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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얼음 / 박남준 시인

창비시선 256 ©박남준 시집,『적막』2005

by 우란

따뜻한 얼음 / 박남준



옷을 껴입듯 한겹 또 한겹

추위가 더할수록 얼음의 두께가 깊어지는 것은

버들치며 송사리 품 안에 숨 쉬는 것들을

따뜻하게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철모르는 돌팔매로부터

겁 많은 물고기들을 두 눈 동그란 것들을

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

그 아래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겨울 모진 것 그래도 견달 만한 것은

제 몸의 온기란 온기 세상에 다 전하고

스스로 차디찬 알몸의 몸이 되어버린 얼음이 있기 때문이다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고 눈물지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햇살 아래 녹아내린 얼음의 투명한 눈물자위를

아 몸을 다 바쳐서 피워내는 사랑이라니

그 빛나는 것이라니




(주)창비

창비시선 256

©박남준 시집,『적막』2005

14-15쪽




나는 그래

오늘 같은 날,
따뜻함이 너무 필요한 시기,
우리 함께 하자는 말이 간절한 시간.
보듬고 또 보살피면서 나를 아끼듯 너도 아끼는 찰나.

무엇을 어떻게, 과연 누구와 할 수 있겠냐는
의문 가득한, 당연한 의심이 동반된 결정은 하지 말자.

우리에겐 오늘 같은 날이 필요하다.
필요하단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날들이다.
어설프고 서늘하고 때론 답답해도
'얼음의 두께가 깊어지는' 순간을 노래해야만 한다.

마음은 마음과 만나면 신이 난다.
겨울을 지나 봄으로 향하는 길도 바로 코앞이다.
다 내어주고도 더 내어주지 못한 마음도
더는 떼어내 줄 게 없는 마음도
'스스로 차디찬 알몸의 몸이 되어버린 얼음' 앞에 서는 그때,
웃음이 한없이 나오도록, 같이 서는 거지.

'그 빛나는 것이라니'
오늘 같은 날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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