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시 113 / 박찬일 시집,『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2002
마음대로 불러올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통증이다. 통증을 두려워하면 통증을 불러온다. 기억을 두려워하면 기억을 불러오듯이. 통증을 벗어나는 것은 마음대로 안 된다. 오는 것은 금방이지만 가는 것은 어렵다. 순식간에 오지만 더디게 간다.
통증을 무서워하니까 통증이 자주 온다. 통증 밖에 있는 시간보다 통증 안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통증이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그러면 통증을 벗어나는 걸까. 그 다음에는 무엇을 두려워하게 될까. 무엇이 될까. 그럴 수 있을까.
(주)믿음사
믿음의 시 113
©박찬일 시집,『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2002
99쪽
나는 그래
귀에 붙이는 피어싱을 즐겨하는 친구는
본인의 고통은 간단하지 않다고 했다.
고통이 복잡하다는 뜻임을 대충 이해하고 넘어갔다.
다시 그를 만났다.
피어싱은 그 사이 영역을 넓혔다.
눈썹과 오른쪽 광대 위에도 붙은 고통.
그는 이제 고통을 고통이라 단순히 부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역시 고통은 고통이지. 같은.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직접 뚫어보면 진짜 고통을 삼키는 법을 터득하지 않을까?
어쩌면 네가 말하는 고통을 진짜 잡고 휘두를 수도 있잖아.
승리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고
살아남는 자로 계속 나아가는 거지.
돌아오는 대답은
그가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고통보다
훨씬 더 당황스러웠다.
'그러면 통증을 벗어나는 걸까. 그 다음에는 무엇을 두려워하게 될까.'
넌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