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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Jan 29. 2020

또 다른 러브레터의 수신자, 우리 <사마에게>

사마를 향한 러브레터의 또 다른 수신자는 우리였다.

사마에게 For Sama, 2019 제작  

영국 |  다큐멘터리 |  2020.01.23 개봉 |  15세 이상 관람가 |  95분

감독: 와드 알-카팁, 에드워드 왓츠



또 다른 러브레터의 수신자, 우리 <사마에게>




와드가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병원을 활보한다. 굉음과 함께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자, 뿌연 안개를 뚫고 사람이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뛰어온다. 급하게 의사가 아이를 살펴보지만, 이미 늘어져버린 아이의 심장은 다시 생각이 없다. 한순간에 천사가 돼버린 아이를 의사는 흰 천으로 덮고 홀로 앉아 숨죽이며 오열한다. 그리고 또다시 안개를 뚫고 병원으로 이송되는 환자를 보러 빠르게 움직인다.


신도 버린 이곳, 시리아의 알레포.
사마는 암흑에서 빛을 품은 채 태어났다.

출처: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사진 속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10년 전의 와드.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성격이 불같아 걱정이란 말을 했었다고 고백하면서 사마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이곳에 태어나게 한 엄마를 용서해달라는 말과 함께, 카메라를 놓을 수 없었던 엄마의 마음을 고백한다.
열혈 청춘, 대학생 와드에게는 자유를 위한 혁명과 투쟁이 삶의 전부였다. 뚜렷한 목적은 아버지의 우려에도 '혁명군의 리포터 역할'을 자처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언제 죽을지 모를 곳에서 사랑하는 이를 만나 결혼하고, 사마까지 선물했다. 요점은 그런 와중에도 그녀의 목적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는 점. 수많은 죽음과 함께 사는 사마에게서 어여쁜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영화 <사마에게>는 시리아 내전을 직접 겪었던 와드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담았다. 그것도 철저하게 와드의 시각으로만 만들어졌다. 따라서 영화는 '와드가 사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기본 포맷으로 한 동시에 '전쟁을 묵인하고, 외면하고, 알지 못하는 세상을 향한 그녀의 힘 있는 고백을 담은' 귀중한 작품이다.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진 작품이라 주인공의 독백에 쉽게 녹아들 수 있고, 단 하나의 일관된 시선으로 관객을 맞이하며 끝까지 끈질기게 끌고 가는 힘이 정말 좋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기록의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데에도 중심을 두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아닌,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따라서 와드가 우리에게 보내는 미안함과 결연함이 담긴 눈물의 러브레터엔, 감사하게도 웃음과 행복이 함께 버무려져 있다. 우린 <사마에게>를 비극적인 영화라고만 단정할 수 없다. 

출처: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와드가 담은 참상은 가슴 아프게도 너무나 익숙한 프레임이다. 단번에 <택시운전사>와 <화려한 휴가>를 생각나게 한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떠오르는 건 당연하다. 언제 어디서 폭탄을 맞을지 몰라 두려움에 떠는 알레포 시민들과 군인들에게 쫓기며 언제 총알을 맞고 죽을지 몰라 혼비백산인 광주시민들이 겹쳐 보인다. 독재정치에 항거하는 이들의 눈에서 자유를 향한 의지와 정당화할 수없는 폭력에 대한 저항아주 세밀하게 보인다. 결국, 우린 다른 공간에 있는 이들에게서 사실상 같은 이야기를 보고 있다. 전쟁통에서도 웃음과 희망을 잃지 않으면서, 죽을힘을 다해 알레포와 광주를 지키려는 그들이 함께 눈앞에 그려지는 생생한 체험을 통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또 다른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고, 우린 지칠 틈 없이 그 역사를 기록하고 받아들이는 중책을 필연적으로 맡은 것이다. 
지금 이 현재에서 다 함께 <사마에게>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자길 왜 낳았냐고 화를 내는 거야, 태어나서 본 게 전쟁뿐이잖아."


공습에 지하로 피신한 와드 가족과 병원 사람들은 폭탄이 떨어져 폭발하는 소리에도 농담을 친다. 인상을 쓴 사마에게 애교를 피우면서 말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탄생과 죽음이 교차되는 그곳에서 사마는 사람들의 삶의 단비였다. 친구들과 함께 알레포를 지키면서, 혁명밖에 몰랐던 와드가 지칠 때쯤 찾아온 단비. 그녀가 카메라를 놓을 수 없는 이유를 하나 더 부여해준 존재.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매일 밤 확인하고, 확신하며 내일을 같은 마음으로 살 수 있게 하는 용기를 불어넣는 희망의 불씨.

출처: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그래서 와드는 남편 함자와 함께 병원을 세우고 마지막까지 남아 혁명을 이어간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아닌 최후의 수단까지 모두 혁명에 헌납하며 언제 끝날지 모를 공습을 악착같이 버틴다. 허나, 알레포는 계속되는 정부군과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폐허가 되어간다.

그들이 마주하게 될 비극은 예정된 시나리오였다.  

와드의 영상이 매일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지만, 아무도 시리아 정권을 막지 않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하나 둘 살기 위해 알렉포를 떠나는 사람들의 무거운 발걸음 보여준다. 알레포를 포기하고 떠나는 구급차에 총을 쏘는 정부군의 무비한 폭력에서도, 끝까지 알레포를 지켰던 우리의 희생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며 우는 와드의 친구 부부의 모습에서도 충분히 예상하게 한다. 긍정적 태도와 희망을 믿는 신념이 전부였던 그 부부가 오열하자, 와드는 카메라를 들고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며 그들을 담고, 또 위로한다. 그녀의 말대로 이별은 죽음보다 괴로우니까.

출처: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어렵게 알레포를 나온 와드. 그녀는 마지막 검문소를 나오면서 고백한다. "알레포를 나오면서 모든 것을 잃은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후 둘째가 탄생하자, 아기를 안으며 "고향처럼 따뜻하다."라고 속삭인다.

"고향처럼 따뜻하다."


사마를 품에 안고 두려움과 안정감을 느꼈던 와드였다. 사랑하는 고향과 희생당한 이들을 두고 온, 그녀가 사마의 동생을 품에 안을 땐 '따뜻하다'라고 처음으로 느낀다. 바로 그 순간이 <사마에게>의 유종의 미다. 사실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와드의 마음이 되려 영화를 보는 내내 경악했던 우리를 위로했다. 혁명을 세상에 알리고 저항하고 투쟁하기 위해 카메라를 처음 들었던 와드는 사마의 탄생 이후 딸을 위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평생 잊지 않기 위해 끝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이 영화는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목적이 상실되지 않는 저력을 가. 목적이 숨지도 도망가지도, 회피하거나 외면하지도 않는다. 드라마틱한 영화적 효과나 장치들이 없음에도, 관객을 순식간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선과 악을 대립시키면서 사건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극한까지 끓어오르게 하는 전형적인 이야기 공식도 없는 작품이다. 오직 와드의 카메라에는 선한 이들뿐이다. 그들의 삶과 죽음이 전부였던 영화가 바로 <사마에게>다.  

출처: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쟁취하기 위해 싸웠다."

   

다시 알레포로 돌아가도, 대학생 시절로 회귀한다고 해도 그녀는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 말한다.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와드의 음성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 말이 얼마나 어렵고 또 어려울지, 우린 상상할 수 없으니까. 수많은 선택이 '지금의 나'와 '앞으로의 나'를 결정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말할 수 없는 까닭은 변하지 않는 신념을 품고, 마지막까지 저항한 와드의 불변한 삶의 자세가 그저 대단하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아기가 시원하게 울음을 터트렸을 때를 평생 잊을 수 없는 것처럼 그녀의 인생은 한없이 강렬했다.
 
사마와 같은 아이들을 위해, 자유를 위해 싸웠던 와드가 사마를 안고 알레포 거리를 걷자, 카메라가 길게 위로 뻗어나간다. 알레포의 전경이 보이고, 모녀의 모습이 새까만 점으로 보일 때쯤, 우린 와드가 보낸 러브레터의 또 다른 수신자가 바로 나을 깨닫는다. 고맙게도.







ps. 이 글은 영화 홍보 마케팅 대행사, 루미네에서 <사마에게> 영화표를 제공받아 쓴 리뷰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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