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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Jan 30. 2020

새 폴더의 이름은 아빠였을,
<작은 빛>

그는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닌, 기억해내고자 털어내고자 캠코더를 들었다

작은 빛 Tiny light, 2018 제작  

한국 |  드라마 |  2020.01.23 개봉 |  12세이상관람가 |  90분 

감독: 조민재 


새 폴더의 이름은 아빠였을, <작은 빛>



"진무는 무엇을 기억하고자 했을까?"
뇌수술을 한 뒤 기억을 잃을 수 있다는 의사에 말에 그는 캠코더를 들고 고향집을 방문한다. <작은 빛>은 진무가 캠코더로 담은 한 가족의 일상을 엮어 만든 작품이다. 그런데 정말 진무가 원했던 것이 '잃어버릴 기억을 기록'하는 것이었을까? 평범한 가족들의 삶에 끼어든 진무가 가장 적극적으로 하는 행위가 오직 캠코더를 들고 가족들을 인터뷰해서 그렇게 보이고 읽히게 아닐까. 

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란 말도 있지 않은가. 


그가 캠코더를 들고 다니는 이유는 분명 따로 있다.

<작은 빛>이 보여주는 진무의 일상을 숨죽이고 따라가다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캠코더 영상을 노트북에 담아 폴더를 만들어 정리하는 순간이 첫 번째 합리적 의심을 품게 한다. 그리고 곧바로 새 폴더의 존재가 튀어나올 때, 의심은 확신이 된다. 충분히 그에게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란 직감. 어머니와 누나, 형의 이름으로 된 폴더가 있고, 제일 앞에 새로 만든 새 폴더의 이름이 수정되는 그때, 카메라는 '새폴더'의 이름 공개를 일부로 감추기 때문이다.

 

<작은 빛>이 의도적으로 숨긴 진무의 속사정은 무엇일까. 왜 새 폴더의 이름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억하기 위해 가족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행동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점이 '기억'이 아닌 '어떤 다른 것'이란 얘기인데. 그렇다면 그가 캠코더를 꺼낸 이유는 뭘까? 왜 그는 자꾸 가족들에게 과거의 기억을 묻는 것일까. 자 이제 관객이 품을 물음은 바뀔 수밖에 없다.

 

"그는 왜 기억해내려고 하는가?"

출처: 영화 <작은 빛> 스틸컷

갑자기 집을 찾아온 아들. 엄마는 아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그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묻는다. 여느 모자와 다름없이 아주 평범하게 대화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작은 빛>이 내놓은 가장 큰 놀라움이다. 이후 이어지는 모든 장면도 마치 정말 실제 가족을 캐스팅해 찍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영화는 매일 평범한 가정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그대로 가져와 관객에게 익숙함을 넘어 친밀감까지 느끼게 한다. <작은 빛>을 보는 관객이 뿜어내는 집중력의 비밀인 셈이다. 우린 진무의 수술 소식과 함께 그의 가족에게 일어날 일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입장이지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가족을 향한 개인'의 감정에 어쩔 수 없이 영화에 깊게 동화되고 만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진무 가족의 식탁에 무언가가 웅크리고 숨어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테니까. 

진무는 엄마와 형, 그리고 누나를 차례대로 찾아간다. 그들을 인터뷰하면서 똑같은 질문을 한다.  

"요즘 사는 게 어때?", "살면서 좋았었던 때가 언제야?", "이때 기억나?"

그가 담고 싶어 하는 가족의 모습은 현재보단 과거에 집중되어 있다. 왜 현재가 아닌 과거일까. 적어도 그만은 다른 가족들과 달리 '어린 시절에 더 많은 추억' 혹은 '풀어내야만 할 응어리'가 있어 보인다. 아빠의 산소를 찾아간 진무에게 찬바람만 쌩쌩 날리는 큰아빠의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영화 전반 내내 보이지 않는 존재는 진무의 아빠뿐이다. 아, 그가 이 물음을 풀 열쇠인 게 분명하다.

출처: 영화 <작은 빛> 스틸컷

진무가 찍은 누나와 엄마의 모습을 본 형은 "왜 이렇게 늙었냐."란 말로 시작해 "친엄마를 찾아가 만났어. 내가 그래서 병신인 가봐."로 대화를 끝낸다. 이전까지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진무의 가족사가 처음으로 드러난다. 폭력적인 아빠란 정보가 채 관객의 귀에 딱지 앉기도 전에 말이다. 엄마는 누나를 데리고, 아들이 있는 아빠와 결혼을 해 진무를 낳았다. 그러나 수녀의 소개로 만난 아빠는 무자비한 가정폭력범이었고, 엄마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잘못한 일을 '아빠와의 결혼'이라 말한다. 형도, 누나도 아빠의 존재를 부정하고 모멸 차게 비난할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진무는 그들의 확신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들이 아빠를 머나먼 과거로 묻고 살아가는 것에 회의감을 느낀다. 그렇다면 나의 존재는 무엇일까. 진무는 결국 엄마 앞에서 굳게 닫혀있던 마음을 열고 긴 한숨을 토해낸다. 그리고 아빠의 양복을 입은 채로 조심스럽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다

"그때 엄마가 숲 속으로 나를 데려가서 혼자 잘 살 수 있냐고 물었잖아. 그리고 몇 초 후에 아빠가 죽었다고 했잖아. 근데, 가끔 그때 내가 아빠 옆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출처: 영화 <작은 빛> 스틸컷

뇌 수술하기 전에 중요한 건 미리 기록해두란 의사의 말. 그가 기록하고자 했던 것은 아빠에 관한 것이었다. 아빠였으니까. 아빠와 행복했던 기억, 온 가족과 함께 웃고 떠들었던 기억, 그런 행복한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음을 진무는 끝까지 기억해두고 싶었다. 요절해버린 아빠의 산소를 큰아빠네 가족에게 방치해버린 사실은 현재진행형이었으니까. 그의 마음은 엄마도 누나도 형도 함께 하는 것이었겠지. 아빠의 카메라를 창고에서 발견해, 형제들에게 보여주며 끊임없이 사진 속 시절을 기억하냐 묻는 것도 다 그래서였다.  
그러나 어떻게 다 진무의 마음과 같을까.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오롯이 개인의 선택 문제다.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며, 회유한다고 해서 그들의 상처가 사라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엄마의 집, 고장 난 전등을 새로운 전등으로 갈면 뭐할까, 전과 같은 빛을 내일도 똑같이 받고 있단 마음이 망부석이면 끝인 것을. 아무리 빛이 따스하게 그들을 비춰도 당사자들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진무는 여전히 아프고 슬픈 것이고 당장 내일이 급급한 인생을 사는 엄마, 누나, 형은 분노를 억누르며 모른 척,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다.  

출처: 영화 <작은 빛> 스틸컷

그래서 진무는 홀로 아빠의 유골을 수습한다. 누구도 나서지 않는 순간에도 그는 아빠를 새로운 곳에 모시기 위해 관을 관통한 나무의 뿌리와 씨름한다. 그만이 과거에 온몸으로 부딪히고 있었다. "어떻게 죽어서도 지랄이야!"라고 소리치는 엄마를 뒤로하고 혼자 무덤 깊숙이 들어가는 그를 보고, 참 다행이란 마음이었다. 그는 그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으로 '아빠'를 극복하는 중이었다. 춤을 잘 췄던 형과 작가 지망생이었던 누나, 그리고 의상실에 출근하던 엄마의 모습이 진무의 마음속 캠코더에 담기는 순간이기도 했다. 
일렬로 내려오는 가족들, 제일 앞에 앞장서서 아빠를 담고 오는 진무에게 유난히 빛이 몰려있다. 그간 털어낼 수 없었던 아빠에 관한 복합적인 감정이 점차 진무에게서 빠져나갈 때, <작은 빛>에 가졌던 물음의 답도 함께 떠오른다. 

아빠 양복을 입었던 진무의 손을 꼭 잡으며, "어제 아빠 양복을 입은 너를 보니 아빠에게 고맙더라."라 말하던 엄마의 진심이 한 줌의 빛으로 그의 아픔을 치유한 것처럼, 진무가 반드시 기억해내고자 했던 과거는 이제 정말 평범한 추억으로 변했다. 아빠의 카메라 속에 있던 사진을 언제든 꺼내보며 가족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 보통의 삶이 이제 진무에게도 펼쳐지겠지.

출처: 영화 <작은 빛> 스틸컷

새 폴더의 주인을 명확하게 가리키는 <작은 빛>의 여정은 친절하고 편안하다. 그래서 가슴이 아려오지만, 끝에 스며든 빛에 만족하게 된다. 진무가 전한 빛이 온 가족에게 전해질 때, 그들의 입에서도 푸념 섞인 웃음과 실없는 미소가 터져 나올 때 그들이 매일 쬐던 빛이 내일은 다를 것이라 장담할 수 있게 한 <작은 빛>에 고마움을 느낀다.    






PS.  이 글은 페이스북 '전주 디지털 독립영화관'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전주 독립영화관 관객동아리 '씨네몽'회원으로 개봉작(무료)을 본 후 리뷰를 올리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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