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2002
거울 바깥 세상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거울 속 세상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거울 속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거울 속 세상이 조용하기 때문이다
거울 속 세상이 조용한 것은 거울 밖 세상이
너무 시끄럽기 때문이다
거울 속 세계를, 거울 속 세계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거울 속 세상으로 가려면
거울을 부숴야 한다
거울 없는 나라에서 살려면, 맘놓고 살려면
(주)믿음사
믿음의 시 113
©박찬일 시집,『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2002
89쪽
나는 그래
오늘 말고 내일 정도,
아니 모레에 천둥번개가 아주 세차게 왔으면 좋겠다.
세상이 아름답기에, 또 나름 조용하기에
아, 가끔은 시끄러워 미치겠어서
당장은 말고 좀 있다가 불시에 태풍처럼 왔으면.
세상을 저주하는 게 아니다.
정말 온마음을 다해 저주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지.
나만의 노력으로, 모두의 기도로 오늘이 지나
내일 다시 거울을 보면 온갖 응어리가 내려가길 바라며.
딱 내려가면 모레 걱정은 할 필요 없고.
물론 거울 속 세상은 늘 부럽다.
그냥 아름답고 그냥 조용하고
그냥 꿈꾸는 세계라서가 아니라
그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하나도 없음에도,
당연히 그냥이라 말할 수 있어서 부럽다.
특히 마음에 불안한 불씨가 싹트면
거울 속 세계가 더욱 그립다.
가본 적 없는 그곳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거울 밖에 있는 내가 더욱 안타깝고.
그래서 그도 모레가 되면 '거울을 부숴야' 한다고 하나보다.
가질 수 없는 건 가질 수 없음을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니까.
나는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산다.
거울 속 세상에 살면서
거울 밖 세상에도 사는.
해서 '부인할 수 없다'는 말을
그냥 '거울을 부숴'야만 하는 의지로 바꿔 말해도 괜찮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절호의 기회일지 모른다.
직접 조치를 취해 모레 걱정을 하지 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