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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Oct 01. 2019

시작됐으나 그 끝은 알 수 없는 영화, <미드90>

"땡볕! 너도 갈래?"에서 시작된 이야기에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 있을까.

미드90 Mid90s, 2018 제작  

미국 |  드라마 |  2019.09.25 개봉 |  청소년관람불가 |  85분

감독: 조나 힐



시작됐으나 그 끝은 알 수 없는 영화, 

<미드 90>


출처: 영화 <미드90> 스틸컷

여기 태어나서 한 번도 사랑스러운 손길을 느껴본 적 없는 아이가 있다. 아빠의 존재는 궁금하지도 않고, 형이 밖으로 나가 놀기만을 기다리는 사춘기 소년, 스티비. 엄마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형 이안은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동생의 삶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엄마와 형 역시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중이지만, 그들보다도 더 어린 스티비가 이를 이해하기란 힘든 일이다. 더구나 큰 아들의 생일에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며 부끄러워하는 엄마에게 좋은 시선을 보낼 관객은 극히 드물다. 동생이 건넨 선물 포장지를 똥 씹은 표정을 한 채 형식적으로 뜯고 내던져버린 형의 얼굴은 또 어떻고?
  

하지만 <미드90>은 살집 하나 잡히지 않는 아이의 몸에 푸른 멍이 투성인 이유를 찾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스티비를 방황하는 청춘이라 부를 수 없는 것도, 그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청춘에 어울리는 애어른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소한 몸집에 매일 같이 가족의 눈치를 보며 자기 세계를 만들어온 아이에게 '방황하는 청춘'이란 프레임을 씌우기에는 너무 가혹한 처사다. 또한 영화가 보여주는 스티비의 세계는 사건의 시작만 있을 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사건이 꼬리를 물고 연속적으로 발생한다. 관객은 해피엔딩은 고사하고, 아이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마음 졸이며 내내 불안해야만 한다. 그저 어린아이로만 기능했던 자신의 공간에서 스티비는 <미드90>을 통해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출구를 만들어낸다. 갑자기 문을 부수고 나와, 보드로 도로 한가운데를 질주하며 자유와 해방을 느끼는 스티비에게 펼쳐질 앞으로의 미래가 순탄하지 않을 거란 예측만이 가능한 영화다. 

출처: 영화 <미드90> 스틸컷

스티비의 세계를 형(이안)의 방이 전부 대변했던 그때, 아이는 거리에서 어른의 기세에 눌리지 않는 동네 형들을 발견한다. 매일 같이 형의 주먹질에 온몸을 내줘야 했던 아이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다니는 그들에게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저들과 함께라면, 자신을 옭아맨 현실에서 탈주할 수 있을 거란 강한 확신에 스티비는 매일 같이 동네 형들의 아지트 '보드 가게'로 출근도장을 찍기 시작한다.

며칠을 그렇게 눈치를 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고 있었을까. 서클의 크루 로벤과 악수하며 스티비는 그들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절대 '고맙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로벤의 첫 번째 가르침 이후 스티비는 조금씩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습득하며 더 깊게 서클을 동경한다. 보드를 사기 위해 엄마의 돈까지 훔치고, 아끼는 노래 테이프를 형에게 주면서 자유가 꿈틀거리는 그곳에 영원히 발붙일 순간을 기다린다.  그리고 모든 것이 준비된 순간, 아이는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초대장을 받는다.


"땡볕! 너도 갈래?"

<미드90>은 서클의 리더 레이가 스티비에게 건넨 이 한 마디로 시작한다.
서클은 스티비에게 거친 욕설과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기행을 보여주고, 스스로 습득해 몸소 보여주길 기다린다. 서클의 예쁨을 받기 위해 스티비는 죽어라 노력한다. '멋들어진 보드를 타면서 술과 담배를 하고, 여자를 옆구리에 끼고, 틈틈이 섹스를 즐기는 어른'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리고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자부한다. 그렇게 엄마의 돈을 훔치기 전, 면죄부를 얻기 위해 그녀의 빗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세게 문지르며 체벌을 줬던 아이는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출처: 영화 <미드90> 스틸컷

그러나 스티비가 살고 있는 현실에는 형의 무시무시한 폭력과 엄마의 강압적인 폭언이 여전히 존재했고, 그는 그곳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었다. 그는 하루빨리 누구도 자신을 건들 수 없도록 만들어야 했다. 억눌러왔던 분노를 매 순간 표출하고, 느껴보지 못한 소속의 안정감을 갖게 된 아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어떠한 것도 없으니까. 그래서 스티비는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던진다.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달랑 종잇장 같은 몸뿐이었으니, 아이는 있는 힘껏 서클에 버림받지 않기 위해 몸을 땅바닥에 부딪힌다. 한 손에는 담배를, 그리고 다른 손에는 술병을 들고 다니면서. 그 친구들 평생 함께할 수만 있다면, 스티비는 내일 당장 떠오르는 해를 보지 않아도 상관없겠지.


머리가 깨지고, 온몸이 부서져도 괜찮으며, 심지어 피를 흘려도 좋다. 인생의 전부였던 통금시간을 어기고, 형에게 당당히 맞설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 스티비는 이미 서클의 '존나네'에게 "어차피 우린 여기서 이렇게 살다가 죽어, 그러니 그냥 즐겨!"라고 삶의 지혜를 배웠으니까. 물론 새로운 공간에 둥지를 틀었음에도 그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스티비가 온전히 '나'로서 기능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서클 안에 자신을 이해하고 일으키는 '레이'가 존재한다는 것, 그 점들이 풀 죽어 있던 아이에게 삶의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미드90>은 그렇게 탄생했다.

스티비의 긴 연대기 속 가장 참혹했지만, 그만큼 찬란했던 한순간을 담아낸 것이 바로 <미드90>이다.

출처: 영화 <미드90> 스틸컷

이후 스티비에게 일어난 비극은 직접 <미드90>을 통해 확인하길 바란다. 나아가 그들이 어떻게 비극을 받아들이고, 함께 다시 일어나는지도 끝까지 애정 어린 눈빛으로 봐주길. 영화 속 스티비의 이야기가 아닌, 서클 멤버인 '레이', '존나네', '4학년', '루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한 편이 아릴 것이다. 방황도 사치라 느껴지게 하는 그들의 현란한 스케이트 보드 실력도 무척이나 슬프게 다가오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의 눈만큼은 즐겁게 하리라.
영화의 시작은 보여도 끝은 볼 수 없다는 말에 동감할 것이다. 적어도 티셔츠를 뒤집어쓰고 어린아이처럼 우는 형을 꼭 안아주며 위로해 줄 수 있는 스티비로 자라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만은 모두 같았으면 한다.

단언컨대 <미드90>이 단순히 가혹한 영화였다면, 많이 이가 조나 힐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에 무한한 찬사를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PS.  이 글은 페이스북 '전주 디지털 독립영화관'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전주 독립영화관 관객동아리 '씨네몽'회원으로 개봉작(무료)을 본 후 리뷰를 올리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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