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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Mar 20. 2020

서커스 / 성동혁 시인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



서커스 

                          성동혁




나는 그런 친구가 많다

던진 칼을 온몸으로 받는


그래도 살아서 내게 나타나는 친구


숨이 앞니의 뒷면까지 차오를 때

서로의 그림자를 가방에 대신 훔쳐 담으면

친구가 될까


다행히 나는 그런 친구가 많다

공중으로 솟구쳐 오래오래 폭죽처럼 나를 놀리는


박수를 치고 나면

슬픔은 찾아온다 환호하면 사라지는 친구들

그들을 대신하는 것은 항상 쑥스럽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 친구는 바나나를 먹었다

칼을 받기 전 하얗게 벗겨지던 친구

기다란 껍질이 어디쯤 버려졌는지 모르지만


친구는 하얗게 칼을 받았다

곡예를 하지도 멍청하게 웃지도 않았다


서 있었다

사람들끼리 박수를 치고 사람들끼리 웃었다

우리만 심각한 표정으로 죽어갔다


나는 그런 친구가 많다

나는 그런 친구가 된다



                                             


《시와 정신》

2013년 여름호





나는 그래

내 전부를 공유할 수 없기에 친구는 존재한다. 
단순하지만, 누구보다 무겁게 사람을 만나는 것. 
내가 지향하는 인간관계 맺기의 첫걸음이자 마지막 걸음이기도 하다. 
물론 매번 성공적인 관계로 나아가지 않기에, 나의 신념을 의심한 적도 많다.
그날처럼. 

친구란 무엇일까.
말다툼으로 관계가 소원해진 친구가 식당에서 우연히 나를 보고, 구석으로 자리를 바꿔 앉는 걸 보면서 생각한 질문이었다. 그와 나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란 확답을 받은 후였으니 사실상 끝난 인연이었다. 그 순간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이 말했다. 역시 나는 이기적이구나.

이기적이란 말은 그 친구의 언어에서 왔다. 
그는 내 성향을 두고 '이기적인 낯가림'에 불과하다며 흉을 봤다. 
말 그대로 자기 꼴리는 대로 하는 인간이란 소리였는데, 
세세하게 다 맞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아니라고,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진심이 있는 그대로 상대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원래 관계는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도 오래 유지하는 게 더 어렵지 않은가. 

이해심은 쓰레기통에 버린 지 오래였다. 이 마음까지 전부 털어놓을 수 없다는 점은 실없는 웃음까지 터져 나오게 했다. 서운함은 쉽게 분노로 바뀌었고, 분노는 상실감을 전달했다. 그래서 난 그 친구가 말했던 '성향' 중 '이기적인'만큼은 깔끔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사실 그는 나보다 더 속내를 보이지 않았다. 
힘들다는 말 한마디를 하는 순간 자신이 우스워 보일까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조차도 사실상 추측에 가깝지만, 어쨌든 그가 할 수 있는 대화 주제는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 노래나 남 욕을 듣는 거 말고는 거의 없었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듣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얘기를 꺼낸 적도 없지만. 연락이 뜸해질 수밖에 없었던 건 나도 그도 이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린, 전부를 공유할 수 없었기에 친구였다. 

그와 나는 서로에게 함부로 인생 조언을 하지 않았고, 적절하고 지극히 감성적으로 상대의 아픔을 위로했다. 아. 치졸하고 더럽고 부끄러운 속내를 밝히지 않은 것이 흠이었을까? 서로 흉만 보지 않으면 지낼 수 있는 사이가 되었기에 이제 그만 관계를 끝내야겠다고 먼저 생각했었을까. 그래 봤자, 우리 모두 무대 위에 서있을 뿐인데. 

뭐, 쌍방과실은 확실하다. 내가 그였고 그가 나였던 건 사실이니까. 
그래서 이렇게 기분이 더럽다는 것도 너무나 잘 이해되니 더 어이없다.
통로 뒤로 숨어있는 친구도 똑같은 마음이겠지.  

무엇이 나와 그의 사이에 어색함과 서운함을 끼워 넣었을까. 
내 전부를 공유하지 않았으나, 난 나로서 언제나 앞에 앉아있었는데.

참, 어렵다. 친구를 만나 그 친구가 되고 다시 또 친구가 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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