 있다는 블러트의 말이 바이올렛의 심장을 새롭게 뛰게 했지만, 직접 두 다리를 움직여야 하는 건 그녀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유명 가수가 제안한 계약에 사인하지 않고 "아마 평생 후회할 거예요."라 웃으며 말한 소녀는 무대 위에서 "네가 내 인생에 중요한 것 같아? 내 걸음을 막지 마!"라고 노래한다. 이제 내 삶의 주인은 바이올렛 자신이란 확고한 외침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아주 이상적인 결말이다. 영화가 내놓은 결말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것으로 판단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바이올렛이 꼭 우승 트로피를 가졌어야 했을까. 시골 소녀의 자아 찾기를 굳이 금색으로 색칠할 필요가 있었을까. 

<틴 스피릿>이 중요하게 여겼어야 했던 건 결과가 아닌 과정이었다. 그 섣부른 결과로 인해 영화의 인물들은 색채를 잃었다. 블러드와 밴드 아이들, 심지어 오디션에 참가한 인물들까지 바이올렛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출처: 영화 <틴 스피릿> 스틸컷

<라라랜드>와 <비긴 어게인>, <싱 스트리트>, <스타 이즈 본>을 기대했다면 좀 많이 섭섭할 수 있다. 
심장을 움켜줘야 하는 노래는 주인공의 무표정에 간신히 팔딱거리고, 그녀의 무표정은 '배우 엘르 페닝의 매력이다.'란 결론 말곤 더 말할 수 없는 지점에 있다. 
<틴 스피릿>은 명벽하게 음악영화지만, '방황하는 십 대'의 이야기란 껍질을 벗지 못한다. 나아가 예술적인 기교가 잔뜩 들어간 영화라고도 평가받지 못할 듯싶다. 

사실  영화 제목에서부터 묘한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오디션 명이 '틴 스피릿'인데, 주인공 바이올렛이 오디션에서 우승한 것 말고는 영화가 자신 있게 내놓은 다른 이야기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무리 세상에 새로운 이야기와 주인공이 존재하지 않는다지만, <틴 스피릿>이 내세운 주인공은 너무나 흔한 인물이다. 


관객을 매료시키는 영화는 익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내뿜는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바이올렛의 매력은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디션에 우승한 그녀의 다음 스텝이 궁금하지 않은 이유는 명확하다. 끝까지 음악소리를 뚫고 나오지 못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생각난다면 단번에 이해될 것이다. 심지어 바이올렛의 노래는 청각적으로도 통쾌함을 주지 못한다.
그녀는 매력적인 음색을 갖고 있다. 문제는 주인공 바이올렛이 아니라 '배우 엘르 패닝'이 가졌다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솔직히 감독이 자신했던 영화 속 삽입된 음악이나 바이올렛이 부른 음악들 역시 귀를 사로잡지 못했다. 가슴을 확 끌어당기는 요소와 답답함을 뻥 뚫어주는 한 방이 없다는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출처: 영화 <틴 스피릿> 스틸컷

세상 속에 녹아들지 못하는 십 대의 소녀가 아니라 소녀를 연기한 배우가 기억에 남는 영화라고는  평가할 수 있겠다. 하지만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긴 여운을 남기지 못하는 현실은 그녀에게서 특별함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각 이야기를 연결하는 지점이 눈에 훤히 보이고, 있느냐만 못하는 반전 요소와 끝에 도착하기도 전에 "당연히 우승했겠네."란 결론을 맺게 하는 점까지 모두 포함해서.   


내 걸음을 막지 말라고 소리치던 소녀에게서 건네받은 이야기는 그 말을 내뱉은 순간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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