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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Jan 16. 2020

그래도 조금은 해쳤어야 했어... <해치지 않아>

다른 과정을 통한 해피엔딩이 더 궁금해지고 말았다.

해치지 않아 Secret Zoo , 2019 제작  

한국 |  코미디 |  2020.01.15 개봉 |  12세 이상 관람가 |  117분

감독: 손재곤



그래도 조금은 해쳤어야 했어... <해치지 않아>




웹툰을 원작으로 새롭게 탄생한 영화 <해치지 않아>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얼마나 재미있을까 기대했다. 개봉하자마자 달려간 까닭은 배우 안재홍, 강소라와 원작 웹툰을 배꼽 빠지게 재미있게 본 기억 덕분이었다. 그런데 기대를 너무 했던 탓일까.  암막 커튼을 뒤로하고 나오니 아쉬움이 밀려왔다. 분명 열심히 웃고 또 웃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든 생각.
'그래도 조금은 해쳤어야 하지 않았을까...?'  

출처: 영화 <해치지 않아> 스틸컷

시작은 좋았다.
수습 변호사 강태수의 찌질한 현실 탈출구로 동물원이 연결되는 과정도 매끄러웠다. 어린 시절부터 까만코에 빠져 수의사가 된 한소원을 시작으로 '내가 동물원을 말아먹었다.'란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서원장, 남자 친구에게 을이 되어버린 김해경, 그런 해경을 짝사랑하는 김건욱까지 다 동물탈을 쓰고 동물원을 지키기 위해 살신성인하는 모습에서 웃음과 슬픔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발버둥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현실이었다. 그래서 우린 '동물원에서 가짜 동물이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해치지 않아>의 핵심 명제에 딴지를 걸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 밖에도 <해치지 않아>에는 다양한 메시지들이 섞여있다. 
더는 동물을 동물원에 가둬놓지 말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선언을 곱게 자란 애들은 못 하는 '사기'를 강태수 같은 잡초처럼 살아온 사람이 해야 한다는 재수 없는 편견과 함께 꼬집는다. 창살에 머리를 박으며 고통스러워하는 까만코의 모습과 동물탈을 쓰고 동물원을 살리고자 하는 직원들을 교차시키며 도덕이나 양심이 생계와 충돌하는 현실에 우린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동물원 사기극이 끝난 후 캐나다로 간 북극곰(까만코)를 보러 간 강태수와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젊은 연인을 통해, 우리 중 누군가는 분명 앞으로도 계속 북극곰에게 콜라병을 던질 것이라고 확신하기까지 한다.

출처: 영화 <해치지 않아> 스틸컷

그러나 <해치지 않아>는 결과적으로 관객에게 확실하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한다. 오직 '나'만 생각하던 강태수에서 '우리'를 생각하는 강태수로 성장하는 전형적인 인물 성장 구도가 뒷심을 발휘하긴 했지만, 곳곳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만다.


그중에서도 결정적인 장면이 있다.
북극곰(까만코)가 북극곰(강태수)을 물어뜯는 장면. 아니 그 상황이 벌어지기 직전에 까만코가 황 대표에게 달려들어 위협하는 순간, 참아왔던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필 그때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에서 곰의 습격을 받는 휴 글래스가 떠올랐을까. 아무리 다른 장르의 영화라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당연한 본능(동물이 가진)이 무시된 장면은 이해될 수 없었다. <해치지 않아>는 '동떨어진 현실성'을 너무나 자신 있게 드러냈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진짜 북극곰'이 자신을 위협한 인간(황 대표)을 단 한 번도 물어뜯지 않는 장면은... 동물원 관람객들 앞에서 동물의 탈을 쓴 강태수를 노출해 이야기의 끝을 향해 가려는 수단으로만 기능하고 만다.


결국 가장 중요한 장면이 이야기를 끝마치기 위한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버려졌다는 얘기다. 여기서 관객이 본능적으로 느낄 황당함은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동물의 탈을 쓰고 동물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처럼 충분히 웃고 넘길 수 있겠지라고 여긴 <해치지 않아>의 대수롭지 않은 생각 덕이다. 그런데 정말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장면인가?  

출처: 영화 <해치지 않아> 스틸컷

물론 영화를 끝맺기 위한, 해피엔딩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영화적 시선으로 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만코의 행동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무엇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집중하지 못했다. 재미와는 별개로 계속 딴생각이 들었다는 게 핵심이겠다.

원초적으로 내게 만족스러웠던 영화가 아니었다. 솔직히 쉴 새 없이 터지는 웃음 포인트도 없었고, 배우들의 연기력이 동물탈에서 가로막힌 것 같은 느낌도 많이 들었다. 어설픈 CG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뭐니 뭐니 해도 '까만코가 황 대표를 조금이라도 해쳤으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의문. 이 허점이 머릿속을 휘저은 순간 사실상 <해치지 않아>는 나에게서 멀어져 버렸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의문이 현실이 된 이후에 벌어질 사건이 더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으니까.     

다른 과정들을 통해 쟁취한 해피엔딩은 어땠을까.
<해치지 않아>는 결말이 아닌 과정에 더 중심을 뒀어야 했다.



PS. 킬링 포인트는 고릴라다. 편의점을 습격한 그의 외사랑이 얼마나 지독하게 웃기고 멋있는지 모른다. 슬프지만, 고릴라가 친 대형사고가 <해치지 않아>의 유일한 명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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